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800여 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지금처럼 국제적 소통이 되지 않았던 시대였음에도 당시 우리 문화는 중국과 일본을 흔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여주었다. 그 중심에 고려불화가 있다. 당대 서양미술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난 탐미성과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 고려불화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회화 유산이다.
고려불화는 13~14세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는데, 섬세한 표현력과 장식적 아름다움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유려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선묘, 단아한 형태, 화려한 색채 구사, 다양한 문양이 빚어내는 장식성, 정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묘사.’ 고려불화를 설명할 때면 언제나 따라 붙는 말이다. 특히 투명한 천으로 만든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은 듯한 표현은 가히 압권이다. 겹쳐진 부분을 가려내는 표현 방법으로 서로 다른 문양을 그려서 깊이 감을 불어넣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고려불화는 국내에 20여 점,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에 10여 점, 일본의 사찰과 미술관에 130여 점 정도다. 일본에 유독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건너간 탓도 있지만, 상당수가 고려시대 때 일본인들이 직접 주문 제작해서 사갔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대에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었던 회화다.
고려불화 제작의 중심에는 ‘금니 기법’이 있다. 아교에 순금 가루를 개어 가는 붓으로 그리는 방법이다. 금으로 그리기에 화려함과 고귀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기법으로 수초를 그린다. 그리고 개인주의적 습성이 강한 열대어를 세밀하게 그린다. 배경은 검정에 가까운 청색, 붉은색 등이다. 어항을 소재 삼아 그렸지만, 무한 우주 공간에 유영하는 물고기와 수초를 보는 느낌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맑고 청아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현정 회화에서는 고려불화의 정취가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