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5강 경쟁에 시장 활기 띠지 않아…박동원-김태진 맞교환 KIA-키움 ‘윈윈’
반면 KBO리그는 10개 구단이 단일 리그를 치른다. 5위 안에만 들면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을 따낼 수 있으니, 하위권 팀들도 쉽게 시즌을 포기하기 어렵다. 트레이드로 보낸 선수가 상대 팀에서 맹활약하기라도 하면 곧바로 아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큰 시즌엔 사정이 좀 낫다. 가을 야구를 위해 '원 포인트' 전력 보강이 필요한 상위권 팀과 새 판을 짜서 리빌딩을 하고 싶어 하는 하위권 팀의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맞물릴 수 있다. 그러나 올해처럼 각 팀 전력이 엇비슷하고 5강 경쟁이 치열한 시즌에는 트레이드가 더 성사되기 어렵다. 실제로 여러 팀 단장이 트레이드 시도를 인정하거나 "언제든 (트레이드 논의에) 열려 있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대부분 카드나 조건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 각자의 손익계산이 복잡해서다.
#우여곡절 끝에 박동원 KIA 이적
올해 가장 화제를 모은 트레이드는 단연 키움 히어로즈 소속이던 포수 박동원의 KIA 타이거즈 이적이다. 키움은 지난 4월 24일 "포수 박동원을 KIA에 주고 KIA에서 내야수 김태진과 2023년 신인 2라운드 지명권, 현금 10억 원을 받는 트레이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트레이드가 절실했던 건 KIA 쪽이다. KIA는 최근 수년간 마땅한 주전 포수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올 시즌 초반에도 포수 김민식과 한승택이 번갈아가며 마스크를 썼지만, 김종국 감독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타율이 좋은 김민식은 장타력과 블로킹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한승택은 도루 저지 능력이 뛰어나지만 타율이 2할대 초반에 머물렀다.
반면 키움은 박동원과 이지영, 두 주전급 포수를 보유해 안방이 든든했다. 두 포수에게 특정 선발 투수 경기를 맡기는 '전담 포수제'를 운영했을 정도다. 실제로 KIA는 지난해 한 차례 키움에 트레이드를 제안했다가 조건이 맞지 않아 실패했는데, 이번엔 키움 감독 출신인 장정석 KIA 단장이 트레이드를 주도해 마침내 박동원을 영입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거다. 트레이드의 주체인 키움은 과거 현금이 포함된 트레이드와 관련해 수차례 문제를 일으켰던 팀이다. 구단 운영비 마련을 위해 현금을 받고 주축 선수들을 경쟁 팀에 팔아 팬들의 비난을 받았고, 2018년엔 공개된 액수보다 더 많은 뒷돈을 챙긴 사실이 발각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KBO와 10개 구단 대표이사들이 '이면계약 엄금'을 결의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키움은 이미 지난해 1월에도 현금이 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내부 자유계약선수(FA)였던 불펜 투수 김상수와 2+1년 총액 15억 5000만 원에 계약한 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로부터 현금 3억 원과 2022년 2차 4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받고 김상수를 내주는 '사인 앤드 트레이드'였다.
KBO는 결국 "세부 내용을 신중하게 검토한 뒤 트레이드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승인을 보류하고 제동을 걸었다. 야구 규약 88조에는 '총재는 계약 위반을 확인하기 위해 트레이드한 양수·양도 구단에 세금 계산서, 입금증 등 금융명세를 포함한 자료의 제출을 요청할 수 있고, 구단들은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유예기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KBO는 하루 동안 두 구단이 제출한 트레이드 관련 내용을 상세하게 살핀 뒤 25일 승인을 결정했다. 이어 "이번 승인과 별개로, 향후 구단끼리 현금이 오가는 트레이드와 관련해서는 더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며 "추후 키움과 KIA 구단에 (현금 10억 원이 오갔다는 점을 증명할) 통장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동원-김태진 맞교환 누가 이득 봤나
한때는 트레이드를 날벼락으로 여기는 선수가 많았다. 트레이드 특성상 발표 직전까지는 절대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비밀을 지키는 게 필수.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은 선수들은 주로 충격을 받았고, '팀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새 소속팀이 나를 선택했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선수층이 너무 두꺼운 팀에서 뛰어서 좀처럼 자리가 없거나 팀 내 불화에 시달리는 일부 선수들은 스스로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도 한다.
키움에서 이지영과 안방을 나눠 맡아야 했던 박동원도 이번 트레이드를 반긴 선수 중 하나다. 트레이드 승인이 완료되기도 전에 KIA 선수단에 합류해 KIA 유니폼을 입고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입단이 공식화한 26일에는 곧바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수원 KT 위즈전에 선발 포수로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이적 후 첫 홈런까지 터트리며 화려한 신고식도 했다.
이후에도 박동원은 꾸준히 주전 안방마님으로서 제 몫을 하고 있다. 포수로서뿐만 아니라 타선에서도 팀에 도움이 된다. KIA는 최형우, 나성범, 소크라테스 브리토 등 왼손 타자가 많은 팀이다. 지난해 홈런 22개를 때려낸 박동원이 우타 거포로 배치돼 좌우 밸런스가 좋아졌다.
그렇다고 박동원을 보낸 키움이 전력상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당초 이 트레이드가 발표됐을 때 모든 관심은 '박동원'이라는 이름과 '현금 포함 트레이드'라는 사안에 쏠렸다. 그러나 KIA에서 키움으로 건너간 내야수 김태진도 이 트레이드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태진은 허리 부상 탓에 곧바로 키움에 합류하지 못했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뛰기 시작했는데, 3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올리면서 활약하고 있다. 5월 12일 고척 두산전부터는 어깨뼈 부상으로 이탈한 베테랑 외야수 이용규 대신 리드오프를 맡았다. 1루수, 3루수, 중견수를 모두 맡을 수 있어 활용 가치도 높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이용규가 빠진 상황에서 김태진이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중요할 때 출루해 팀에 활력을 준다"고 칭찬한 뒤 "박동원과 호흡을 맞추던 에이스 에릭 요키시도 지금은 이지영과 호흡이 더 좋은 것 같다"며 트레이드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태진에게도 키움 이적은 '윈윈'이다. KIA의 류지혁, 박찬호, 김도영 등 쟁쟁한 선수들과 포지션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이적하자마자 빈자리가 생겨 실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이민우-이진영도 한화의 복덩이
KIA는 박동원 영입 트레이드를 발표하기 하루 전, 한화 이글스와 또 다른 트레이드를 했다. 한화에 오른손 투수 이민우와 외야수 이진영을 내주고 오른손 투수 김도현(개명 전 김이환)을 받는 2대 1 트레이드였다. KIA는 "김도현은 완급 조절 능력이 탁월하고 변화구 구사 능력이 좋은 투수다. 선발과 불펜을 모두 경험했으니, 우리 팀에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화는 당시 외국인 투수 라이언 카펜터와 닉 킹험이 둘 다 부상으로 빠져 있는 상황이라 경험 있는 투수 보강이 시급했다. 22세 젊은 투수 김도현을 KIA로 보내는 대신 1군에서 100경기 넘게 등판한 투수 이민우와 유망주 외야수 이진영을 데려왔다. 그리고 현재 그 트레이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둘 다 1군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면서 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어서다.
2015년 1차 지명으로 KIA의 선택을 받은 이민우는 그동안 기대만큼 잠재력을 터뜨리지는 못했다. 지난해까지 1군 통산 104경기 평균자책점이 6.62에 그쳤다. 하지만 한화 이적 후 불펜으로 등판한 6경기에서 10과 3분의 2이닝 동안 자책점을 3점(평균자책점 2.53)만 내주는 안정적인 피칭을 했다. 이적 후 첫 선발 등판이던 5월 17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5이닝 1실점으로 첫 선발승도 거뒀다.
트레이드의 메인 카드가 아니었던 이진영의 활약은 이보다 더한 반전이다. 그는 2016년 KIA 입단 후 95경기에서 타율 0.189, 홈런 2개, 14타점을 기록한 게 전부다. KIA 외야에서 입지가 좁아져 올해는 트레이드 전까지 한 번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팀을 옮긴 후에도 처음엔 2군에 머물렀다. 하지만 4월 27일 처음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뒤 어느새 1군 붙박이 멤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타율은 높지 않지만, 5월 26일까지 한 달 사이에 홈런 5개를 쳤다. 지난 6년 통산 홈런 수의 두 배가 넘는다. 한화 타자 중 최다 홈런이기도 하다. 5월 22일 고척 키움전이 끝난 뒤엔 프로 데뷔 7년 만에 처음으로 경기 수훈선수 인터뷰도 경험했다. 트레이드 손익 계산을 하기에 아직은 이른 시점이지만, 이들을 선택한 한화가 흐뭇한 미소를 짓기엔 충분한 활약이다.
이후에도 네 건의 트레이드가 더 발표됐다. 5월 9일엔 KIA가 SSG에 포수 김민식을 내주고 왼손 투수 김정빈과 내야수 임석진을 받는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주전 포수 이재원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은 SSG는 박동원 영입 후 포수 자리에 숨통이 트인 KIA에서 백업 포수 김민식을 데려왔다. 또 왼손 불펜 투수가 부족한 KIA는 한때 필승조를 맡았던 김정빈을 영입하면서 내야 수비도 함께 보강했다.
KIA가 폭풍 같은 트레이드 릴레이를 펼치자 지난해 통합 우승팀 KT 위즈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KT는 5월 21일 LG 트윈스 내야수 장준원을 영입하는 대신 내년 신인 5라운드 지명권을 LG에 양도하는 트레이드를 했다. 장준원은 2014년 입단 후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내야가 약한 KT는 백업 자원 보강이 필요해 그를 선택했다. 때마침 LG는 현재 선수단 등록 인원(65명)이 꽉 찬 상황이라 다음달 오른손 투수 김영준을 정식 선수로 등록하려면 한 자리를 비워야 했다. 두 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KT는 다음 날인 22일 왼손 투수 정성곤을 SSG로 보내고 오른손 잠수함 투수 이채호를 맞교환하는 트레이드도 연이어 발표했다. 둘 다 올해 2군에서만 뛰던 선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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