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0조 적자’ 전망에 자구책 마련 미흡 지적…“흑자 땐 인하 않더니 국민에게 책임 전가”
지난 1분기 한전은 7조 7869억 원의 영업손실을 보였다.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수준의 적자다. 역대 최대치였던 지난 한 해 전체 손실인 5조 8601억 원보다 2조 원이나 많다. 업계에서는 이대로 가다가 한전이 올해 약 30조 원대의 적자도 우려된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전이 적자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은 전기요금 인상이다. 전기요금의 일부인 연료비 조정 단가를 인상해 적자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연료비 조정 단가는 인상 폭이 직전 분기 대비 kWh(킬로와트시)당 최대 3원인데 한전은 최대치인 3원 인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전이 16일 제출하는 연료비 조정 단가 인상 내용이 포함된 3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을 정부가 받아들이면 다음달부터 전기요금은 오를 예정이다.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다. 지난 5월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기‧가스‧수도 요금도 2010년 1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최고치인 9.6% 상승률을 보였다. 식료품, 외식, 생필품 등의 가격이 오르고, 내달부터는 도시가스 요금도 올라 국민들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다가 전기 사용량이 많은 여름을 앞두고 전기요금 인상을 논의하고 있어 국민들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것만이 능사인지, 이것으로 적자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요금을 올린다고 해서 30조 원이나 되는 적자를 메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고물가 시대에 국민들 경제 상황은 더 힘들어질 것이고, 특히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상승으로 부담이 있는 상황인데 전기요금까지 오르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은 다른 물가에도 영향을 준다. 전기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은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의 원가가 되기 때문에 인상시 소비자물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
한전은 경영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5월 자구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매각, 해외사업 구조조정 등을 통해 약 6조 원의 재무 개선을 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 자구책들마저 지금과 같은 상황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한전이 갖고 있는 부동산 등 자산이 금방 팔리는 것도 아니고, 아예 안 팔릴 수도 있어 6조 원의 재무 개선이 실현되기는 어렵다”며 “실현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올해 안에 자산이 매각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3조 원 정도를 면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라며 “한전이 제시한 자구책이 적자 해소에 일부 도움은 되겠지만 유의미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위기 상황에 닥쳐서야 자구책을 발표한 한전이 상황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전은 2008년 첫 적자가 난 후 2년에 한 번꼴로 적자를 맞았다. 주기적으로 적자 상황이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대비책 없이 전기요금 인상만 요구하는 것은 안이한 태도라는 것이다. 정작 흑자가 났을 때는 전기요금을 인하하지 않았으면서 적자 상황이 닥치니 그 부담을 국민들에게 지게 하는 셈이다. 실제로 한전이 2016년 12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흑자를 냈을 때 조환익 당시 한전 사장은 에너지 분야 산업에 대한 투자를 이유로 전기요금 인하에 반대했다.
한전 내에서 구조적‧제도적인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2020년 한전의 억대 연봉자는 2972명으로 전년(2395명) 대비 577명이 늘었다. 전체 직원 8명 중 1명이 억대 연봉을 받은 수준이다. 또 한전 산하 발전 공기업 기관장들은 2020년도 경영평가에 대해 1억 원 안팎의 성과급을 수령했으며, 같은 기간 한전과 발전 자회사 직원이 받은 성과급은 평균 2000만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한전이 적자라고 하소연하며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부 직원들은 과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한전은 매년 적자 개선을 위해 대비해왔으며, 전반적인 경영 변화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전 관계자는 “매년 예산을 절감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추진해왔으며 상시적으로 투자비 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6월 현재, 출자지분(2건), 부동산(3건) 등 총 1300억 원의 자산 매각을 완료했고, 고강도 지출 줄이기 등으로 약 1조 300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급등하는 연료비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전했다.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검토해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와 관련해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은 적자고, 물가는 높은 상황이라 관계부처와 잘 협의해야 할 것 같다”며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서 아직 결정된 것은 없고 21일쯤 3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가 발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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