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하청노동자 사고사망 비중 높은 원청’ 지정…전문가 “경영책임자 직접 사과해야”
지난 3월 21일 오전 9시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30대 이동우 씨가 천장크레인 브레이크 교체 작업 중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이 씨의 사인은 흉부 압박에 따른 질식사.
사고 현장에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신호수를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족 측 변호인에 따르면 이 씨와 함께 천장크레인에 올라야 할 크레인 작동 신호수는 지상의 차량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관리감독자는 작업 인원들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크레인 운전 신호를 보냈고 운전수가 크레인을 작동시키면서 이 씨가 안전벨트에 감겼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사망재해 다발작업 안전대책-천장크레인 취급작업편’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144조에 따라 천장크레인 정비·보수 점검 작업시 크레인의 운전을 정지하는 등 조치를 해야 한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재발 방지를 위해 다각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광역중대재해관리과는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노동청 측은 동국제강에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이 씨가 사망했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법인 해우 권영국 변호사는 “(사고 당시) 크레인 신호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는 것과 크레인 전원 차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등을 노동청 측에서 인정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등에선 동국제강을 규탄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진성준 의원은 “동국제강은 이 씨의 억울한 죽음에 응답해야 한다”며 “(동국제강이) 법률대리인만 앞장 세워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유족과 대화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풀어가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동국제강은 중대재해 상습 발생 사업장으로 유명한 곳”이라며 “여전히 안타까운 죽음과 사고가 계속되는 이유는 동국제강이 제대로 된 책임을 지거나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동국제강에선 최근 5년간 총 6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 측에 따르면 이번 사고가 발생한 동국제강 포항공장의 경우 지난해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정기감독에서 23건의 안전수칙 위반 사실이 적발돼 2800여만 원의 과태료를 내기도 했다.
정부에서도 동국제강을 하청업체 노동자 사고 사망 비중이 높은 원청으로 꼽았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중대재해 발생 등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업장 명단을 공개했다. 동국제강은 당시 ‘하청노동자 사고사망 비중이 높은 원청’으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국제강의 안전관리가 여전히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국제강은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해 정비·보수 등의 작업을 진행해 구조적으로 안전관리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권영국 변호사는 “사망한 이 씨뿐 아니라 크레인의 운전수도 하청업체 노동자다. 즉, 생산과 같은 핵심업무를 제외한 주변업무를 외주화시킨 것”이라면서 “하청구조를 좋은 말로 ‘고용의 유연성’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원청이 인건비 감축, (사고 발생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동국제강 사고를 비롯해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건 현행법에도 도급인으로서 안전조치 의무가 있지만 다수의 원청기업이 아직도 낮은 수준의 하청업체 관리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며 “작업의 최우선 목표를 안전보다 비용 절감에 두는 기업의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사망한 이 씨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여서 동국제강의 직접적인 책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들은 동국제강이 책임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는 ‘도급인이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고 명시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경영책임자가 안전관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규정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나열했으며 제5조에서는 도급·용역·위탁업체의 노동자에 대해 원청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그간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관련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해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산업재해로 근로자 1명이 숨졌을 때도 구체적인 재발방지 대책은 없었다. 당시 부산공장 노동자 사망 사고는 포항공장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사망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것이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ESG경영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안전총괄조직을 신설했지만 노동자 사망 사고가 또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동국제강 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만큼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동국제강 경영책임자는 대표이사인 장세욱 부회장이다. 장세욱 부회장은 2015년 1월부터 동국제강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본부 관계자는 “동국제강은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인데 여전히 개선이 안 되고 있다. 이는 현장에 안전수칙이 있지만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개선되지 않은 현장에 대해 경영책임자가 본인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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