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지 못한 삶과 천성이 되지 못해 완벽할 수 없는 모성, 어느 것도 손가락질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지난 28일 폐막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을 통해 공개됐던 ‘브로커’에는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가 쏟아졌다. “올해 칸 영화제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는 극찬이 나오는가 하면 “영화는 어처구니없고, 캐릭터는 지겹게도 얄팍하다”라는 혹평도 동시에 이뤄졌다. 찬사는 주로 고레에다 감독의 특징인 ‘리얼리즘의 적재적소에 섞여든 로맨스와 가족애’를 옹호하는 측에서 나왔고, 반면 혹평은 사회적 고발에 해당하는 소재를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고레에다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그 태도의 뚜렷함을 잃으면서 이도저도 아닌 ‘무작정 휴머니즘’ 서사로 끝나버렸다는 것을 짚었다.
실제로도 ‘브로커’는 미적지근하게 데워진 냉동식품 같은 이야기와 연출로 이뤄져 있다. 좀 더 날카롭게 짚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 부분은 무뎌졌고 서사에 크게 필요해 보이지 않는 로맨스 기류는 반복될 이유가 없음에도 재차 등장한다. 모성의 모순을 짚으면서도 결국 결핍된 이들을 감싸 안는 것은 모성뿐이라는 종결도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다녀왔어/어서와”로 이어지는 일본의 보편적인 감성이 “태어나줘서 고마워/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마워요”로 옮겨졌을 뿐이라는 점이 아쉽다. 존재의 의미를 늘 곱씹어야 하는 이들에게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위로를 일차원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브로커’는 미혼모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소영(이지은 분)이 교회의 한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두고 떠났다가 불법 입양 브로커 상현(송강호 분), 그의 조력자 동수(강동원 분)와 엮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로드무비다. 불법 입양 브로커를 쫓고 있는 형사 수진(배두나 분)과 후배 이 형사(이주영 분)도 이들의 입양 여정에 휘말리면서 영화는 크게 브로커들의 휴머니즘 스토리와 경찰의 범죄 추적 스토리로 나뉘게 된다. 각 스토리의 결론은 아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한다는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극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 소영이다. 끊임없이 모성의 모순을 보여주는 소영은 낳지 말아야 할 아기를 죽일 수 없었기에 낳았지만,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베이비 박스가 아닌 차가운 바닥 위에 아기를 버려둠으로써 위험에 빠트린다. 아기를 감싼 포대기 안에는 언젠가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이 적힌 쪽지를 넣어뒀지만, 정말로 데리러 갈 생각은 없었던 그는 그것이 공허한 말에 그칠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기를 버린 그의 행동에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수진에게 소리 높여 “아빠의 잘못은 없냐”고 맞서는 모습은 아이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의 책임을 어머니의 모성 부재에서 찾는 사회에 떨어지는 일갈이기도 하다. 이런 소영의 행동은 모성이 결코 선천적이거나 절대적이고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엄마가 된 인간에게 매달린 얇은 실 같은 것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런 소영에 비해 다른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은 너무나도 평면적이기에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브로커 일을 하면서도 아기를 버린 엄마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동수는 예상이 너무 쉬운 과거를 가지고 있기에 소영에게 감화되는 모든 과정이 단조롭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소영을 마음껏 비난해 온 수진도 심경의 변화가 그리 놀랍지 않을 정도로 밋밋한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제 나이에 맞는 눈높이로 어른들의 사회를 날카롭게 지적할 것이라 기대됐던 보육원 원아 해진도 그저 일침만을 위해 만들어진 대사를 별 맛 없이 읊을 뿐이다. 소영을 둘러싼 이들의 무미건조함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작품의 작위성만을 다시 곱씹게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목되는 것은 송강호의 상현이다. 모든 이들이 소영만을 위해 존재하는 한편 상현은 명확하게 자신만의 또 다른 서사를 가지고 있다.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설렁설렁 이야기의 안팎을 툭툭 건드리고 있던 그가 후반부에 이르러 보이는 또 하나의 변화는 칸이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선의를 자칭하며 어설픈 브로커 역할을 해내면서 유사 가족 내에서는 허당 같은 아빠 역할을 해왔던 상현이다. 그런 그가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무겁게 시선을 옮기는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후반부 잠깐 있었던 상현의 공백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신만을 위해 러닝타임을 달려왔다 해도 믿어질 만큼 뇌리에 깊게 각인되는, 송강호 다운 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3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브로커’ 시사회에 참석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브로커’의 출발점이 송강호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2013년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양부모 제도에 대해 조사하던 중 일본에 아기 우편함이란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후 한국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주제와 함께 송강호가 베이비 박스에서 아기를 안고 자상한 미소를 머금고 말을 거는 신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기를 팔려고 하는 것이다. 선악이 혼재한 모습의 송강호가 떠올랐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함께 참석한 송강호는 ‘브로커’의 첫 장면을 보고 너무나도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행위는 잔인하고 차가운, 아이를 버리는 장면이지만 처음 아이가 잡혔을 때는 갓난아기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이미지를 담아냈고 풀어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냉정하고 오히려 차가운 현실을 그대로 그렸다. 우리들은 따뜻함을 가장해서 살고 있지 않나를 작품에서 보여줬고 그게 깊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명을 다루는 방식의 많은 물음과 가슴으로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작품을 설계하고 연출하지 않았나 싶다. 일본과 한국을 떠나 모두가 공유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정리했다.
한편 ‘브로커’는 오는 6월 8일 국내 개봉이 예정돼 있다. 마냥 어둡고 눅눅해질 수 있는 배경이지만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는 송강호 특유의 생활 연기가 짙게 녹아있는 브로커 일당들의 개그 신이 관객들의 숨통을 틔운다. 축 처지는 타이밍에도 틈틈이 피식거릴 수 있게 하는 고레에다 감독의 배려가 아닐까. 129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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