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받고 스태프 수백 명과 배우들을 데리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영화만 완성되면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받고 흥행까지 성공해 우리를 믿고 투자해준 투자자들에게도 보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쓴소리를 무시했다. ‘주인공의 동기가 부족하다’거나 ‘시나리오 개연성이 떨어지고 설정이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는 이야기는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의 무식한 지적이라고 애써 외면했다. 내 직감과 소신을 믿고 밀고 나갔다. 쓴소리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작자에겐 오직 직진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완성하고 관계자들에게 시사를 했다.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영화를 보면 열광할 줄 알았는데 기자들이나 영화관계자들 반응은 ‘뭔가 미진하다’거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반응들뿐이었다. 내겐 문제를 인식하고 수정하고 바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지적을 무시하고 듣지 않았다. 평론가나 기자가 그저 비평하기 좋아하고 뭔가 지적을 해야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다는 속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개봉 2주 전 예매를 시작했다. 예매율이 오르지 않는다. 각종 이벤트를 통해서 일반 시사를 시작했는데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관람한 일반인들도 자신의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영화 동호회 등에 호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호평은커녕 영화에 대한 문제점만 마구 지적한다.
나는 그런 혹평들이 경쟁 작품 영화사 흑색 마케팅일 뿐이지 정말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우리 팀 마케터들이 “절대로 상대방 회사 흑색선전이 아니”라면서 “너무 현실을 낙관하는 것 아니냐”는 진언을 했다. 나는 “내가 영화를 30년 동안 해왔고 내 예상은 틀린 적 없다”면서 “이번 영화는 분명히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어”라고 진언을 일축해 버렸다.
드디어 영화가 개봉을 했다. 개봉을 하자마자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매진을 기록할 줄 알았던 영화는 개봉일부터 극장 여기저기 빈 좌석이 보인다. 그럼 나는 또 정신승리를 한다. 이제 점점 입소문이 나서 주말부터는 관객이 미어터질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가 개봉하고 인터넷 영화 사이트에 영화 평점이 너무 낮다. 그러면 나는 “영화에 대해서 1도 모르는 사람들이 개인의 주관만 가지고 영화를 평가한 것”이라고 애써 자위한다.
그렇게 영화가 개봉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극장 여기저기서 우리 영화를 내리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우리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과거로 흘러가버렸다. 대참패했다. 흥행에 완전히 실패를 했다. 우리를 믿고 영화에 참여해 준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아픔만 남겨줬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믿고 나를 믿어준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끼쳤다.
그러나 나는 내 기획과 안목, 판단착오를 인정하기 싫을 뿐 아니라 인정할 수 없다. 내 문제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개봉 전부터 영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수정방향을 제시해 준 많은 전문가가 있었다.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런 지적을 경청하고 존중하고 수정하지 않았다. 그런 기회를 다 저버린 나 자신의 문제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 실패는 마케팅이 잘못된 것이며 개봉 일정을 잘못 잡은 배급사 문제라고 생각한다. 연출이 매끄럽지 못했던 감독, 최선을 다하지 못한 스태프들과 연기자들의 문제로 치부한다.
어떤 경우에도 나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공공연히 주장한다.
“나는 완벽했다. 다만 나의 완벽을 받쳐주지 못한 나의 동료들이 문제다.”
그 이후 난 영화계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한다. 아무도 나와 같이 일하려고 하지 않고 어떤 투자자도 나에게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과거의 영화인으로 흘러갈 뿐이다. 단 한 번도 나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기에 잠시 영화계에 몸담았던 흘러간 영화인이 돼 사라진다.
진보 진영은 3연속 선거에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흘러간 정치인이 될 것인지, 아니면 뼈를 깎는 반성을 하고 잘못을 정확히 개선해나가 다시 사랑받는 정치인이 될 것인지는 그들에게 달렸다. 국민은, 관객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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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