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비서실장 “개인 의견” 선 그었지만…야권·노동계 반발, 가덕도 투자 발언도 ‘시끌’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3년 출판된 본인의 저서 ‘덫에 걸린 한국경제’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기업의 지분을 매각해 기업공개(IPO·상장)를 추진하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17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실장의 저서를 거론하며 “인천공항공사 지분 40% 정도를 민간에 팔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실장은 “한국전력공사처럼 지분은 정부가 갖고, 경영도 정부가 하되 30~40%의 지분을 민간에 팔면 좋겠다”고 답했다.
김대기 실장의 발언은 야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지분 매각이 궁극적으로 민영화로 가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것이다. 민영화가 될 경우, 이용 요금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SNS(소셜미디어)에 “전기, 수도, 철도, 공항 민영화 반대”라고 게시하기도 했다.
야당에서는 정치 쟁점화를 노리며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이수진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국가의 필수 공공영역에 대한 민영화는 소수 특권층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주겠지만 대다수 국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며 “윤석열 정부는 국민 여론 떠보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말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영화를 검토한 적도 없고, 검토 지시를 내린 적도 없으며 당분간 그럴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실제 윤석열 정부가 공식적으로 민영화를 언급한 적은 없고, 김대기 실장 역시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결국 국민의힘은 최근 이재명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이유동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 후보 공약에도, 인수위원회 기간 중에 수립된 국정과제에도 (민영화 계획은) 없다”면서도 “공기업에 대한 재무 건전성 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 등 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최선의 노력 중에 있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가 민영화 계획은 일축했지만 김대기 실장이 언급한 지분 매각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고 있다. 이미 정부에서도 일부 공기업 지분 매각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지분이 일부라도 민간에 넘어가면 경영 방침에 변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상 보유 지분이 0.5% 이상이면(자본총액이 1000억 원 미만이면 1.0% 이상) 주주제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 방침과 소액주주 간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전은 상장하면서 지분 일부를 민간에 매각했지만 수년째 소액주주와 갈등을 겪고 있다. 한전의 적자가 이어지자 소액주주는 전기 요금 인상을 요구하며 몇 차례나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도 한전 경영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한전은 2019년 서울사무소에 제2법무팀을 신설했다. 한전은 당시 “국회 입법 지원 및 서울 소재 법무법인과의 원활한 업무 처리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소액주주 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뒷말이 따라다녔다.
한전은 최근 한전공대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주주가치가 하락한다는 비판을 수없이 들었다. 이에 한전은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해 기업과 주주의 가치 제고 등 한전의 장기적 이익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일부 지분이 민간에 매각되면 한전처럼 소액주주의 주장을 외면하기 힘들다. 공기업은 공익적인 부분을 생각해야 하지만 상장하면 주가와 실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도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매각을 반대한다. 주가 상승을 위해서라면 실적을 고려해야 하고, 실적을 위해 임금 삭감이나 구조조정을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공공영역에 시장 만능주의를 갖다 붙이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5월 2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최근 논란에 대해 “경영 효율화에 내몰려 구조조정이 불가피할뿐더러 소비자는 더 비싼 공공요금을 지불하고 시민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자금 확보를 위해 지분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한전은 지난해 5조 8601억 원의 영업손실을 거둔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7조 786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전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한국전력기술 지분 14.77%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현재 한전은 한국전력기술 지분 65.77%를 갖고 있다. 즉, 한국전력기술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51%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모두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69.82% 수준이다. 재무에 큰 문제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향후 계획을 고려한다면 자금이 추가로 필요할 전망이다. 김대기 비서실장도 “가덕도신공항도 건설해야 하고, 인천국제공항도 확장해야 하는 등 돈 쓸 곳이 너무 많다”며 “공기업의 무책임하고 방만한 경영을 너무 많이 봐서 민간자본 활용은 괜찮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대기 비서실장의 주장대로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을 매각해 그 돈을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투입하면 지역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인천광역시총연합회 관계자는 “인천국제공항은 2·3·4단계 개발 사업을 모두 공사채를 발행해 사업을 진행하고, 가덕도신공항도 자체 공사를 설립해 추진하면 된다”며 “인천국제공항 지분 매각금으로 가덕도신공항 건설비용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인천 재산을 부산·경남에 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는 “우리가 지분 매각을 논의할 입장이 아니고, 결정된 것이 없어 특별히 진행하고 있는 것도 없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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