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일가 예우 담긴 내용, 업계“날인 없어 법적 효력 없을 것”…홍원식 회장 대국민사과 진정성 의심
하지만 해당 문서는 계약 당사자의 도장이나 서명 등이 날인돼 있지 않고, 문서를 사진 찍은 파일 형태로 제출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M&A업계 전문가들과 법조계 인사들은 “도장이나 서명 등 날인이 없는 이면합의서를 주고받았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정찬우)는 남양유업 매각이 불거졌을 당시 홍 회장 측에 한앤코를 연결해준 핵심 증인인 함춘승 피에이치컴퍼니 대표를 대상으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함 대표는 남양유업 매각과 관련해 한앤코를 추천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대리인으로 추천한 사람이다.
이 자리에서 홍 회장의 소송대리인 LKB&파트너스는 함춘승 대표를 심문하던 중 ‘주식매매계약서 별도합의서’라는 문서를 공개했다. 이 합의서에는 오너 일가에 대한 예우가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을 재매각할 때까지 고문직 보장 △본사 사무실 사용 및 차량, 기사 등 복지 제공 △남양유업 재매각 시 우선협상권을 홍 회장이 갖는다는 내용 등이다. 또 홍 회장의 아내인 이운경 씨와 두 아들에 대해 △현재 직급 및 직책, 복지 및 처우 유지 △이운경은 현재 전무 직급으로 외식사업부 총괄이나 전무 직급은 변동 가능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별도합의서나 홍원식 회장의 우선매수권 등은 그동안 실체가 드러난 적이 없다. 앞서 홍 회장은 지난해 7월 30일 한앤코와 거래 종결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뒤 9월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이미 당사자 간 합의가 끝난 이슈임에도 매수인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은 것들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돌연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라고 ‘노쇼’ 이유를 밝혔다. 이 때문에 당시 홍 회장이 이면합의의 존재 가능성을 드러냈다는 얘기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문건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7일 증인신문에서 홍원식 회장의 소송대리인이 해당 문서를 공개하자 함춘승 대표는 “해당 문서를 본 적이 없다. 처음 본다”고 밝혔다. 한앤코 측 소송대리인인 김유범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변호사는 “원고 측에서는 그 누구도 본 적도 없고, 피고 측은 주장조차 한 적 없는 내용(재매각 우선협상권)의 괴문건을 소송 10개월 만에야 홍 회장 측이 법원에 제출했다”며 “해당 문건이 허위자료라고 인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피고 측은 해당 문건이 홍 회장 지시로 사내 자체 제작한 문건이라고 이미 인정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날 공개된 문서에 양측의 날인이 없는 것을 두고 법적 효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M&A업계 한 전문가는 “날인도 없다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아마 초안 정도를 사진으로 찍은 게 아닐까 추측된다”며 “선수들끼리 체결한 계약인데 말도 안 되는 거고 법원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버넌스포럼의 심혜섭 변호사도 “M&A와 같은 중요한 계약에 날인이나 서명이 없는 계약의 효력을 인정해 줄 것 같지 않다. 아마 거의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만약 의미가 있는 것으로 홍 회장 측이 생각했다면 이미 진행됐을 가처분 소송에서도 해당 증거를 제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가 오간 정황이 있다는 정도까지는 의심을 해 볼 수도 있는데, 가족 처우에 관한 여러 부속 확인서·합의서에는 날인이 된 점으로 보아, 홍 회장이 주장하는 별도 합의가 있었는데 날인이 안 되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원식 회장 측은 왜 효력 없는 별도합의서를 법정에 제출했을까. 7일 LKB&파트너스는 한앤코와 맺은 계약이 김앤장의 쌍방대리로 이뤄진 만큼 계약 무효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쌍방대리는 계약 당사자 대리를 동일한 대리인이 맡아 계약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민법124조에서는 대리인 본인의 허락이 없으면 본인을 위해 자기와 법률행위를 하거나 동일한 법률행위에 당사자 쌍방을 대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도인과 매수인의 대리인이 동일할 경우 어느 한 쪽의 이익 또는 권리를 보호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원식 회장 측은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김앤장의 변호사들이 쌍방대리를 맡았다는 점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같은 법률사무소에서 홍 회장에게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 홍 회장 측 주장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날 함춘승 대표는 "당연히 (홍 회장에게 쌍방대리에 대해 얘기) 했다. 한앤코에서도 하고 있다고 말했고, 그전에도 쌍방대리 했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며 "이번에도 이해상충될 만한 것이 없을 것 같아서 괜찮을 것이라 추천했는데 홍 회장이 응했다"고 말했다.
앞의 심혜섭 변호사는 “이면합의서가 존재했고, 날인이 안 된 것이 쌍방대리가 잘못됐음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홍 회장 측이) 생각하는 것 같다. 김앤장이 홍 회장을 위해 날인을 받아 줬어야 하는데, 쌍방대리를 하면서 주식매매계약서는 날인하고 홍 회장이 중요하게 생각한 해당 별도합의서엔 날인하지 않았다는 취지”라고 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원식 회장 측이 제시한 이면합의서가 사실이라면, 홍원식 회장 스스로 자신의 이중성을 입증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5월 홍 회장은 눈물의 대국민 사과를 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또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오너 일가를 위한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면합의서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협상권 내용도 사실이라면 홍 회장은 대국민사기극을 벌인 셈이나 마찬가지다.
한앤코 측은 홍원식 회장이 제출한 별도합의서가 허위인 것으로 인정받으면 위증죄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에 대해 남양유업 관계자는 “지난 기일에서 홍 회장님 측 법률대리인이 공개한 문서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차주 및 내달 예정돼 있는 주요 증인들의 신문 자리에서 관련 내용에 대해 나오지 않을까 지켜보고 있다”며 “회사 차원의 별도 입장은 없다”고 전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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