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카메라·신호등 수천 대 설치 효과 ‘글쎄’…“교통·도로 환경 고려 않고 단속만 강화” 지적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 군 사고 이후 발의된 법안이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을 담고 있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처벌 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2건으로 이뤄져 있다.
민식이법은 2019년 12월 10일 국회를 통과해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교통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바,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어린이보호구역 내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 횡단보도 신호기 등을 우선 설치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 결과 지난해 어린이보호구역 내 과속 단속 카메라와 신호등 설치 수는 꽤 늘었다. 일요신문i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에만 과속 단속 카메라가 3167대 설치됐다. 2017년 111대, 2018년 242대, 2019년 238대, 2020년 573대가 설치된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올해도 1분기에만 869대가 설치됐다.
신호등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 수는 2017년 12월 말 기준 1만 3269대 수준이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600여 대가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민식이법 시행 이후인 2020년 12월 말에는 1124대가 늘어난 1만 5672대, 지난해 12월 말에는 2637대가 증가해 1만 8309대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법 개정 이유처럼 수천 대의 과속 단속 카메라와 신호등 신규 설치가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됐을까. 경찰청에서 받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어린이보호구역 내 13세 미만 어린이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2020년 458건, 지난해 496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민식이법 시행 전에는 2017년 459건, 2018년 413건, 2019년 521건 수준으로 사고가 발생했다. 과속 단속 카메라와 신호등 설치로 사고가 줄었다고 하기에는 모호한 수치다.
특히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는 시민들의 큰 불편을 낳기도 했다. 정부는 민식이법 제정 이후 내놓은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안전 강화대책’으로 전국 스쿨존 내 모든 도로의 자동차 통행 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규제했다. 운전자는 인적이 드문 심야 시간이나 원활한 통행이 필요한 간선도로에서도 어린이보호구역이라면 시속 30km 이하로 서행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내비게이션 업체들은 어린이보호구역을 우회하는 경로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T맵은 목적지 설정시 ‘어린이보호 경로’를 제공하는데, 이는 운전자에게 어린이보호구역을 최대한 우회하는 경로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카카오내비 역시 ‘어린이 안심’ 경로 서비스를 도입해 어린이보호구역을 우회하는 대체 경로를 안내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민식이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과속 단속 카메라와 신호등 설치로 예산은 쓸 대로 썼지만 사고 건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운전자들의 불만만 늘었다. 전문가들은 민식이법이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입법 취지에 맞도록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민식이법은 운전자 단속·처벌에 초점을 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어린이보호구역 주변의 도로 환경이나 교통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속만 강화한 것이다. 가령 보·차도 폭이 좁은 곳은 시속 30km도 빠르다. 반면 간선도로 근처의 시속 30km는 교통 혼잡을 야기한다. 간선도로 근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 문제가 빈번히 발생했던 이유”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사실 사고 내고 싶은 운전자가 어디 있겠나. 운전자들은 사고다발지역이라고 느끼면 자연스럽게 서행한다. 따라서 도로 색을 바꾼다든지 차로를 하나 줄인다든지 알림 표지판을 늘리는 등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에 진입했다는 것을 느끼고 자율적으로 안전 운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단 경찰청은 시속 제한에 대한 운전자들의 불만을 일부 수용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대구 등 간선도로 내 스쿨존 8곳을 대상으로 시간에 따라 제한속도를 시속 30km에서 시속 40~50km로 조정하는 방안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경찰은 시간대별로 스쿨존의 속도제한을 다르게 규정하기 위해 ‘가변형 속도제한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제한 속도가 시속 30km인 간선도로 내 스쿨존은 전국에 1만 6912곳 정도다.
반대로 보·차도 폭이 좁은 이면도로를 보유한 어린이보호구역의 경우 어린이들이 안전히 등·하교할 수 있는 보행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행법상 우리나라는 보도 폭을 최소 2m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어린이보호구역 정비 등으로 그 폭을 1.5m까지 완화했다.
문제는 1.5m 보도에 울타리, 가로수, 신호등, 전봇대 등 시설물들이 자리하면서 보행자들이 느끼는 보도 폭이 더 좁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차도 역시 이륜차, 자동차들의 주차로 보행자들이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건축공간연구원이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보행자길 조성·관리를 위한 보행행태 및 인식 분석 : 보도를 중심으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편측보도가 설치된 이면도로에서 보행자는 보도보다 차도나 길 가장자리 구역에서 보행량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지구단위계획 시행 지침에서 보행 공간 확보를 위해 공개공지 조성을 제시하거나, 시설물들을 공간에 따라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 및 변형할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궁극적으로는 도로 구조를 재편해 보행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보행자 중심의 도로가 조성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는 마련됐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보다 사람이 우선인 보행자 우선도로 패키지법’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패키지법은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에는 ‘보행자 우선도로’에 대한 용어가 정의됐고, ‘도로교통법’도 보행자가 이면도로와 보행자 우선도로에서 도로의 전 부분을 통행하는 보행자 통행권이 강화되도록 개정된 것이 골자다. 해당 개정안은 오는 7월 12일부터 시행된다.
행정안전부는 법 개정으로 도로 폭이 좁은 상가 지역, 주택가, 통학로 등 도로에서 보행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2019년 행안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수행한 보행자 우선도로 시범사업 6개소에 대한 분석 결과 보행환경에 대한 주민 만족도가 사업 전보다 향상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개정안 시행 전까지 보행자 우선도로 지정·조성을 위한 업무편람을 제작·배포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해 보행자 우선도로 시설 기준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 보행자 우선도로가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적극 협조할 계획이다.
이용철 행안부 안전정책실장은 “보행자 우선도로의 도입은 보행자와 차량이 공유하는 공간에서 보행자에게 통행의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보행자 중심으로의 정책 추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보행자 우선도로의 정착 및 활성화 등 보행 안전을 위한 제도 등을 지속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유정훈 교수는 다만 “법은 개정됐더라도 보행자 중심의 도로 환경 개선은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미 조성된 구역을 재편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어렵겠지만 적극적인 투자로 어린이보호구역 내 이면도로 상황을 보행자 우선도로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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