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모순에 항거하는 월가 시위에 불을 당겼다. 자본주의의 기본질서를 구축하고 경제성장을 이끄는 금융이 탐욕과 부패의 아수라장이 되어 부유층의 재산독점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위가 격렬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고속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시장경제모순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크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가 본격화하면서 각국은 첨단투자기업과 전략을 개발하여 다른 나라 경제를 공략하는 금융전쟁시대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이 낙후한 나라들은 금융시장을 외국자본의 투기장으로 내주며 이익을 빼앗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경제는 금융 산업의 낙후로 인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 대형위기를 잇따라 겪었다. 위기를 겪을 때마다 외국자본의 현금인출기 역할을 하며 대규모의 국부유출을 허용했다.
더욱 문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정책이 양극화를 고착화시킨 것이다. 위기가 오면 정부는 보통 2단계의 구조조정 단계를 밟았다. 우선 경제의 회생을 위해 부실한 기업들을 퇴출시키거나 인력을 감축하게 했다. 그리하여 기업과 근로자들을 생과 사로 나누었다. 다음 정부는 경제의 정상화를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살아남은 기업과 근로자들에게는 밥상을, 쓰러진 기업과 근로자들에게는 빈 그릇을 주는 형태였다.
구조조정 정책이 결국 지난 10년 동안 대기업과 기득권층 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어 젊은이들의 자기실현 기회를 빼앗았다.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다. 결혼조차 어렵고 결혼을 해도 출산은 물론 보육과 교육이 힘들어 가정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현 정부가 대기업과 부유층 중심으로 편 낙수정책은 부의 편중과 실업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피해를 유발하며 오히려 이익을 빼앗는 흡수정책으로 변질되었다. 이 가운데 경제를 수시로 위기로 빠뜨리는 금융회사들은 흥청망청이다. 책임을 지기는커녕 거액의 연봉을 챙기는 도덕적 해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집권여당 후보 대신 시민운동가를 시장으로 당선시킨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이러한 모든 분노들을 담아낸 것이다.
향후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시위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세계 각국은 토빈세 등을 도입하여 승자독식의 금융탐욕을 제거하고 상생의 시장경제질서 구축에 특단의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금융개혁을 서두르고 국내자본 대항마를 만들어 부당한 투기행위와 국부유출을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소기업과 서민을 살리는 새로운 시장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분노 대신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고려대 교수·전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