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추적 다큐 완성도 호평, 아시아권 톱10 진입…‘추적단 불꽃’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존재감 키워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영화는 n번방 사건을 추적하고 보도한 기자 지망생들과 언론매체 기자,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 경찰과 변호인까지 총 24명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의 실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5월 18일 넷플릭스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반응이 뜨겁다.
온라인 콘텐츠의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사이버 지옥’은 공개 이틀 뒤 국내 넷플릭스 영화 순위 1위에 등극했다. 이어 베트남과 홍콩에서도 영화 순위 1위를 차지했고 일본, 싱가포르,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국가에서도 톱10에 진입했다. 한국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반응이다.
인기는 아시아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5월 말 넷플릭스 전 세계 콘텐츠를 통틀어 집계하는 영화 부문에서 18위로 진입해 2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사이버 세상에서 실제로 벌어진 잔혹한 성범죄를 향한 공통된 분노, 범죄 추적극을 표방한 작품의 완성도가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결과다.
#다큐의 인기,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을 향한 관심으로
‘사이버 지옥’이 일으킨 화제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작품의 인터뷰에 참가한 24명 가운데 ‘불’이란 닉네임으로 동참한 인물의 존재다. ‘n번방’의 실체를 처음으로 세상에 폭로하고, 관련 범죄 증거를 취합해 경찰에 제공함으로써 주동자인 갓갓과 조주빈의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은 2인조 ‘추적단 불꽃’의 ‘불’이 바로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이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 국회의원 보궐선거 과정에서 ‘586 용퇴론’을 꺼내 당내 비판의 중심에 섰고,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6월 2일 전격 사퇴한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은 한림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2019년 탐사보도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해 ‘추적단 불꽃’ 활동을 시작했다. 불법 촬영 범죄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텔레그램에서 성폭력 영상물을 공유하는 단체 채팅방이 운영된다는 사실을 발견, 이를 공론화시킨 주역이다. 실명을 밝히지 않고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이들은 ‘단’과 ‘불’이라는 닉네임을 썼다.
당시 ‘불’로 활동한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은 2022년 1월 실명을 밝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해 정치에 발을 디뎠다. 2030세대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로 디지털 성범죄 방지 정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영화 ‘사이버 지옥’에서도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은 ‘불’이란 닉네임을 쓰면서 목소리 인터뷰로만 등장한다. 동료인 ‘단’과 함께 얼굴은 가렸지만, 존재감은 가장 두드러진다. 이 사건을 취재한 언론매체 기자와 경찰 사이버 수사대, 프로파일러 등 여러 출연자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인터뷰를 제공한다. ‘추적단 불꽃’이 2020년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고서도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을 받고, 같은 해 국제 엠네스티 언론상에서 특별상까지 받은 이유가 이번 영화에 녹아있다.
‘사이버 지옥’을 연출한 최진성 감독은 넷플릭스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가장 먼저 추적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기자를 꿈꾸던 평범한 대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라고 밝혔다. 이어 “‘추적단 불꽃’이라는 이름으로 ‘n번방’에 들어갔고 이를 취재해 세상에 알렸다. 사건 자체도 궁금했지만 사건 추적의 발단이 평범한 시민이라는 게 의미 있었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범죄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스타일 제시
‘사이버 지옥’은 익숙하게 봐 왔던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이 제작과 투자를 맡은 점이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했다.
영화는 모바일 채팅으로 화면을 구성해 신종 범죄인 사이버 성범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구현한다. 텔레그램 채팅창에서 성 착취 동영상이 어떻게 유포되고 공유되는지, 실시간 채팅방에 동참한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실제로 이뤄진 방식으로 재연해 몰입도를 높인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한계를 비틀어 스타일리시한 세트 촬영과 CC(폐쇄회로)TV 화면 재연, 애니메이션을 도입해 사건의 시작과 끝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방식도 차이점이다.
이에 더해 사건을 추적한 24명의 인터뷰를 곳곳에 배치해 마치 흩어진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효과를 준다. 이를 통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n번방 사건에 대해 뉴스를 통해 인지하고 있지만, 정작 그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관객이 범죄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범죄 피해자에게 혹시 가해질지 모를 2차 피해 등을 우려해 피해 사실 묘사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점도 돋보인다.
‘사이버 지옥’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한 K콘텐츠의 경쟁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계기로 평가받는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 등 넷플릭스가 공개한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 인기 콘텐츠 1위에 등극하고, 애플TV의 ‘파친코’가 세계 시청자에게 공감을 얻는 성과에 이어 이번에는 다큐멘터리가 완성도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드는 시도가 꾸준한 가운데 넷플릭스의 ‘사이버 지옥’이 하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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