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은 칼을 혼신으로 벼리다
문화재청이 발간한 ‘무형문화재 이야기 여행’(2016)에 따르면, 신라시대에는 군졸들이 차던 나무로 만든 패, 요패의 장식물 중 하나로 작은 칼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금령총에서 남자용 순금 장도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 때 이미 작은 칼이 장식용으로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고구려에서는 남자들이 왼쪽에는 숫돌을, 오른쪽에는 오자도(일종의 주머니칼)를 차고 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에도 성인 남녀들이 장도를 소지하는 것은 오랜 풍습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장도를 만드는 장인의 명칭이 처음 확인되는 시기는 조선 전기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도자장(刀子匠) 6명과 환도장(環刀匠) 12명을 상의원에 배속해 일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난다. 도자장이란 작은 손칼을 만드는 장인을, 환도장은 군용 칼을 만드는 장인을 의미한다.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에는 중국 사신이 장도 다섯 자루를 요구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우리 장도는 그만큼 뛰어난 공예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 후기부터는 장도가 주로 몸단장을 하는 노리개로 쓰이면서 그 종류나 제작 과정이 더욱 정교하게 발달했다. 도자장이 금 은 등의 세공을 하는 은장, 옥 세공을 전문으로 하는 옥장 등과 협업해 다양한 장도를 만들어냈다.
장도는 모양과 재료, 쓰임새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장도 중에서 몸에 차도록 만든 것을 패도(佩刀)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도록 한 것을 낭도(囊刀)라고 한다. 장도를 칼자루 및 칼집 장식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장식이 복잡한 것을 ‘갖은 장식’, 단순한 것을 ‘맞배기’라 한다. 맞배기에는 칼집이 원통형인 평맞배기와 을(乙)자형인 을자맞배기가 있다. 장도는 나무, 금, 은, 옥 등 재료에 따라 목장도, 금장도, 은장도, 백옥장도 등으로도 구분한다. 또한 화각, 칠보, 낙죽, 조각, 상감 등 장식 기법에 따라 화각장도, 칠보장도, 낙죽장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특히 낙죽장도는 7마디 이상의 대나무에 선비들이 좋아하는 시문을 새긴 칼로서 일반 은장도와 달리 ‘선비의 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현종 때인 1670년 제정된 ‘금제절목’에 의하면 당시 조정은 유생과 잡직(의학 역학 율학 산학 등을 맡아보던 벼슬), 그리고 서인(일반인) 남녀의 경우 은장도를 차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이는 사치를 막고 신분에 따라 제한을 두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장도를 애용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장도는 거울, 빗과 함께 조선시대 부녀자들에게 사랑 받는 3대 소지품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당시 결혼을 축하하거나 성인이 된 것을 기념하여 장도를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러한 장도의 칼날 한 면에 임금에 대한 충심, 온전한 사랑을 뜻하는 ‘일편단심’이라는 글자를 새기거나 칼자루와 칼집에 십장생 무늬와 길상문을 새기기도 했다. 여기에는 선물 받는 이의 행복을 기원하고 장도가 온갖 불행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장도는 작은 칼이지만 원장석(칼집에 꽂는 장도의 기본 장식), 칼자루, 칼집, 왕메기(원장석의 꾸밈새를 돋보이게 하는 부속) 등 각 부분별 세부 명칭이 20여 개에 이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정교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전통 장도의 제작 과정은 크게 원장석 만들기, 부속품 만들기, 칼자루와 칼집 만들기, 칼날 만들기, 조립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은장도를 제작할 경우 순은을 채취해 불에 달궈 망치로 때려 늘이는 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각 과정 하나하나에 들이는 품과 시간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혼신의 힘과 열정을 쏟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장도를 마주할 수 없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영주·남원 등지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전라남도 광양 지방의 장도가 역사가 깊고 한국적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는 공예품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조선의 개화 이후 서양에서 건너온 손칼의 보급 등으로 사용자가 줄면서, 전통 장도를 다루는 장인의 수도 점차 감소하게 됐다. 1978년 장도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전라남도 광양의 박용기 선생이 최초 기능보유자(장도)로 지정되었고, 1993년에는 전라남도 곡성의 한병문 선생 또한 기능보유자(낙죽장도)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는 그들의 아들들인 박종군, 한상봉 명장이 기능보유자가 되어 대를 이어 장도 제작기법을 전수하며 전통 장도의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자료 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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