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생태계 망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버렸지만 “무슨 가치 있는지…” 차가운 반응
UST는 20% 이자를 주는 앵커 프로토콜이란 서비스를 론칭했고 예치 자금이 폭발하면서 루나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앵커 프로토콜 영향으로 루나 가치가 폭등해 올해 초 시가총액 약 50조 원에 달했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시가총액 50조 원이 넘는 곳은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SK하이닉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정도다. 루나의 시총이 10위권 경제대국에서도 다섯 번째로 꼽힐 만한 대규모 금액이었던 것.
그런데 5월 초 UST가 1달러를 보장하지 못하면서(디페깅) 뱅크런과 같은 ‘테라런’이 발생했다. 너도나도 UST와 루나를 매도하면서 50조 원이었던 시가총액이 마이너스(-) 99.9% 이하로 떨어졌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루나 폭락 사태’ 일주일 전 ‘체스닷컴’ 인터뷰에서 “코인의 95%가 몰락할 것이고 이를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라며 웃었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루나는 국내에서 처음 시작된 코인은 맞지만 국내 비중은 매우 적고, 해외 비중이 90% 정도로 추정된다. 국내보다는 해외 피해자가 더 많아 보인다. 워낙 큰 시총이 한 순간에 삭제된 만큼 외신들도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비유하며 기사를 쏟아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의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애초부터 존속 불가능한 모델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테라 생태계 회생 계획을 밝혔다. 1차 계획 제안은 부결됐지만 5월 18일 올린 2차 제안은 커뮤니티 일원이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판단됐는지 통과됐다. 25일 통과된 투표의 투표율은 약 80%에 달했다. 투표 결과 약 65%가 찬성했고, 20%는 기권했고 나머지가 반대했다.
5월 25일자 제안이 통과되면서 27일 오전 6시 새로운 테라 체인이 나오게 됐다. 과거 루나는 루나 클래식이 되고 소위 루나2(가칭)를 그대로 루나로 부르기로 했다. 결정적인 차이는 새로운 루나에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발행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생태계를 망가트린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런 결정을 두고 앞으로 루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테라 생태계가 어떤 역할을 하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나온다. 한 가상자산 투자자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없는 테라 생태계의 루나가 무슨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백서에도 업데이트된 것 같지 않아 무작정 발행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27일 테라의 새로운 메인넷은 피닉스(불사조)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는 권 대표가 ‘잿더미에서 부활한다’는 불사조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 대표는 메인넷 이름뿐 아니라 새로운 탈중앙화 거래소 이름도 피닉스 파이낸스로 지었다. 또한 권 대표는 트위터에서도 테라 2.0은 ‘잿더미에서 새롭게 일어날 기회’라고 적기도 했다.
권 대표 말대로 불사조가 될지, 그대로 재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테라 2.0이 권 대표의 회생 계획에 따라 기존 투자자들은 루나2를 차등 지급 받았다. 루나2의 전체 물량 가운데 35%는 기존 루나 보유자에게, 10%는 기존 UST 보유자에게 분배된다. 테라가 붕괴된 5월 7일을 기준으로 이후 루나 보유자에게는 10%를, 이후 UST 보유자에게는 20%를 나눠준다. 나머지 25% 물량은 테라 재단이나 개발자를 위해 쓰겠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루나 가치가 거의 0에 가까울 때 샀기 때문에 그만큼 적게 나눠 받게 됐다.
나눠 받은 루나2는 곧바로 팔 수 없다. 조건부 불완전 부여(Vesting)라고 해서 30% 물량은 곧바로 움직일 수 있지만 나머지 70% 물량은 시기를 두고 서서히 잠금이 해제된다. 100개를 받았다면 30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70개는 묶여 있는 셈이다. 잠긴 물량 70개의 25%는 2023년 5월까지 서서히 풀리고 75%는 2024년 11월에 모두 풀리게 된다.
과연 루나2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비관적이다. 한 가상자산 투자 전문가는 “대부분 물량이 잠겨 있어 일시적 물량 부족에다 상장 직후 단타 거래 수요 때문에 초기에 가격이 오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루나 단어 자체에 부정적 이미지가 너무 씌워진 데다 테라로 개발하던 프로젝트들도 떠난 경우가 많다. 루나2로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 투자하는 건 위험 그 자체로 보인다”고 경고했다.
최근 국내 언론에서는 권 대표가 서울 남부지검에 신설되는 증권범죄 합수단 1호 타깃이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루나2가 발행된다고 해서 책임이 덜어질까. 서울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김정민 법무법인 로베이스 변호사는 “루나2 출시는 성공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에 대해 사후에 배상을 해줬다’ 정도 의미 외에는 ‘루나1 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보도되는 권 대표 수사 관련해서는 처벌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압수수색이 대대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권 대표의 고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것 때문에 처벌 가능성은 회의적이다”라면서 “다만 피해 액수가 지금보다 훨씬 큰 피해자의 고소가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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