민주당 “야당이 맡아야” 국민의힘 “합의사항 정면 위반”…민주당, 체계·자구 심사권 축소 등 위한 포석 가능성
21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협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핵심 골자는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에 있다. 법사위원장은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기능이 있어 국회에서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한다.
2021년 7월 양당 원내대표는 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을 정상화하면서, 그 조건으로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원구성 협상을 앞두고 법사위원장을 넘겨줄 수 없다며 사실상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원구성 협상에 나서야 하는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먼저 운을 뗐다. 5월 2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전반기 2년과 후반기 2년 원구성은 국회법에 따라 새롭게 되는 것이다. 향후 2년에 대한 원구성 협상의 법적 주체는 현재 원내대표”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내가 법적 협상의 주체가 돼 후반기 원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당시 원내대표로 합의의 당사자였던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5월 21일 KBS라디오 ‘정관용의 시사본부’와 인터뷰에서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주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의 법사위원장 사수 의지에 합의 파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5월 23일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여야 합의사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민주당이 국회의장, 법사위원장을 독식한다는 건 결국 협치를 거부하겠다는 의사 표시이고, 또다시 입법 폭주를 자행하겠다는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여야가 각각 법사위원장은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논리를 보면 불과 1~2년 사이 정반대로 뒤집혀 있다. 21대 국회 출범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정부와 여당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위해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는 게 관례라고 주장했다. 그때 입장을 대입해보자면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는 것이 맞다.
실제 박홍근 원내대표도 앞서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이 그동안 정부여당을 입법부가 견제하는 차원에서 법사위를 야당이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오지 않았느냐. 그런 논리라면 민주당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여당이던 지난해 견제라는 미명으로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에 발목잡기를 해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호중 당시 원내대표는 “과거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았던 관례가 ‘식물국회’라는 나쁜 결과를 만들었다”며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비대위원장은 앞서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검찰 출신 대통령에, 소통령 법무부 장관에 더해 대통령 주변에도 십상시처럼 검사들이 자리해 이른바 ‘신검부’가 검찰 쿠데타를 완성한 상태”라며 “대한민국이 제동 없는 검찰 왕국이 될 수 있는데,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법사위원장밖에 없다”고 ‘야당의 견제 필요성’을 다시 꺼내들었다.
국민의힘의 합의 파기에 대한 비판도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과정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의 주도로 양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중재안을 권성동 원내대표가 뒤엎은 전력이 있기 때문. 박홍근 원내대표도 지난 5월 5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번에 국민의힘이 (검찰수사권 조정) 합의를 파기하는 걸 보면서 과연 (지난해 원구성) 합의가 의미가 있을까 문제 제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국민의힘이 합의·신뢰를 말할 입장이 되느냐. 의원총회 의결까지 거친 검찰 수사권 2차 조정 중재안을 파기한 정당이 어디냐”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계속 협치를 주장한다. 민주당은 한덕수 총리 임명에도 동의했고, 윤 대통령 시정연설 등에도 협조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동훈 등 부적격 장관 임명을 강행하고, 무엇 하나 양보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 윤 정부와 국민의힘은 원구성 협상에 앞서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한덕수 총리 임명을 막아내지 못하며 정치적 수세에 몰린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직이라도 사수해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다. 또한 6·1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여당 견제와 검찰개혁 완수라는 명분을 앞세워 지지층을 달래고 결집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도부가 법사위원장직 사수 외에 다른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검수완박’ 입법을 강행하니 윤석열 정부에서는 검찰 출신 인사들을 장관과 대통령실 주요 요직에 전진 배치했다. 그러니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전면전을 펼치겠다, 국민의힘도 합의 파기했으니 민주당도 몽니 부리겠다, 이런 계산으로 전략을 세운 것 같다. 하지만 논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지방선거 과정에 원칙을 세우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문제를 지적해 나갔어야 한다.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로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법사위원장직 고수’가 법사위의 정상적 운영에 대한 합의를 얻어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당초 지난해 7월 상임위 합의 당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축소하는 부대조건을 만들었다. 이어 한 달 후 ‘여야 합의 통과한 개정안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기한을 120일에서 60일로 단축하고, 심사 범위도 명시해 한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심사 범위 표현의 모호성 등으로 이러한 개정안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법사위는 여전히 막강한 입법 주도권을 쥐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겨준다는 합의는 체계·자구 심사권 축소 등 부대조건이 지켜졌다는 가정 하에 성립되는 것이다. 부대조건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으니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주장이다”라며 “후반기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 체계·자구 심사권을 부대조건이나 개정안 취지에 맞게 운영하겠다는 합의만 국민의힘이 해준다면 법사위원장을 넘겨주고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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