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한 팀에 있으면 단점 많을 것 같이 데이원자산운용 선택 안해”
이승현의 KCC 입단도 화제를 모았지만 허웅의 합류는 더 큰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KCC와 아버지 허재 전 감독(현 데이원자산운용 최고책임자)의 인연 때문이다. 허재 전 감독은 2005년부터 10년간 KCC를 이끌며 두 차례 정상에 올랐다. 허웅은 중·고교 시절 때 아버지의 팀이었던 전주 KCC를 응원하기 위해 동생 허훈과 함께 자주 농구장을 찾은 바 있다. 그런 인연이 지금은 소속팀이 돼 새로운 인연으로 덧입혀졌다.
허웅은 엄청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스타플레이어다. 농구대잔치 시절의 이상민, 우지원의 인기에 비견될 정도이고, 이전의 ‘오빠부대’들을 능가하는 여성 팬들이 그를 쫓아다니며 응원을 보낸다. 그래서 허웅이 가는 팀은 선수의 상품성은 물론 티켓 파워도 함께 데려가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5월 26일 전주 KCC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의 마북리에서 허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5월 24일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벌써 팀에 합류해 훈련을 하는 건가.
“다음주 월요일(30일)부터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는 터라 앞으로 2개월가량 KCC 선수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어 미리 적응하려고 들어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단 며칠 만이라도 팀 분위기를 익혀두고 싶었다.”
―사실 이곳은 아버지가 계실 때 자주 찾아오던 곳이라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그때는 어린 나이였고,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방문차 온 거지만 지금은 KCC 선수로 생활하는 거라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숙소, 체육관 등 이전과 변한 게 없다. 그래서 적응하기가 수월한 것 같다.”
―생애 첫 FA를 경험했다. 팀을 결정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원주 DB는 신인 때부터 상무 포함해서 7년이란 시간을 함께했던 팀이다. 20대의 거의 대부분을 원주에서 보냈고,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내가 힘들 때나 잘할 때나 항상 옆에서 응원을 보내준 팬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 팀을 떠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마음의 정리가 안됐다. 7년의 시간을 정리한다는 게 어렵더라. 그럼에도 지금 중요한 건 새로운 팀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고, 대표팀에 뽑힌 만큼 태극마크를 달고 열심히 뛰는 것이다.”
―FA를 앞두고 나름 세운 기준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기준이라기보단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농구를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깊이 있게 상의했다. 아버지가 어느 팀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그중 KCC를 선택할 경우 이런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KCC의 농구 시스템이나 팀 문화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만 설명해주셨다. 최종 결정은 가족들과 상의 후에 했다. 그 팀이 전주 KCC였다.”
―계약 기간 5년에 첫해 보수 총액이 7억 5000만 원이다. 예상보다 적은 금액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몸값은 선수한테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승 아닌가. 우승해서 돈을 더 많이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KCC의 우승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입단 기자회견에서 이승현 선수가 KCC와 FA 계약 후 허웅 선수와 같이 뛰고 싶은 마음에 자주 연락했다고 밝혔다. 이승현 선수의 전화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이)승현 형의 전화 이야기는 약간의 농담식으로 말한 것이고 FA 결정은 내 인생이고, 내 선택이라 가족 아닌 누군가한테 영향을 받진 않았다. 승현 형과는 용산 중·고교 시절, 그리고 상무에서도 함께 뛰며 좋은 인연을 이어온 터라 같이 뛸 수 있다면 시너지 효과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만남이 있으면 다른 한쪽에선 이별이 존재한다. 원주 DB에서 동고동락했던 선수들과 헤어지는 게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정말 그렇다. 그럼에도 형들이 먼저 인사를 해줬다. 내 선택을 존중하겠다면서. 오히려 몸 관리 잘해서 좋은 모습 보여 달라고 응원을 보내주셨다. 나 또한 (김)종규 형, (강)상재 등 DB 선수들이 더 잘하길 바란다. 서로 응원하며 코트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아버지가 구단 최고책임자로 있는 데이원자산운용 입단을 아예 생각조차 안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내 입에서 데이원자산운용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추측성 기사들이 나오더라. 선배들도 내가 아버지 따라 데이원자산운용에 가는 줄 알고 있더라. 아버지는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가이드해주셨다. 마지막 선택은 내가 했을 뿐이다. 기자회견에서도 말했듯이 아버지와 한 팀에 있는 건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주 KCC가 가장 가고 싶은 팀이었다.”
―허웅 선수한테 FA는 어떤 의미를 안겨줬나.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겠지만 아버지의 길을 걸어가는 것 같다. 아버지가 선수 시절 원주(삼보)에서 선수 생활하시다 전주 KCC 사령탑을 맡았는데 나도 원주 DB에 있다 KCC로 팀을 옮겼다. 아버지는 내게 최고의 농구 선배이시다. ‘농구 대통령’이셨던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간다고 생각한다.”
‘농구 대통령’ 아버지와 그의 아들은 국가대표팀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난 적이 있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허웅 외에 허훈 선수도 함께 대표팀에 발탁하면서 ‘아들 특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허웅은 오히려 아버지가 감독이란 사실로 인해 더 긴장했고, 더 책임감을 갖고 코트를 뛰었다고 말한다. “정말 열심히 했다. 무조건 여기서 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수원 KT에서 활약 중인 동생 허훈은 현재 군 복무 중이다. 같이 농구 선수로 뛰다 보니 두 형제는 자주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도 허웅은 ‘쿨’하게 대답했다.
“훈이는 농구 재능이 굉장히 뛰어난 선수다. 농구적인 부분에선 내가 훈이를 보고 배운 게 많다. 농구인이라면 훈이의 재능을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훈이가 하는 스텝은 슛을 쏘며 따라해 보기도 했다. 형제가 농구 선수로 뛰며 한 사람은 잘하고 다른 사람이 못하면 그것도 불행이고 서운한 일인데 동생과 함께 잘되고 있고, 인정받는 게 기분 좋다.”
허웅은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과 인기보다 더 중요한 건 실력이라고 말한다. 농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뛰어난 경기력으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선 부상 없이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허웅과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의 아들 이종범 LG 2군 감독도 부럽지만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허웅, 허훈 아버지 허재 전 감독은 더 부러운 대상이라고. 허 전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웅이, 훈이 아버지 허재입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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