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월세가 전세 추월…전세 소멸 시 세입자 주거 불안 심화 지적도
6월 16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에서 월세가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3만 4870건을 기록하며 2011년 통계가 집계된 이후 처음으로 3만 건을 넘어섰다. 전국 단위에서도 월세를 낀 임대차 거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4월 전국적으로 확정일자를 받은 임대차 계약 중 월세 거래 비중이 50.1%를 넘어서며 월세 거래가 전세 거래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국 단위 통계 자료가 공개되기 시작한 2014년 이후로 월세 거래가 전세 거래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한 건 처음이다. 지난 5월에는 월세 거래 비중이 57.8%까지 올랐다.
월세 거래 비중이 늘어나는 이유는 전세 보증금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0월 92.3을 기록한 계절조정전세가격지수는 올해 5월 103.4를 기록하기까지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그렸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위원은 "당장의 전세가 상승은 미미해 보이고 하락하는 지역도 더러 나타나고 있지만 2년 전에 전셋집 입주했던 분들이 느끼기에는 체감이 훨씬 클 것이다. 서울 강남처럼 전셋값이 많이 오르고 집값이 높은 지역의 경우 전월세 전환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대출규제와 금리 상승도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대출을 까다롭게 만들어 월세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시중은행 전세보증금 대출금리는 현재 3.36~4.29% 수준이다. 최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데다 7월에도 같은 수준으로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국내 대출 금리는 더 큰 폭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이에 더해 고물가와 고금리 부담 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면서 수도권 아파트 매수 심리 또한 얼어붙은 탓에 매매 가격 하락폭이 커진 점도 월세 전환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이 오르면 전세 끼고 집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지만 집값이 안 오르면 그 반대의 현상이 벌어져 전세가 줄어든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심지어 기존 임대인들도 전세금을 올려서 받기 때문에 임차인들이 버티지 못하고 월세로 전환하는 현상이 생긴다"고 말했다.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보호 3법으로 인한 전세가격 상승 우려도 전월세 전환율 상승 전망에 힘을 싣는다. 계약갱신청구권은 2년의 전세 기간을 산 세입자가 2년을 더 거주함으로써 주거 안정을 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물건의 임대차 보증금은 연 5% 이내로 인상폭이 제한되는 전월세상한제 적용을 받는다. 올해 8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물건의 임대차 기간이 처음으로 만료되는데 이때는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다. 이 매물이 신규로 나올 경우 임대인들이 지난 4년간 오른 시세와 향후 인상분까지 따져 보증금을 책정할 가능성이 높아 전세보증금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수도권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월세 전환율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경희 수석위원은 “집주인은 보유세를 전가하려는 흐름이 있고 세입자의 경우 높은 전세가의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둘 모두의 니즈가 맞물렸다고 본다”며 “특히나 수요가 많은 수도권이나 구축에 비해 전세 가격이 높은 신축 매물을 필두로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계속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2년 1~5월 입주 5년 이하의 수도권 신축 아파트 월세 거래 건수는 전체 임대차 대비 53.7%를 차지했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전세 제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세가 소멸될 경우, 부동산 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임재만 교수는 “외국에서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사고 이자를 내야 하지만 국내 전세시장에서는 무이자로 세입자에게서 돈을 받아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고 집도 세입자가 관리해준다. 전세 보증금이 여러모로 정말 최적의 투기 자금”이라며 “전세 보증금을 받아 거듭 투기에 활용하기 때문에 전세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이 투기 자금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깡통전세’ 역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021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액수는 5790억 원으로 연간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을 떼이는 사고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원룸을 임차하고 있는 한 직장인은 “보증금이 비싸도 너무 비싼 데다 전세사기까지 횡행하고 있어 조금 비싸더라도 안전하게 월세로 다달이 주거비를 지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워낙 오래된 제도인 데다 수요가 뚜렷해 쉽게 사라지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2010년대 초반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흐름이 뚜렷해지자 ‘전세 소멸론’이 대두됐지만 지난 10년간 집값이 오르고 정부가 민간임대주택 등록제도를 실시하면서 전세가 다시 증가하기도 했다.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가 사라지고 고스란히 월세로 전환될 경우 매달 주거비 지출을 부담할 여력이 없는 가난한 세입자들은 점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며 “임대료 제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도심지에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거나 도시 외곽에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저렴한 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6월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 정부의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추진전략 토론회’에서 '250만 가구+α(플러스알파) 주택공급 계획'과 관련해 청년 주택사업 모델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요-공급 논리로 현재의 꼬인 부동산 시장을 풀겠다는 얘기다.
전세 보증금 인상에 상한선을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수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은 “서울의 도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집값과 보증금 인상으로 인한 월세 전환과 퇴거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도시 외곽의 주택 마련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라며 “마음대로 집값을 올리고 세입자에게 비합리적인 수준의 보증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관행이 주거 불안정을 심화하는 요인이므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물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부동산 계약에 보증금 인상 요구 상한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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