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업계 “재고회전율 낮아 반영 늦어”…정부 지원 받는 알뜰주유소와 경쟁 어렵다는 의견도
5월 4주차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전주 대비 30.2원 오른 리터(ℓ)당 1993.8원을 기록했다. 경유 판매가격은 전주 대비 24원 오른 리터당 2000.3원으로 둘 다 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인 오피넷에 따르면 국내 유가에 영향을 주는 두바이유는 5월 31일~6월 1일 배럴당 116.4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9달러 수준이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유가가 폭발적으로 올랐다.
기름값이 치솟자 정부는 당초 4월 말까지로 잡혔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7월 말까지 연장했다. 유류세 인하폭도 5월 1일부터 20%에서 30%로 확대했다. 해당 조치로 추가 인하되는 금액은 휘발유는 리터당 83원, 경유는 58원, LPG는 33원이다. 유가가 지나치게 뛰어오르자 자동차 연료에 붙는 세금을 일정액 감면해주면서 소비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였지만, 문제는 일선 주유소들의 유류세 반영이 늦어지면서 소비자들이 인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유류세를 인하한 지 2주째인 5월 중순까지 유류세 인하분이 기름값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유류세 인하분과 국제 휘발유 가격 인상분을 합친 가격을 반영한 주유소는 전체 주유소의 절반 수준인 54%였다. 경유는 전체의 25%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알뜰주유소가 이 수치를 끌어올렸는데, 전체 알뜰주유소 중 60~70%가 휘발유와 경유 가격에 유류세 인하분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으로 출퇴근한다고 밝힌 한 직장인은 “도심지역 기름값이 너무 비싸서 항상 고속도로에 있는 알뜰휴게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는다”며 “일선 주유소 사업자들이 평소에도 가격이 낮지 않으면서 유류세 인하분까지 즉각 반영하지 않는 게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반 주유소 업계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알뜰주유소에 비해 재고회전율이 낮아 유류세가 인하되기 전에 사 둔 기름을 판매해야 돼 즉각적인 인하를 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게다가 알뜰주유소는 유류세 인하를 즉각 반영하기 때문에 유류세가 인하될수록 일반 주유소를 찾는 손님의 발길은 더 뜸해질 수밖에 없다.
알뜰주유소가 기름을 저렴하게 팔 수 있는 이유는 정부의 지원 덕분이다. 알뜰주유소 지원사업은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제원유가격이 물가상승세를 촉발하면서 도입됐다. 정부는 석유가격 안정을 위해 공공기관인 한국석유공사를 석유유통사업에 진출시켜 시장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에 알뜰주유소 기름을 공급하게끔 했다. 정부가 주유소 간 경쟁을 촉진해 유가를 인하하려고 한 것이다. 알뜰주유소가 기름 판매 가격을 낮추면 주변 주유소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마진을 줄일 수밖에 없다.
2011년 1호점의 문을 연 알뜰주유소는 2020년 12월 기준 1241개소로 늘었다. 전체 주유소의 10% 수준이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중심으로 비중을 늘려나갔다. 일반 주유소들은 알뜰주유소 사업이 시작된 2011년부터 경영난이 가중됐다. 알뜰주유소 주변에 위치한 일반 주유소들부터 피해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스평가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주유소 운영업의 영업이익률은 최대 4.5%까지 기록했으나 2018년에는 1.8%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판매량도 극명하게 갈렸다. 일반 주유소 판매량은 2012~2018년 동안 연간 평균 1000드럼(1드럼=200ℓ)에서 1194드럼으로 19%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알뜰주유소는 1234드럼에서 2128드럼으로 72% 증가했다. 알뜰주유소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 일반주유소와의 판매량 차이는 2012년 월평균 234드럼에서 2018년 933드럼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그렇다보니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주유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0년 일반 주유소 수는 1만 3003개였으나 알뜰주유소 사업이 시작되면서 연평균 170개씩 감소해 2021년 말에는 1만 1128개로 줄었다.
일반적으로 주유소는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받아서 일정 부분 마진을 남기고 소비자들한테 판매한다. 주유소가 저렴하게 판매하려면 마진을 줄이거나 그만큼 정유사를 통해 공급받는 가격도 낮아야 하지만 일선 주유소들은 이 지점부터 알뜰주유소와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주유소협회 한 관계자는 “일반 주유소들이 정유사한테 공급받는 도매 가격보다 알뜰주유소의 소매 가격이 더 저렴할 정도”라면서 “우스갯소리로 정유사한테 기름받느니 옆에 있는 알뜰주유소 기름을 사와서 판매하는 게 낫겠다고 얘기하는 사장님들도 계신다”고 말했다.
리터당 30~80원가량 낮은 가격에 기름을 공급해야 하는 정유사 입장에서도 알뜰주유소 사업은 애물단지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유공사가 다수 정유사로부터 대량 입찰을 받아 저렴한 가격에 기름을 구매한 뒤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데 공급사 마진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정부에서 하는 사업이라 참여는 하고 있지만 수익률이 좋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든 한국석유공사가 수익도 못 내는 알뜰주유소 사업을 주관하느라 비용을 소모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석유공사는 알뜰주유소 사업에 적지 않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2017년 6억 5700만 원 수준이었던 인센티브는 2020년 169억 원까지 대폭 늘었다. 그러나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제로’에 가깝게 산정하고 마진을 거의 붙이지 않기 때문에 알뜰주유소 사업으로 얻을 수 있는 이윤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유소들끼리 담합해서 공급가를 올리고 과다한 이익을 취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알뜰주유소 사업은 실효성이 없다”며 “유류세를 인하했다고 하루 만에 가격에 반영되길 바라는 것부터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비합리적이다. 전세계적으로 어쩔 수 없이 기름값이 오른 상황에서 시장을 왜곡하면 업자들과 기업은 적자를 보게 되고 세금으로 보조하는 국민들은 손해를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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