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득점왕 손흥민, 윤 대통령 1호 축전 받아…국가 중심서 국민 중심으로 탈권위주의 메시지
지난 5월 23일 새벽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토트넘 홋스퍼 소속 손흥민 선수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올랐다. 손흥민은 2021-2022시즌에서 총 23득점으로 이집트 출신 골잡이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유럽 5대리그 득점왕이 됐다. 차범근과 박지성 등 전설적 선수들도 이뤄내지 못한 쾌거였다.
5월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3일 만에 일어난 경사에 축전을 보냈다. 윤 대통령 1호 축전이었다. 윤 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2021-2022시즌 득점왕을 차지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이번 수상은 시즌 내내 팀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고 노력한 손흥민 선수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세계 최고 수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 득점왕은 손흥민 선수 개인 영예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축구계 모두가 축하할 경사”라면서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손흥민 선수 득점왕 수상은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스포츠 스타가 이뤄낸 성과에 대한 축전은 대통령 축전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종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에게 축전을 보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인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US오픈에서 우승한 박세리에게 축전을 보냈다. 수영 박태환, 피겨 김연아 등 유명 스포츠 스타들도 대통령 축전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과시한 연예계 스타들을 향한 축전도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고 강수연 씨에게 축전을 보냈다. 1993년엔 영화 ‘서편제’로 제1회 상하이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오정해 씨가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축전을 받았다.
2002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화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한 문소리 씨에게, 2007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화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 씨에게 각각 축전을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BTS)에 축전을 보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대통령 축전들을 살펴보면 한국 대중문화·예술·스포츠의 굵직굵직한 흐름을 유추할 수 있다는 평가다. 축전 방식도 시간을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거쳤다. 초창기 대통령 축전 키워드는 국위선양과 치하였다. 언론 보도에서도 ‘대통령이 특정 인물이 국가의 명예를 드높인 것을 치하한다’는 내용으로 축전을 소개했다.
1990년대 대통령 비서실 소속으로 일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축전을 보낼 정도면 국가의 위상과 맞물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국위선양이란 키워드는 꼭 필요했다”면서 “여기다 대중 정서 자체가 한국이 국제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과시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예술·문화·스포츠계 성과로 대변되는 시대적 특성도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대통령 축전 트렌드는 2010년대 들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성과를 낸 스포츠 선수들에게 보내는 축전을 이미지 형식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선수 사진과 축전 일부 내용을 담는 형식으로 대중에게 축전을 홍보했다. 홍보 방식은 달라졌지만, 국위선양을 치하하는 축전의 큰 틀은 유지됐다.
문재인 정부는 ‘국위선양’이란 키워드를 덜어냈다.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통령실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 아래 장문의 축전을 담는 형식이었다. 축전 내용 또한 편지 형식으로 디테일을 추가하는 양상이었다. 한 야권 관계자는 “국가의 명예보다 국민들이 특정인에 대해 보내는 사랑을 강조하는 등 권위주의에서 탈피한 대통령 축전이 호평을 받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1호 축전에서도 탈권위주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손흥민 선수에게 전하는 축전에서 국위선양 혹은 국가의 명예 등 키워드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윤석열 정부에서도 시대 흐름에 맞춰 국가 중심 전체주의적 사고보다 국민 중심적 사고를 탑재하는 것에 축전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1호 축전에 들어가는 상단 무늬를 문재인 정부에서 활용하던 황금색 봉황 문양 대신 제20대 대통령실 엠블럼을 활용했다. 태극 날개를 형상화한 문양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준비위는 4월 22일 새로운 엠블럼에 대해 “연결과 약속, 새로운 희망을 표현하는 이번 엠블럼은 국민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동적이고 밝은 미래의 희망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최근 들어 축전은 정부의 색깔을 나타내는 표현의 장 역할도 해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가운데, 문화·예술·스포츠계 축전에 비해 조명을 덜 받는 축전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외국 지도자 취임 및 경사 등 외교 파트 축전이다. 국내에서 개최하는 다양한 국제행사에도 대통령 축전은 빠지지 않았다.
축전은 대통령 비서실 실무자들이 ‘신속·정확’을 모토로 세심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대통령 비서실 실무자는 “축전 대상과 관련된 실무를 담당하는 행정관들이 축전을 미리 준비해 놓으면, 연설문을 담당하는 실무 행정관들이 빠르게 해당 축전을 검토한다”면서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정확하고 알맞은 타이밍에 축전이 발표될 수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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