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과 거품, 이후 폭락과 조정의 반복
거기에 2021년 3월 비플(Beeple)의 NFT 작품 ‘매일: 첫 5000일’이 경매사 크리스티의 온라인 경매에서 당시 환율로 약 780억 원(6934만 달러, 4만 2329이더리움)에 낙찰되면서 NFT(대체 불가능 토큰, Non-Fungible Token)가 미술시장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NFT는 2010년 중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게임과 스포츠 분야를 중심으로 디지털 자산으로 거래됐지만 미술 분야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은 분야였다.
이후 국내외 작가와 미술시장 주체들은 NFT를 이야기하고 직접 뛰어들기도 했다. 기존에 미술에 관심이 없던 이들, 특히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 메타버스 분야 전문가들이 NFT에 관심을 가지고 실물 미술시장에도 진입했으며, 여행 제한으로 발이 묶인 MZ세대들이 전시와 아트페어 등을 찾으며 미술시장 호황에 일조했다.
2018년 재호황을 누리다 2019년을 거쳐 2020년 팬데믹으로 얼어붙은 미술시장은 락다운과 집합금지 등으로 온라인으로 전환했고, 대부분 가격을 공개하는 온라인 플랫폼과 뷰잉룸이 투명성과 접근성을 높여 온라인 세일즈가 급증했다. 여기에 NFT의 등장으로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2021년은 2018년 수준의 거래를 회복했다.
하지만 호황기에는 필연적으로 거품이 생기기 마련이다. 돈냄새를 맡은 이른바 ‘사짜’들도, 투자자를 넘어선 투기꾼도 넘쳐나 거품을 만든다. 결국 호황은 전 세계적으로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최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서 열려
한편 아트바젤(Art Basel)과 함께 최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Frieze)가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2022년 9월부터 5년간 동시 개최되고, 이를 전후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국제적인 갤러리 여럿이 한국에 지점을 개관한다는 소식이 지난해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드디어 한국, 특히 서울이 국제적인 미술시장에 진입한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한국에는 국제적인 비엔날레와 미술관, 갤러리와 다양한 전시공간이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많지만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2020년을 전후해 팬데믹과 정치문제로 투쟁 중인 홍콩을 대체할 아시아 미술시장 허브로 서울에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수입 의존도가 높다. 이는 미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미술대학과 미술기관, 주요 비엔날레 등의 인프라를 갖추고 갤러리와 아트페어, 경매사 등 미술시장 주체와 컬렉터를 형성해온 한국 미술계는 주요 국내 비엔날레의 영향력과 한국 작가들의 활약을 통해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아왔다. 이에 비해 국내 미술시장은 여전히 한국 작가의 외국 진출보다 국내외 갤러리를 통해 소개되는 외국 작가의 작품에 큰 수요가 몰린다.
서울과 비슷한 도시가 있다. 1977년부터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개최돼온 전통적인 아트페어 피악(FIAC)은 아트바젤, 프리즈와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불려왔다. 하지만 2021년 말 그랑팔레 운영사 RMN-Grand Palais가 피악 개최 기간인 10월 향후 7년간 아트페어를 운영할 업체를 선정하겠다는 공고를 내면서 사전에 공지받지 않은 피악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아트바젤 모기업인 MCH그룹이 최종 선정돼 2022년부터 파리 플러스 바이 아트바젤(Paris+ par Art Basel)을 개최한다.
기존 피악 디렉터 등을 관계자로 섭외한 아트바젤은 미술뿐 아니라 패션 등 분야와 협업을 통해 단순히 미술이 아닌 산업분야로 확장하는 행사를 개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일부 파리 미술계는 충격에 빠졌지만, 피악이 국제적인 컬렉터를 본격적으로 흡수하지 못하고 판매실적이 비슷한 시기 런던에서 개최되는 프리즈와 비교되는 등 불만을 표현했던 갤러리들은 피악을 대신할 아트바젤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반기고 있다. 서울처럼 파리에 지점을 여는 갤러리가 늘고 있다.
기본과 지속 가능성
호황기에 단기 투자와 투기를 권하고 이에 현혹되거나 가담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실제로 수익을 얻었는지는 그들만 알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를 발굴하고, 함께 성장해 나아가는, 갤러리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결국 살아남게 될 것이다. 시장 호황에 나만 뒤떨어진 것 같은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 중에는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온 작가도 많다. 경제적 이익을 보는 작가와 갤러리는 극히 일부다. 기본기나 경력 없이 갑자기 급부상하는 이들은 대부분 거품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잊힌다.
프리즈 서울과 아트바젤 파리플러스가 각각 오는 9월과 10월에 처음 개최되는 만큼 국제적 행사가 그 지역의 미술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지켜봐야 한다. 국제적인 대형 갤러리 여럿이 한국에 지점을 내고 프리즈 아트페어가 서울에서 5년간 개최되면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국내에 대거 소개되면서 외국 작가의 판매가 더 늘어날 것이고, 관객의 안목과 취향도 올라갈 것이다. 한국에 지점을 낸 외국 갤러리도 점차 한국 작가를 발굴하고 협업하면서 외국에 소개할 기회를 늘릴 것이다. 미술시장을 구성하는 주체가 다각화되고 협업도 병합도 활발해질 것이다. 거래가 활발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술작품에 수익 목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소장하고 감상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주체의 수준이 상향되고 미술에 진심인 이들이 남고, 점진적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이경민은 갤러리현대 전시기획팀에 근무했고 ‘월간미술’의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비영리연구단체 '미팅룸'의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로, 국내외 미술시장 주체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매체와 기관을 통해 글을 기고하고 강의한다. K-ARTMARKET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왔고(2020-2022), 국제 온라인 컨퍼런스 ‘2021 KAMA 컨퍼런스-미술시장과 온라인: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를 공동기획했다. 공저로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2019)과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2021)가 있다.
이경민 미팅룸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