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으로 돕는 척 왼손으로 간 빼먹어
올 5월 빈곤 비즈니스를 일삼아 온 한 업체가 처음으로 민사고발을 당했다. 금형가공업 회사인데, 50~60대 남성 다섯 명을 고용하는 형태로 자사 기숙사에 살게 하면서 지난해부터 1년간 생활보호비를 가로챘다. 업체는 피해 남성들에게 한 달에 한 명당 10만 엔(약 150만 원)씩 기숙사비로 생활보호비에서 떼어갔다. 임금도 주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모두 실직 후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회사 사무실로 찾아갔다고 한다. 사측은 “지금 당장은 일감이 없으니 회사 기숙사에서 머물며 기다려 달라”며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에 입주시켰다. 반년쯤 지나자 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대가로 구청에 가서 생활보호신청을 하라고 종용했다. 구청에 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감시하는 사람이 대여섯 명쯤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업체 측은 이들 이외에도 직접 공원 등에 나가 실직자 여럿을 꾀어 데리고 왔다고 한다.
요양시설로 위장한 신종 비즈니스 업체들은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엘리베이터는커녕 소화기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에 살게 하는 게 태반이다. 타깃으로 삼는 노인은 주로 병원에서 물색한다. 생활보호비를 몽땅 뜯어내는 것도 모자라 외출 금지는 물론 이웃과 대면조차 못하게 한다.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올 8월 오사카 인근 사카이 시 당국은 2008년부터 친지가 없는 노인 11명을 살게 하고, 그들의 통장을 빼앗아 연금과 생활보호비를 가로채온 요양업체를 적발했다. 노인이 머무는 개별 방문은 안에서 열 수 없도록 자물쇠를 채웠다. 식물인간 상태나 치매에 걸린 노인도 있었지만 돌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의료비는 고스란히 챙겼다.
이 업체는 “통장은 동의서를 받아 관리한 것”이라며 “현관문에는 열쇠를 안 채웠다”고 변명했다. 현관은 오토 도어락이라 사용법을 아는 노인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들어오는지 몰라 집안에만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가짜 병원을 만들고 구청에서 의료비를 받아 챙기는 업체도 적발됐다. 이 업체는 비교적 건강하지만 오갈 데 없는 노인들만 모아서 허름한 아파트에 거주시켰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무허가 병원이나 적자가 심각해 경영난에 빠진 병원과 미리 짜고 노인들을 데리고 갔다. 체온과 혈압을 재는 등 기초 검사만 한 뒤 의료비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병원에 갈 때는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승합차 등에 태웠다. 오사카에 있는 이 업체는 작년 한 해만 무려 2700만 엔(약 4억 원)을 벌었다.
그런가 하면 노숙인만을 대상으로 생활보호비를 가로채는 업체들도 있다. 경매 등에 나온 싼 건물을 구한 뒤, 이곳에 작은 방을 만들어 간이 이층 침대를 설치해놓고서는 노숙인들을 머물게 한다.
일단 노숙인이 들어오면 당일이나 이튿날, 구청에 생활보호비를 신청하게 한 뒤 방값으로 받는다. 한 달에 10만~12만 엔(약 150만~177만 원)을 방 값으로 가로챘다. 턱없이 비싼 방값을 내고 약 2만~3만 엔(약 30만~45만 원)씩만 돌려받은 것이다. 업체 측은 노숙인에게 통장을 만들게 해 통장만 주고 현금카드는 뺏어 자기들이 쓰고 있었다.
이 업계의 성수기는 날이 추워지는 12월부터 봄이 오는 3월까지다. 노숙인들이 추위를 못 이겨 어디든 들어가려 애를 쓰기 때문이다. <주간SPA>에 의하면, 이 업체들은 공공연히 “스카우트한다”면서 노숙인을 찾아 나서는데, 이런 행태는 은어로 ‘노숙인 사냥’이라 불리고 있다. 그들의 수법은 일정 기간 동안 간단한 주먹밥이나 컵라면을 사주면서 경계심을 푼 다음 자기 업체 숙박시설로 들어오라고 유인하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서너 명이 조를 이뤄 노숙인들을 유혹한다. 특히, 지난 몇 년간 톡톡히 재미를 본 이런 업체들은 최근에는 대담하게도 공공 고용센터에 줄을 선 구직희망자들에게도 마수를 뻗치고 있다고 한다.
신종 빈곤 비즈니스 때문에 재정이 휘청거리는 지자체도 생겨났다. 빈곤층이 많은 오사카 니시나리구는 주민의 3분의 1이 생활보호수급자다. 눈여겨 볼 점은 절반 이상은 최근 1, 2년 내에 전입됐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시당국이 나섰다. 부정행위가 의심될 경우 금융기관과 조사해 형사고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10월 초에는 시와 세무당국의 조사로 생활보호수급자들에게 공동주택을 제공해 온 20개 법인이 수년간 무려 2억 엔(약 30억 원)의 소득신고를 일부러 누락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직까지 이 같은 신종 빈곤 비즈니스 업체가 대체 몇 개 정도나 되는지 공식적인 집계는 없다. 하지만 올해 일본에서 생활보호수급자 수가 역대 최다인 200만 명인 점을 볼 때 상당히 많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생활보호 총액은 20조 엔(약 296조 원)에 이른다. 한편 일본변호사연합회 측은 피해사례집을 발간하고, 전용 상설 상담 전화을 만들며 관련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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