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한계론’ ‘친문 불가론’ 속 97그룹 6인 주목…친문과 연대설 나오자 이재명 침묵 깨고 전면 등판
“아킬레스건 vs 아킬레스건의 싸움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친명과 친문 간 갈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여기엔 친명이나 친문이나 ‘치명적인 약점’이 많다는 뜻이 담겼다. 친명계 약점은 ‘원 보이스’의 부재다. 당 한 관계자는 “지난 3·9 대선을 거치면서 친명계가 신주류로 부상했지만 친노(친노무현)·친문계와는 달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친명계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측근 모임인 ‘7인회’를 뺀 핵심 축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와 박원순계, 검찰개혁파인 ‘처럼회’다. 민평련과 박원순계 다수는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에 속한다. 당내 매파(강경파)인 ‘처럼회’는 친문계와도 가깝다.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섞이지 못하는 이들이 ‘이재명을 고리’로 전략적 공존 관계를 형성했다는 얘기다. 당 인사들은 “친명계가 사안별로 원 보이스를 내지 못 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이재명 한계론도 친명계가 신주류로 부상하는 데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3·9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석패한 이 의원은 야권 구심점의 핵심이었다. 친문계 일부 의원들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6·1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이재명 브랜드는 되레 야권 분열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대선 때 ‘이재명 지지’에 나섰던 조응천 민주당 의원조차 ‘이 의원이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라는 질문에 “전 국민으로 넓혔을 때는 출마 안 했으면 좋겠다는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라고 했다. 실제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6월 7일 하루 동안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의원의 당 대표 출마에 반대하는 비율은 50.8%에 달했다. 찬성은 39.9%에 그쳤다. 이 조사는 6월 10일 발표(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됐다.
결속력이 강한 친문계의 아킬레스건은 ‘구심점 부재’다. 참여정부 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축으로, 친노계 좌장인 이해찬·한명숙 전 의원과 유시민 전 의원 등이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후 2012년 총·대선 전후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포스트 노무현’ 역할을 맡았다. 문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은 2017년 이후 친문계는 ‘포스트 부재’에 시달렸으나,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 문파가 그 공백을 메웠다.
그러나 정권을 뺏긴 현재 상황은 판이하다. 차기 당권 경쟁을 앞둔 친문계는 ‘결집이냐, 분화냐’의 갈림길에 섰다. 현재 친문계는 전해철 의원을 비롯해 도종환 박범계 최인호 황희 홍영표 의원 등의 ‘민주주의 4.0’과 고민정 박상혁 윤건영 정태호 한병도 의원 등의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박광온 윤영찬 홍익표 의원 등의 ‘NY(이낙연)계’ 친문으로 구성됐다. 당내 세력 분포를 보면, 친문계가 여전히 다수파인 셈이다.
다만 친문계 내부에선 “누가 좌장이고 누가 구심점이냐”라는 물음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미국으로 출국, 계파 구심점은 한층 약화됐다. 당장 친문계 인사들은 “전해철 의원과 홍영표 의원 중 누구를 밀어야 할지조차 정리가 안 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신주류 경쟁에서 ‘제3세력’ 공간이 넓어진 이유도 앞서 언급한 ‘이재명 한계론’ ‘친문 불가론’과 무관치 않다. 민주당 제3세력엔 조응천 박용진 의원 등의 ‘소장파’와 86그룹 중심의 ‘더좋은미래(더미래)’ 등이 포함돼 있다. 김태년 김경협 김성환 이해식 의원 등의 ‘이해찬계’와 김영주 안규백 이원욱 의원 등의 ‘정세균(SK)계’도 제3세력에 발을 걸쳤다. 다만 이해찬계와 SK계는 친문·친노계와도 가까운 만큼, 범주류로 분류하기도 한다. 온전한 의미의 제3세력은 아니라는 뜻이다.
제3세력 중 가장 앞선 계파는 세대교체 깃발을 앞세운 ‘97그룹’이다.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전재수 의원과 김해영 전 의원 등이 세대교체론의 핵심 주자들이다. 이 중 차기 당권에 나선 이는 강병원 의원이다. 그는 전당대회 출마 질문 때마다 “역사적 사명감이 맡겨진다면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강훈식 의원을 비롯한 97그룹 대표 주자들 모두 “고민 중”이라며 출마 여지를 남겼다. 당 안팎에선 “97그룹이 동시에 출격, 전당대회 판을 흔든 뒤 단일화 등을 통해 최후 1인을 남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97그룹 6명이 전당대회 링에 올라가 세대교체론을 앞세워 세몰이한 뒤, 후방으로 빠지는 전략이다.
관전 포인트는 ‘친문계’와 ‘97그룹’의 전략적 공존 여부다. 최근 친문계 내부에선 “이재명 의원이 불출마를 택할 경우 97그룹을 포함한 특정 주자를 밀 수 있다”는 전략까지 논의했다. 친문계 핵심인 전해철 의원이 6월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책임질 분이 책임지는 분위기가 된다면, 저 역시 반드시 출마를 고집해야 되느냐는 부분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친노·친문계가 과거 총·대선 때마다 86그룹과 전략적 공생 관계를 형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친문계와 97그룹의 연대 시나리오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민주당 인사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친문계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낸 ‘김부겸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 한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퇴임하면서 정치 은퇴를 사실상 시사했지만, 김부겸 역할론에 대한 요구는 여전하다”고 했다.
변수는 전략적 침묵을 이어가던 이재명 의원의 당권 도전 여부다. 이 의원을 비롯한 친명계는 6월 14일까지만 해도 전당대회 출마는 물론, 정치적 현안에 관해 말을 아꼈다. 7인회 한 축인 김남국 의원을 뺀 나머지 인사들은 몸을 낮춘 ‘로키 행보’를 이어갔다. 친명계 인사들은 “조기 참전의 실익이 있느냐”며 장기간 전략적 침묵을 예고했다. 이 의원의 안갯속 행보로 민주당 전당대회 대진표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하지만 ‘친문계와 97세대’의 전략적 공존, 친문계의 ‘김부겸 카드’ 등이 민주당 차기 당권 변수로 부상하자, 이 의원은 6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이 방사포를 쏜 날 영화를 관람한 윤 대통령 내외를 향해 “안보 최고책임자가 (북한의 방사포 발사를) 보고 받지 못했다면 국기 문란”이라고 직격했다. 앞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6월 12일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영화 ‘브로커’를 관람했다.
이재명 의원은 같은 날 대장동 개발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자신을 피의자로 특정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정치 탄압의 시작”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21세기 대명천지에 또 다시 사법 정치 살인을 획책하자는 거냐”며 “정치 보복, 사법 살인 기도를 중단하라”고 했다.
침묵하던 이 의원이 전면 등판한 것은 다시 부상한 이재명 책임론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친문계와 97그룹의 전략적 연대 전선을 흔들겠다는 포석도 담겼다. 당내 86그룹 주축인 더미래가 6월 15일 국회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이재명·송영길 출마가 전체 선거 구도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김기식 더미래 연구소장)”는 분석이 다수를 차지했다.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2년 뒤 총선을 언급, “이회창 길 전에 황교안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당권 출마’ 땐 민주당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2020년 총선 패배’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체제로 선거를 치렀다. 민주당 초선 모임인 ‘더민초’도 15일 비공개회의 후 이재명 출마에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고영인 의원은 “새로운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전면 쇄신을 주장했다. 당 인사들은 “이 의원이 전면에 등장한 만큼, 공은 연대설에 휩싸인 친문계와 97그룹에 넘어갔다”고 입을 모았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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