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한 프로 진행 95세 현역 ‘넘볼 수 없는 기록’…후임엔 ‘송해 픽’ 이상벽 ‘롤모델 강조’ 이경규 물망
1927년 4월 27일 황해도에서 태어난 송해의 나이는 올해 95세. 해주음악전문학교에서 성악을 배우고 1955년 '창공악극단' 가수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대중문화 전반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쌓아가는 특별한 존재다. 영화와 방송으로도 진출하는 등 무대에서 보낸 시간만 60년이 훌쩍 넘는다. 대표작은 KBS 1TV ‘전국노래자랑’이다. 1988년에 시작해 무려 34년째 유지하고 있다. 9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는 그의 모습은 노년 인구가 급증하는 ‘100세 시대’에 본받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최고령 방송인’ 타이틀을 넘어 건강하게 일하는 노년의 대표주자다.
#연출자는 300여 명, 진행자는 단 한 사람
세계에서 나오는 각종 신기록을 심사해 인정하는 영국의 기네스북 협회가 5월 23일 송해를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등재했다고 밝혔다. 세계기록 등재는 공식 발표보다 앞선 지난 4월 말 확정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상황으로 인한 기네스북 협회의 업무 지연으로 공표가 한 달여 늦어졌다.
이번 기네스북 등재는 전국노래자랑을 제작하는 KBS 주도로 이뤄졌다. 송해가 34년째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 오전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외침으로 시청자를 찾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평범한 우리네 이웃들의 노래 실력을 겨루는 무대로 자리 잡아 ‘국민 노래자랑’으로도 통한다. 사람 냄새 풍기는 경연자들의 사연은 물론 전국 각지의 향토색도 엿볼 수 있다.
인기는 굳건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그들의 사연 많은 노래를 들으려는 시청자는 시대가 바뀌어도 꾸준히 이어진 덕분이다. 그 결과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 ‘최장수 진행자’ 기록에 이어 이번에는 ‘세계 최고령 진행자’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34년 동안 진행자는 송해 단 한 사람이었지만 연출자는 무려 300여 명이 거쳐 갔다.
송해는 기네스북 기록 등재의 공을 대한민국 시청자들에게 돌렸다. 기네스북 등재 기념식에 참석한 송해는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면서 오늘의 결론이 나와 더더욱 소중하다”며 “관심 있는 분들의 뜻이 모여서 영광이 저한테 왔다. 이 자리는 공동의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해가 생각하는 전국노래자랑의 인기 비결은 사람의 힘에서 나온다. 그는 “그야말로 노래를 하고 싶고, 여러분과 만나고 싶고, 우정을 나누고 싶고, 지역을 사랑하고 싶어서 많이 나온다”며 “경쟁도 하지만 그 안에 다정함도 있다”라고 말했다.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이제는 어엿한 스타가 된 이들도 여럿이다. 최근 가요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기를 얻는 트롯 가수 임영웅이 대표적이다. 국악인 송소희, 가수 박상철 등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유명 음악인이 됐다.
#‘전국노래자랑’ 코로나19 여파로 부침
숱한 기록을 쓴 송해지만, 최근 발생한 여러 상황으로 인해 기록을 계속 경신할지는 미지수다. 5월 초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그는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에 프로그램 하차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방송 관계자는 “고령인 송해 선생님이 전국노래자랑 야외 녹화를 하기에 부담을 갖고 계신다”며 “제작진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국노래자랑은 전국 곳곳을 누비는 프로그램이다. 장거리 이동이 많은 데다, 녹화도 야외에서 이뤄진다. 체력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송해는 최근 몇 차례 병원 신세를 졌다. 올해 1월에도 건강 악화로 짧은 기간이지만 병원에 입원했고, 3월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입원하지 않고 재택 치료로 코로나19가 완치됐지만, 후유증 여파인지 기력이 쇠해 5월 중순 다시 서울의 한 병원에 짧게 입원했다.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의 상징이자, 프로그램 존재 자체다. 1980년 11월 시작해 올해로 41년 동안 방송한 전국노래자랑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해와 함께했다. 송해 역시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살면서 인생의 절반가량을 보냈다. 과거 아들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겨 있던 그에게 KBS의 안인기 PD가 “바람이나 쐬러 다니자”면서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제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실제로 송해는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아 전국을 찾아다니고,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덕분에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랬다는 얘기를 자주 꺼냈다.
송해와 전국노래자랑은 서로에게 영광을 안겨줬지만, 최근 2년 동안 코로나19 여파로 부침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감염 위험 탓에 야외 녹화가 중단됐고, 대신 과거 방송분을 다시 내보내는 방식으로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유지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지만 아직까지 기존의 제작 방식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중심인 송해는 물론이고, 연주를 맡은 밴드 등 제작진 대부분이 고령인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송해 선생님은 나의 롤모델”
이런 가운데 송해가 먼저 제작진에 하차 뜻을 밝힌 만큼 전국노래자랑은 향후 변화가 불가피하다. 일단 후임 진행자가 누가 될지를 두고도 방송가에서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34년 동안 자리를 지킨 송해의 자리를 이어받을 유력 인물은 이상벽. 몇몇 방송에 출연해 전국노래자랑 MC에 욕심을 보였던 이상벽은 마침 송해가 적임자로 염두에 둔 인물이기도 하다. 송해는 2021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후배 중에 희극을 한다는 사람들 전부 그 줄(후임)에 서 있다”며 “오래 전부터 이상벽을 마음속으로 정해놨다”라고 말했다.
이경규 역시 평소 전국노래자랑 진행에 의욕을 보였다. 특히 2012년 영화 ‘전국노래자랑’을 만드는 등 애정을 쏟았다. 2015년 송해의 헌정 공연에 참석한 이경규는 “송해 선생님은 나의 롤모델”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전국노래자랑’을 영화화한 사람으로서 차기 MC를 노리고 있다”고 공개 선언을 했다. 이상벽도 이경규도 노련미 넘치는 베테랑 방송인이지만 송해가 34년 동안 쌓은 아성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제작진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송해를 상징하는 단어는 “땡”과 “딩동댕”이다.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한 수많은 출연자들을 향해 쉼 없이 건넨 외침이다. 탈락을 뜻하는 ‘땡’이나 합격을 의미하는 ‘딩동댕’ 모두 삶의 중요한 의미라는 게 송해의 지론.
올해 1월 KBS가 설 특집으로 송해를 주인공으로 기획한 프로그램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 출연한 그는 “땡과 딩동댕 중 뭐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며 “땡을 받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라고 말했다. 95세 현역 방송인 송해를 향해 온 국민이 같은 마음으로 건강을 기원하는 것도 바로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따뜻한 위로를 오랫동안 듣고 싶어서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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