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왼쪽)’와 ‘사마귀 유치원’ 코너. 웃음과 풍자를 버무려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 |
바야흐로 풍자개그 전성시대다. 최근 ‘사마귀 유치원’과 같이 민감한 정치·사회 부조리를 소재로 한 풍자개그 프로그램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풍자개그를 통해 암울한 현실 속에서 꽉 막힌 속을 뚫고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조리들이 산재해 있다는 씁쓸한 방증이기에 마냥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천 만수동에 사는 대학생 유 아무개 씨(26).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1년째 휴학 중이다. 현재 각종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년 학기 등록금 마련을 꾀하고 있다. 그의 유 씨의 유일한 즐거움은 일요일 저녁시간 방영되는 개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풍자개그 ‘사마귀 유치원’을 가장 즐겨보고 있다.
그는 “‘사마귀 유치원’의 대사 하나하나는 나로 하여금 큰 공감과 함께 배꼽을 잡게 한다. 내가 세상에 하고 싶던 말을 대신해주고 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느낌이다. 속이 다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 개그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KBS <개그콘서트>가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오랫동안 국민들의 웃음을 책임져 준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최근 시청률 상승폭이 예사롭지 않다. 그 수훈갑은 당연히 ‘사마귀 유치원’ ‘비상대책위원회’와 같은 해학성 짙은 사회풍자개그다. 기존의 ‘달인’과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인기가 주춤해진 틈을 타 시청자로부터 뜨거운 호응 속에 매주 순항 중이다.
풍자개그의 선두주자 ‘사마귀 유치원’은 유치원을 배경으로 아이들에게 진학상담을 한다는 콘셉트로 사회 세태와 정치를 넘나드는 풍자를 다루고 있다. 이 코너가 다루는 소재는 실로 다양하다. 진학상담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일수꾼(최효종 분)은 “대기업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3개 대학 중 하나에 들어가면 된다. 학비는 편의점에서 1년을 숨만 쉬고 바코드를 찍으면 된다”라고 말하며 취업난 세태를 비판하는가 하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집권여당 수뇌부와 친해지고 여당 텃밭에서 공천을 받으면 된다. 평소 가지 않았던 시장에 가서 먹지 않았던 국밥을 먹으면 된다”라고 말하며 선거철 풍경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또 다른 풍자코너 ‘비상대책위원회’는 테러범과 대항하는 비상계엄상황에서 시간만 지체하고 이런 저런 핑계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찰, 군인, 대통령이 등장해 공직사회의 무능함을 정면으로 다룬다. 경찰청장으로 등장하는 김원효의 “안~돼~”는 아래로부터의 소통을 거부하는 정부당국의 문제점을 상기시키며 이미 국민 유행어로 등극한지 오래다.
최근 SBS가 오랜 준비 끝에 선보인 개그프로그램 <개그투나잇>과 종편방송 TV조선이 방영 예정인 개그프로그램 <10pm> 역시 사회풍자를 프로그램의 큰 줄기로 갈 것임을 공적인 자리에서 제각기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국민들은 풍자개그에 열광하는 것일까. 사실 대한민국 코미디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금과 같이 풍자개그가 큰 인기를 끌던 르네상스가 있었다. 군사정권과 문민정권 사이의 과도기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는 억압된 정치 분위기에서 국민들의 비판적 욕구가 용솟음치던 극도의 혼란기였다.
기자와 만난 유명개그작가 출신 유머강사 전영호 소장(전영호발전소)은 “당시 KBS <유머일번지> <쇼비디오자키> 등 인기 개그프로그램을 통해 ‘회장님 우리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네로25시’와 같은 풍자코너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며 큰 인기를 끌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 그야말로 딱 떨어졌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국민들의 비판 욕구가 일부 허용되면서 풍자물이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단지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사마귀유치원’과 차이점을 꼽자면 당시 풍자코너들은 직설화법보다는 교묘한 비유를 썼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회장님 우리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네로25시’는 각각 재계 이사회, 춘추전국시대, 중세 로마를 배경으로 당시 세태를 적절하게 비유해 국민들의 비판욕구를 적절하게 채워줬다.
연세대학교 황상민 교수는 당시 1980년대 풍자개그 전성기와 풍자물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현 세태를 비교하며 날카롭게 분석했다. 황 교수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원래 풍자물은 엄숙한 시기 때 인기를 끄는 법이다. 이번 정권은 자신만의 권위를 지키려 하고 있다. 또한 이번 정부 들어 유달리 언론과 지식인들도 입만 다문 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엄숙한 시기였던 80년대와 공통점이 많다. 언론과 지식인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개그가 대신 해주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현재 개그를 통해 내재되어 있는 현 세태의 풍자적 욕구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고 진단했다.
최근 풍자개그는 국민들의 시원한 배출구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졌다는 방증이기에 뒷맛을 씁쓸하게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그러면 소통이 됩니까
최근 콘서트 형식을 빌려 관객들과 진솔한 소통을 꾀하는 각종 ‘토크콘서트’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004년 인기 MC 김제동이 절친한 가수 윤도현 등과 함께 음악과 토크가 조합된 ‘뮤직토크쇼’를 기획한 것을 시작으로 ‘토크콘서트’는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토크콘서트는 사회적·정치적 현실을 담담하게 주고받는 풍자적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그 선두주자는 단연 ‘청춘콘서트’다. 지난 5월부터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전국 25개 도시를 돌며 시작한 ‘청춘콘서트’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며 관객동원 5만 명을 훌쩍 넘겼다. 현재는 김제동, 법륜스님, 탤런트 김여진 등을 중심으로 ‘청춘콘서트 2.0’을 인기리에 진행 중이다.
화제의 팟캐스트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 역시 최근 폭발적인 인기 기세를 몰아 전국 공연장을 순회하며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소 진보적 색채가 짙었던 ‘토크콘서트’의 열풍은 보수진영으로까지 옮겨 붙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북한인권운동가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애국소녀’로 알려진 레이싱걸 김나나와 서울대학교에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인권, 레이싱모델을 만나다’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당시 콘서트에서는 북한 인권을 주제로 열띤 대화가 오고갔다.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전국 대학생 드림토크’를 기획 중이다. 대학생들과의 진솔한 문답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소홀히 했던 젊은층의 민심을 얻겠다는 심산이 엿보인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