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월북 증거 없다”, 유족 측도 고발키로…대통령 기록물 열람 부담 검찰 ‘시간 갖고 신중하게’ 가능성
진상조사라는 명목 하에, 대통령 기록물까지 확인해야 할 수도 있는 정치적인 사건이다. 당장 여당과 야당 모두 이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검찰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검찰도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서울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를 받아야만 대통령 기록물 봉인 해제가 가능하다. 거꾸로 기각된다면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당장 고발 대상에서는 빠졌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수사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야당의 반발은 매우 거셀 수밖에 없고 검찰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때문에 검찰이 속도전에 나서기보다는, 신중하게 시간을 가지고 증거들을 확보해나가는 신중 수사를 펼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야당 거센 반발 속 커지는 논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 아무개 씨 피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걸었던 공약이기도 했다. 그리고 6월 16일 국방부는 사건 1년 9개월여 만에 다른 결론을 내놓았다.
국방부는 입장문에서 “사건 발생 이후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며 “해경 수사 종결과 연계해 관련 내용을 다시 한 번 분석했지만 피살된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으며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취임 한 달여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이었던 관련 사건 진상조사를 마무리한 셈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특별히 사실관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입장만 바꾼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진실 공방이 재점화되자, 민주당 전직 국방위원회 의원들은 당시 국방위 비공개 회의록 공개에 협조할 수 있다고 나섰다. 민주당 전 국방위원들이었던 황희, 홍영표, 김민기, 설훈, 김병주 의원 등은 6월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안보 해악을 감수하고라도 당시 비공개 회의록 공개를 간절히 원한다면 국회법에 따라 회의록 열람 및 공개에 협조하겠다”고 강조했다. 필요한 경우 SI정보(특수정보첩보)도 미국 측의 협조를 받아 공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SI는 당시 군 당국이 월북으로 판단하는 데 근거로 삼은 자료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의 관련 질의에 “SI라고 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공개하라고 하는 주장 자체는 좀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않냐”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직권남용 범죄 경우 공수처 수사 대상
문제는 관련 진상 조사 및 법적 책임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이 다시 검찰에게 돌아오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유족이 법적 책임을 묻는 고발 등을 할 경우에만 수사가 가능했었는데, 서해 피격 공무원 유족 측은 당시 청와대 민정·안보라인을 22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유족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종호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 등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유족 측은 “사망한 공무원의 자진 월북 결론을 내기 위해 해양경찰과 국방부에 압력을 넣어 관련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는 입장이다. 일단, 공무집행방해 외의 혐의로 세 명만 고발하되, 수사 과정을 보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고발할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건 자체만 보면 어렵지 않은 수사’라는 평이 나온다. 해경과 국방부 실무진을 조사해서 “월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지만, 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진술이 나오고, 당시 사건 관련 정보들을 모두 취합해 ‘월북으로 단정 짓기에 증거가 부족했다’라는 점을 확인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이 공무집행방해보다는,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기가 더 무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특수통 출신 변호사는 “공무집행방해는 ‘정당한 공무를 방해했다’라고 봐야 하는데, 이는 위에서 밑으로 찍어 누르는 ‘지시’의 성격이 강하고, 불법적이거나 문제가 될 소지의 지시라면 직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하는 게 기소하기 적절해 보인다”며 “정말 월북 발표가 과도한 지점이 있었다면, 의무가 없는 일을 실무진에게 시켰다고 보고 직권남용으로 기소하는 게 유죄를 받기도 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수사 때에도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한 국정원 직원이 수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수사 대상자와 관련 기록들이 대통령 기록물이라는 점은 ‘사건 난이도’를 높게 만든다. 공무원 사망 관련 사안이 담겨 있는 핵심 자료들은 대통령 기록물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통령이 특별히 보호해야 할 지정기록물은 최장 15년까지, 대통령 사생활 관련 기록은 최장 30년까지 비공개할 수 있다.
이를 열람하고자 할 경우 법원에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국회 재적 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이 있거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하면 가능하다. 수사를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다고 가정하면, 서울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해줘야 한다.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외교관계 및 국민경제의 안정을 심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영장 발부가 가능한데, 기각될 경우 검찰이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 기록물은 예전에도 영장 발부를 통해 열람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물 유출사건’ 수사 과정에서 영장 발부로 기록물을 열람했고,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논란 당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보고 시간 조작 의혹과 이명박 정부 댓글 여론조작 의혹, 김학의 성접대 수사 방해 의혹 당시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했다.
다만, 여전히 진행 중인 여야의 정쟁은 검찰이 ‘신중하게’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보탠다. 당장 국민의힘 측은 국회 동의로 기록물 열람을 주장하고 있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이 이에 화답할 가능성은 낮다. 되레 야당 역시 월북 판단의 근거가 된 SI정보를 거론하며 여당 측을 압박하고 있다.
정치 관련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영장으로 대통령 기록물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거꾸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를 수사했던 검사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속도전으로 나서 야당의 반발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가는 수사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고발장이 접수되면 일단 고발인들을 빠르게 소환조사하되, 정치권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충분히 지켜본 뒤 더 이상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점이라는 판단이 서면 그제야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가능성은 변수다. 유족의 고발 대상자인 세 사람이 모두 3급 이상 공직자이고, 직권남용 범죄의 경우 공수처 수사 대상이다. 검찰이 수사 도중 직권남용으로 죄명을 변경해 구속영장이라도 청구한다면, 공수처가 사건을 가져갈 수 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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