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내내 주식 하고 낮잠 자고, 디지털엔 깜깜…50대 진입 버블세대 70세까지 고용 ‘사회문제화’ 가능성
히로시마현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A 씨(27)는 회사 내 50대 남성 직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 ‘주 3일, 9시부터 17시까지 외근’을 한다고는 하지만, 영업직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거나 커피숍에서 온종일 앉아있는 걸 목격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사무실 내에서도 모니터만 바라볼 뿐 손이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혹시 ‘눈을 뜬 채로 자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가 민첩하게 움직일 때는 흡연 타임뿐. 당연히 실적도 좋지 않다.
사무실에서 인터넷 서핑만 하는 50대 상사도 있다. 옛날에는 활약이 대단했다고 하나, 지금은 PC로 개인적인 주식 거래를 하느라 바쁘다. 며칠 전 회의실에서 긴 시간 동안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있기도 했다. A 씨는 “분노를 넘어 어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납득이 안 가는 것은 두 사람의 연봉이 1000만 엔에 가깝다는 점이다. 더욱이 “젊었을 때 ‘회사’에 기여한 만큼 월급을 받고 있다”며 “이제 슬슬 즐겨도 되지 않냐”는 무신경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20대 젊은 사원들의 공통적인 인식은 ‘정년까지 근무할 회사를 하나로 한정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A 씨 또한 “조만간 이직할 계획이라 상사의 말이 전혀 공감되질 않는다”고 밝혔다.
도쿄에 사는 회사원 B 씨(32)는 자신의 상사에 대해 “마치 신문과 잡지를 읽으러 회사에 오는 사람 같다”고 운을 뗐다. 출근하자마자 3~4시간에 걸쳐 숙독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엔 낮잠을 잔다. 부하 관리에는 무관심하며, 의논이라도 할라치면 “그 건은 다음에 얘기하자”고 미룬다.
상사의 모토는 현상유지. 부서 내 분쟁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섣불리 주의를 주다 ‘갑질’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참으라”는 말뿐이다. B 씨는 “상황에서 도망치기 바쁜 상사의 태도에 지쳐버렸다”며 “무사안일주의자로 정년까지 버티려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컨설팅회사가 20~30대 일본인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회사 내 ‘일하지 않는 아저씨’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9.2%로 절반에 가까웠다. 아울러 “일하지 않는 아저씨가 회사에서 무엇을 하는가”를 묻자 “멍하니 앉아있다” “휴식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인터넷 서핑” 등의 답변이 나왔다.
상당수의 일본 기업들은 ‘연공서열 임금제도’와 경험에 따른 능력향상을 전제로 한 ‘직능자격제도’를 여전히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임금이나 직위 같은 처우가 근속연수에 비례해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한번 오른 임금은 크게 낮아지는 일도 드물기 때문에 결국 중장년층은 젊은층에 비해 높은 급여를 받게 된다.
2019년 일본 국세청이 발표한 ‘민간급여실태통계조사’를 보면 “25~29세 남성 평균 급여는 403만 엔, 55~59세 남성 평균 급여는 689만 엔”으로 확인됐다. 즉 1.7배 차이가 난다. 단순 계산하면 중장년층은 20대 직원보다 1.7배의 성과를 내야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 맨파워그룹의 난바 다케시 수석 컨설턴트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일하지 않는 아저씨’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수 있다”고 전했다.
흔히 ‘불성실하게 일하고 월급을 받아가는 중년 관리직’을 일하지 않는 아저씨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난바 씨에 의하면 “꾸준히 성실하게 일하고 있지만 회사의 방향성과 어긋난다든지, 혹은 일하는 방식 개혁이나 디지털 전환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들도 해당된다”고 한다. 즉 “일을 못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을 안 하는 것처럼 인식된다”는 설명이다.
난바 씨는 “고령화 문제는 일본기업 내에서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스스로 능력개발을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학습 습관이 형성되지 않은 중장년층이 많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일하지 않는 아저씨’는 비단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일본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생산연령인구(15세~64세)가 급감 중이다.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는 1995년 8716만 명에서 2020년 7471만 명으로 약 1300만 명 감소했다. 이와 관련, 현지 매체 ‘동양경제온라인’은 “생산연령인구의 핵심을 차지하는 40~50대가 보다 의욕적으로 길게 활약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계 대기업은 ‘버블세대’라 불리는 대규모 채용 세대가 50대를 맞이해 사내 ‘볼륨존’을 이루고 있다. 더욱이 고령자고용안정법이 개정돼 70세까지 고용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만약 중장년층이 ‘일하지 않는 아저씨’가 될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업무 자체가 인공지능(AI)화·자동화·복잡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최신 기술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맡길 수 있는 직무가 한정적이다. 조직 자체의 운영이 어려워질 위험성도 높아진다.
바야흐로 ‘뷰카(VUCA) 시대’다. 뷰카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첫 글자를 딴 신조어. 테크놀로지는 빠르게 진화되고 있는 반면, 스킬이나 경험은 점점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맨파워그룹의 난바 다케시 수석 컨설턴트는 “젊은 사원에게 일을 맡기고 자리만 지키는 중장년층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기업이 적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상당수의 기업은 중장년층의 일하는 방식과 태도를 바꾸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시책이나 트레이닝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것. 결국 타이밍이 임박하면 퇴직 권장이나 해고 같은 ‘마지막 수단’을 행사하게 된다.
난바 컨설턴트는 “일하지 않는 아저씨 문제는 개인과 회사, 사회가 안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로 노력하면서 최적의 해답을 모색해야 지속 가능한 일본 사회 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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