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입학용 ‘건강증’ 받으려 업체 맡겨, 병원과도 유착…처벌 수위 높이고 신분확인 절차 강화해야
건강검진 대리업체로 알려진 A 사는 홈페이지 회사 소개란에 민원 해결 처리를 적어 놨다. 이 민원의 대부분이 바로 건강검진을 대신 받아주는 것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A 사처럼 건강검진을 대리해주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업계에선 건강검진을 대신 받는 사람을 ‘총잡이’라는 은어로 칭한다.
A 사의 경우 중국 전역에 점포까지 둘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취업과 입학 경쟁률이 치열해지면서 건강검진 역시 중요성이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회사나 학교는 같은 조건이면 건강한 사람을 뽑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최근 생긴 건강검진 대리업체들은 “입사하거나 입학할 때 건강검진 항목에서 통과를 못하면 돈을 받지 않겠다”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하기도 한다.
한 현지 매체 기자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우한 지역에 위치한 건강검진 대리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이 업체는 “입학과 입사 등의 검사 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는 전문적인 ‘총잡이’로 이뤄진 많은 팀들을 갖고 있다. 또 전국 각 병원의 건강검진 절차를 꿰고 있다. 수수료만 내면 (입학 등에) 청신호가 켜질 것”이라며 홍보를 하고 있다.
기자는 상담사에게 “입사를 앞두고 있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 건강검진을 대신해줄 수 있나”라고 문의했다. 그러자 상담사는 “지금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의 건강검진 결과를 보내줄 수 있다”면서 “대리검사 비용은 1500위안(28만 원가량)”이라고 했다. 혹시라도 의심을 피하기 위해 거주지 인근 병원을 섭외한다는 게 이 업체의 장점이었다.
기자는 상담사에게 다시 물었다. “건강검진을 대신해서 받다가 병원 측이 문제를 삼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그러자 상담사는 “우리는 이 분야에서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았다. 지금도 많은 의뢰를 받고 있다. 우리에게 건강검진 결과서를 발급해주는 병원과는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섭외된 병원이 전국에 많다”고 답했다. 병원과도 유착이 돼 있다는 의미였다.
이 기자는 다른 업체에도 전화를 걸었다. 이 업체의 상담사는 “이름과 나이, 키와 몸무게 등 기본 신상정보만 알려주시면 바로 거기에 맞는 ‘총잡이’가 배정된다. 그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후 결과가 나오면 돈을 주시면 된다. 만약, 건강검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른 총잡이가 출동한다. 원하는 ‘건강’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한다”고 설명했다.
건강검진 대리업체들은 전화뿐 아니라 위챗과 같은 SNS(소셜미디어) 등을 통해서도 실시간 상담을 받고 있다. 업계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1500위안이면 비싼 게 절대 아니다. 그 정도면 기본 가격이다. 회사나 학교에 따라 요구하는 건강검진이 다르다. 그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고위 공무원이나 회사 임원들이 의뢰하는 대리 건강검진은 가격이 수천만 원대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건강검진을 대신 의뢰해서 결과를 발급받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고객, 업체, 병원 모두 적발될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실제로 당국은 올해 1월 안후이성 보저우 시의 한 의사가 고객이 건강검진을 대리해서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검사를 해주고 보험금을 수령했다는 사실을 적발하고 체포했다. 이 의사는 1심 재판에서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왜 중국에서 건강검진 대리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을까. 우선 극심한 취업난이 여러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몰려드는 구직자들을 거르기 위해 건강검진 결과서를 요구하는 사용자들이 적지 않다. 감염병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할 수 없지만 실제 채용에선 그렇지 않다. 건강에 따른 차별이 여러 법적인 제재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셈이다.
일례로 특정 일자리를 제외하곤 B형 간염이나 혈당 등의 항목을 검사해선 안 된다. 하지만 많은 업체들이 이를 건강검진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대리업체 관계자들과 브로커들은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다”면서 구직자들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적극 조장하고 있다. 이들은 채용에 있어서 건강검진의 비중을 과하게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책임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대리검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는 법적인 조치를 어렵게 한다. 당국 관계자는 “업체, 사용자, 의뢰자, 병원 중 법적인 부담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어렵다. 케이스마다 따져봐야 한다. 기소가 드물게 이뤄지는 이유다. 병원이나 사용자는 몰랐다고 하면 끝이다. 의뢰자는 어떻게 보면 피해자다. 업체가 문제인데, 이 역시 병원이나 사용자 등과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병원의 건강검진 절차가 허술하다는 점도 문제다. 검사를 받는 사람에 대해 철저하게 신분을 확인하면 대리검사는 발생하지 않을 일이다. 한 총잡이는 “업체와 이미 약속이 돼 있기 때문에 모른 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약속이 돼 있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내가 아무 병원에 들어가 고객의 검진표를 들고 가서 피를 뽑고, 소변을 채취해도 적발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건강검진 대리검사는 시험으로 따지면 ‘커닝’이나 다름없다.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일이다. 중화의학회 건강관리학분회 위원인 정위밍은 “취업시장, 의료시장의 공신력을 뒤흔드는 일이다. 일부 특수 직종의 경우 엄격한 건강검진이 필요한데 이를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추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당장에 입사하더라도 나중에 결국 몸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법적인 규제와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과는 별개로 건강검진 절차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목밴드, 안면인식 등의 기술을 활용해서 개인 신분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건강검진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유를 막론하고 대리검사가 이뤄진 병원은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가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의 건강검진 항목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대책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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