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했다간 은행 대출이 세입자 빚으로 남을 수 있어…전세시장 거품 만드는 ‘업계약’으로 볼 소지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전셋집을 구하던 직장인 A 씨는 최근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을 받았다. 공인중개사가 처음 연락했을 때 본 매물이 아닌 다른 매물을 소개해준다면서 ‘집주인 전세 이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매물을 제안한 것. 갓 지어진 신축 빌라에 입주하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보증금을 내야 하는 대신 은행 대출 이자의 일부를 집주인이 매달 일정액을 지원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A 씨는 “70만 원의 월 이자 중 집주인이 40만 원을 현금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고 제가 손해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계약했다”고 말했다.
최근 이처럼 집주인이 세입자의 전세 이자를 지원하는 매물이 늘어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인중개사는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빌라가 많은 강서구 화곡동이나 양천구 신월동 일대에 그런 매물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 규제, 금리 인상으로 분양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외곽지 등 일부 지역에서 생겨난 변화”라며 “분양 물건을 전세로 돌린 후 건축주가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으로 신축 건물 건축에 투입된 비용을 먼저 받아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집을 공실로 두고 높은 대출 이자를 감당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건축주가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받아 대출을 상환하는 대신 세입자의 대출 이자를 일부 보조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인근 매물과 위치나 상태, 면적까지 비슷하지만 시세보다 최대 1억 원 가까이 비싼 가격으로도 거래가 성사된다.
당장 대출이자를 지원받으며 신축 건물에 들어가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손해는 없어 보인다. 다만 2년의 계약 연장을 청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가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뒤따른다. A 씨 또한 “전세이자 지원이 끝나면 한 달에 40만 원의 이자를 추가로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계약 갱신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증금이 시세보다 높아 다음 세입자가 잘 구해지지 않는 것도 우려사항이다. 집주인이 이미 세입자의 보증금을 받아 대출을 상환한 후이기 때문에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가능성도 생긴다. 이 경우 어쩔 수 없이 다음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기존 세입자가 대출을 연장해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이자 지원을 받기로 계약된 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높은 대출 이자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대출 연장이 거부당할 경우, 대출금이 고스란히 세입자의 빚이 되기도 한다. 임대차 계약은 계약서에 명시한 기간이 지나면 종료되는 것이 원칙이나, 임대인과 임차인 둘 모두가 계약 해지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임차인이 계속 그 집에 머무를 경우 계약은 자동으로 연장된다. 이를 묵시적 갱신이라고 하는데 임대차 조사 결과, 실제 묵시적 갱신에 관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은행이 대출 연장을 거부할 수 있다.
즉 실제로 임대차 계약을 갱신한 경우가 아닌,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임시로 대출금 상환을 유예하는 경우는 묵시적 갱신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대출 기간은 임대차 기간에 맞춰서 정해야 하는데 임대인이 기간을 특정하지 않으면 저희도 몇 개월을 연장할지 몇 년을 연장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대출 연장을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매물이 '깡통전세'일 가능성이다. 깡통전세는 전세보증금 금액이 실제 매매가격에 근접할 정도로 높아 집값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세입자가 돈을 돌려받기 어려운 매물이다. 깡통전세 예방을 위해 해당 매물의 근저당 채권액에 전세금을 포함한 금액이 집값의 70~80% 이상인 매물에는 입주하지 말라는 예방책이 떠돌지만 전세 이자를 지원받는 신축빌라의 경우 시세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깡통전세는 최근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021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액수는 5790억 원으로 연간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사고액수는 1391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에 비해 264억 원 늘어난 금액이다.
이와 관련해 권대중 교수는 “정상적인 시장에서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 대출 이자를 내주는 형태는 없다. 임대인이 오히려 세 부담을 안고 이자를 감당하면서 세입자를 끌어들인다는 경우는 그 물건이 정상 물건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라며 “건물은 있지만 임대가 안 나가는 도시 외곽 지역이나 지방 등 매매도 안 되고 전세 수요도 적은 곳에서 집주인이 세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쓰는 방식인데 깡통전세가 될 가능성이 높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높은 보증금이 결과적으로 인근 지역의 보증금 가격을 연쇄적으로 끌어올려 전세시장 거품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집주인 전세 이자 지원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베푸는 선의가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부동산 시장 만드는 데 가담하게끔 만드는 것”이라며 “대출 이자를 지원해줄 정도면 처음부터 보증금을 낮춰서 계약했어야 할 문제인데 해당 지역의 매물 가격을 유지하려고 거품을 만든 셈”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을 실제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임대차한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이기 때문에 ‘업(UP)계약’으로 볼 소지도 있다. 본래 업계약은 주택 거래 시 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실거래가보다 가격을 낮춰서 신고한 ‘다운(DOWN)계약’의 반대 개념으로, 업계약을 맺었을 경우 향후 집값이 올랐을 때 양도세를 적게 내거나 담보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업계약이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될 경우 실제 주택 가격이 오른 것처럼 비치며 매수인의 심리에 영향을 미쳐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매매가 아닌 임대차 거래라고 할지언정 임차인과 임대인 둘이 합의해서 실거래가와 다른 내용의 계약서를 쓴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업계약으로 볼 소지가 있고 밝혀지면 둘 다 제재 받을 수 있는 사안” 이라며 “임대차 보증금 가격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은행 대출의 규모가 달라져 부동산 투기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거래 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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