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오 경찰청장 |
하지만 최근 발생한 각종 경찰 비리 사건으로 경찰의 위상과 도덕성은 크게 추락하고 있다. 일반 범죄와 마찬가지로 수법도 다양한 경찰 비리 백태를 들여다봤다.
# 장례식장에서 무슨 일이
경찰의 날 다음날인 10월 22일 조현오 경찰청장은 주말임에도 이례적으로 경찰청 간부 60여 명을 긴급 소집했다. 조 청장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경찰의 강도 높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장례식장 유착 비리와 같은 경찰 비리는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수사 주체로서의 사명감을 망각한 부끄러운 행태”라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조 청장이 이처럼 분노한 장례식장 유착 비리는 교통사고나 자살 등으로 숨진 변사 시신을 장례식장에 돈을 받고 넘기는 것을 말한다. 서울 남부지검은 10월 중순 영등포 인근 한 장례식장에서 변사체를 운구해주는 조건으로 시신 1구당 30여 만 원의 돈을 챙겨준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뒷돈 거래를 한 경찰관 10여 명의 이름이 담긴 장부를 입수하고 해당 장례식장 이 아무개 씨(54)를 구속했다. 이 씨는 구로경찰서 경제수사팀에 근무하다 금품수수 혐의로 옷을 벗은 전직 경찰이었다. 그가 운영하던 장례식장은 비슷한 규모의 장례식장 5~6배, 인근 대학병원의 2배 이상 많은 변사 시신을 처리했다.
설상가상으로 10월 21일에는 인천의 한 장례식장에서 발생한 조직폭력배 난투극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인천지역 경찰 간부들이 중징계를 받았다. 당시 인천에서 활동하는 신간석파와 크라운파 조직원 130여 명이 충돌을 빚었는데 신간석파 조직원과 신간석파에서 크라운파로 이적한 조직원의 말싸움이 원인이 됐다. 주민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은 눈앞에서 조폭 한 명이 흉기에 찔리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돈 되는 곳이면 그들이…
장례식장뿐만 아니라 유흥업소와 사행성 오락실 등 단속이 잦은 곳에는 어김없이 비리 경찰이 뜬다.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비리 혐의로 징계를 받은 경찰은 1157명에 달한다. 올해도 지난 7월까지 예년보다 많은 수준인 746명이 징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지난 8월까지 서울경찰청 소속으로 파면·해임된 경찰관은 224명이었다. 이는 비리 혐의로 파면·해임된 전체 경찰관 560명의 40%에 달한다. 서울은 다른 지역보다 경찰관 수가 많을뿐더러 유흥업소와 불법오락실 등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관내 노래방 업주로부터 13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서울 관악경찰서 경찰관 1명이 적발됐고, 작년 11월에는 서울 서초동의 한 안마시술소의 성매매를 눈감아 주고 2600만여 원을 챙긴 혐의로 서초경찰서 조 아무개 경위가 구속되기도 했다.
특히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강남지역은 이번 TF팀이 꾸려지기 전 자체적으로 ‘강남권역 특별감찰팀’을 꾸렸지만 현재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다.
견인업체와의 유착도 역사가 깊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경찰은 가까운 견인업체를 불러야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친분이 있거나 뒷돈을 받은 업체를 부르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도 이를 잡아낼 뾰족한 방법이 없다. 덕분에 비난은 단속공무원에게 돌아간다. 도로교통법 상 당연히 견인차를 대동해 단속에 나설 수 있음에도 견인업체에 돈 받은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 ‘윗물’부터 맑아야 한다?
그러나 부패 척결을 위해선 윗물부터 맑아져야 한다는 내부 반발도 거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임 경찰청장들의 비리 전적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은 이른바 ‘함바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현재 법정 공방 중이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도 2007년 재직 당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다. 경찰 ‘허리층’인 경사·경위급들의 비리 관행이 그대로 아래로 이어지는 전통도 문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수많은 경찰관들에게까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문제가 불거진 영등포와 구로 관할 경찰관들은 개인 휴대전화 통화내역까지 조회당하며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서울 영등포 경찰서는 10월 23일부터 ‘장례식장 업주와 통화한 자는 자진 신고하라’는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전송했다. 이에 죄 없는 일선 경찰관들은 졸지에 ‘비리 경찰’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의 리더십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책임지는 모습은커녕 언론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선 경찰관들은 ‘자기 식구’를 감싸지 않고 누구 편을 드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찰 비리 TF팀’이 한 달 동안 썩을대로 썩은 경찰 비리 문제를 얼마만큼 도려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