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일가 지분 많은 롯데제과 가치 높게 형성돼 논란…“지배력 유의미한 변동 없을 것으로 판단” 공시
그러나 롯데 오너 일가를 위한 합병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현재 롯데제과는 오너 일가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75%를 넘는다. 합병의 최대 수혜자가 롯데 오너 일가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올해 초 롯데그룹 사장단회의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하다”며 “그동안 생각해왔던 성과의 개념을 바꿔 과거처럼 매출과 이익이 전년 대비 개선됐다고 해서 만족하지 말아 달라”고 언급했다. 또 계열사별로 1등 DNA를 복원하라고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신 회장의 언급대로 롯데그룹의 모태 격인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합병은 외견상 식품사업군 1등 DNA 부활을 위한 전략적 행보로 보인다.
롯데제과는 합병을 통해 각자의 빙과 조직을 통합할 예정이다. 통합법인의 빙과 시장 점유율은 약 45.2%로 해태와 빙그레의 합산 점유율 40.2%를 넘어 단숨에 1위로 올라선다. 롯데제과는 현재 중복된 생산과 물류 라인을 축소해 효율성을 높이고 브랜드에서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적용해 수익성을 높여가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제과와 비교해 재무건전성이 좋은 롯데푸드가 흡수되면 재무적인 면에서 훨씬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34.4%, 19%였다. 통합법인의 차입금의존도는 27.6%가 되는데, 이는 산업권에서 우수하다고 판단하는 비율 30%를 충족하고도 남는 수치다.
업계에서는 소비재 중심(B2C)인 롯데제과와 유지·식자재를 판매하는 중간재 기업(B2B)인 롯데푸드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는 각자의 이커머스 조직도 통합해 현재 10% 미만인 온라인 매출 비중을 오는 2025년까지 25% 이상으로 늘린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롯데푸드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합병 후 기존 양사가 가지고 있었던 영업 한계점이 크게 완화되고 빙과사업에 있어서 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며 “양사가 보유한 브랜드로 전 연령 커버 가능한 생애주기 포트폴리오가 완성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롯데푸드 소액주주들 입장에선 이 같은 합병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수 있다. 롯데제과는 현재 시가총액 약 7251억 원, 롯데푸드는 그 절반 수준인 약 3839억 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푸드와 롯데제과의 매출 격차는 시가총액 대비 크지 않다. 지난해 기준 롯데제과 매출액은 2조 1454억 원, 롯데푸드는 1조 6078억 원이었다.
영업이익은 롯데제과(1084억 원)가 롯데푸드(384억 원)의 3배가량 되지만, 최근 몇 년간 당기순이익을 보면 지난해를 제외하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가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2020년에는 롯데푸드의 당기순이익이 롯데제과보다 많았다. 이 때문에 현재 주가 수준에서 양사가 합병을 하면 롯데푸드 주주들에게 불만이 나올 수 있다. 롯데제과 주가는 현재 11만 원대, 롯데푸드 주가는 31만 원대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주식매수 청구 가격은 각각 11만 5784원, 32만 761원이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소액주주들 가운데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합병에 서면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주주들에게는 주식매수 청구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현재 낮은 시가로 인해 두 회사 간 합병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처지기도 하다.
심혜섭 변호사는 “작년 말 두 기업 모두 빙과류 담합으로 과징금을 부과 받아 일회성 손실이 크게 난 상황이어서 정상적인 주가 형성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점, 롯데푸드는 합병 발표와 동시에 11.02%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는 결정을 했는데 미리 했으면 주가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 등에 비추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합병이 오너 일가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롯데제과는 오너 일가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75.86%, 롯데푸드는 51.52%이다. 이처럼 롯데제과는 오너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롯데푸드에 비해 높아 롯데제과의 지분 가치가 높게 형성되면 오너가에 유리한 합병이 된다는 얘기다.
최근 1년 간 롯데제과와 롯데푸드 주가는 고점 대비 하락세를 맞았지만 롯데제과에 비해 롯데푸드의 낙폭이 더 컸다. 롯데제과 주주 입장에서는 롯데푸드 주주에 비해 우호적인 시기에 합병이 진행된 모양새다. 세부적으로 보면 롯데제과의 지난 2일 기준 종가는 11만 5000원으로 52주 최고가 15만 4500원 대비 25.5% 하락했지만 롯데푸드는 31만 8000원으로 52주 최고가 48만 3500원 대비 34.2% 빠지면서 둘 간 하락폭은 8.7%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롯데푸드 측은 “합병으로 최대주주 변경은 없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배력에 유의미한 변동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공시한 바 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롯데푸드와 롯데제과 모두 지주사 지분이 높은 회사이며 합병으로 인해 롯데제과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분이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롯데제과와 롯데푸드 같은 상장사와 상장사가 합병할 때 주가를 기준으로 그 가액을 산출하는 현행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대주주가 주가 변동 상황을 고려해 자신이 유리한 시기에 합병하거나 주가 호재 공시와 악재 공시를 활용해 주가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동원산업의 경우 고평가된 비상장 계열사와 합병하는 방법으로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합병가액을 결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시가로만 합병 비율을 산출하면 공정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공정가치로 합병 비율을 산정해야 한다. 이는 입법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부 투자자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인데,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합병 비율이 산정되고 주주 가치가 침해되는 현상을 방치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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