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에서 벌어진 2008년 아키하바라 살인사건. 수많은 모방범죄를 부른 이 사건 역시 2001년 오사카 초등학교 난입사건을 모방해 벌어졌다. |
이웃 나라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이런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일본 경시청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전역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 또는 미수 사건은 무려 74건에 달한다. 그 행태는 실로 잔혹하기 짝이 없다. 미국의 총기난사 사건처럼 백주대낮에 학교에 들어가 칼을 휘둘러 여럿을 죽이는가 하면, 역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을 달리는 열차 앞으로 떠밀기도 한다. 그간 일본의 범죄학자들이 분석한 가해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을 살펴봤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한결같이 세상을 향한 울분이나 끓어오르는 화 때문에 “아무나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정신과 가타다 다마미 의사의 저서 <무차별살인 정신분석>에 따르면, 범인들은 범행 전 흉기를 미리 구입해 놓는 등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세우고 먹잇감을 탐색한다. 타깃은 대부분 자기보다 힘이 약한 어린이나 여성, 노인이다. 가해자는 20~40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대부분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더러 여성 범죄자도 있는데 이때도 노인이나 자기보다 약한 여성이 타깃이다.
하지만 대량 살상 때는 건장한 남성에게도 위해를 가한다. 2008년 발생한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이 그 예로, 백주대낮에 도쿄의 도심 아키하바라 한 복판에서 25세 청년이 8명의 시민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을 보면 트럭으로 행인 5명을 친 뒤, 다친 사람을 도우려 다가온 젊은이들과 경관에게 미리 준비한 길이 13㎝ 단검을 휘둘렀다. 남성들이 방심한 틈을 타 공격한 것이다.
묻지마 범죄 가해자들은 또한 남들 앞에 뻐기며 나서고자 하는 비뚤어진 자기현시욕을 보인다. 즉,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묻지마 범죄는 ‘극장형 범죄’라고도 불린다. 범인은 얼굴을 가리지 않는 게 보통이며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태연히 범행을 저지른다. 범죄 후에도 도망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해자들은 한꺼번에 사람을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증오심을 품은 사회에 확실히 복수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마이니치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연쇄살인사건처럼 범행수단과 방법 등을 모방한다. 다른 점은 단지 연쇄살인사건이 비교적 도심 외곽 교외에서 벌어지기 쉬운데 반해 묻지마 범죄는 도심부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범죄학자들은 연쇄살인사건처럼 묻지마 범죄가 한번 발생하면 모방범죄가 일어날 확률이 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특히 무지막지한 살상 규모로 인해 현재 일본의 묻지마 범죄 대명사 격으로 일컬어지는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은 모방범죄가 심각하다. 사건이 발생한 2008년에는 묻지마 범죄가 14건이나 됐다. 2010년에도 42세 남성이 자신을 해고한 회사에 앙심을 품고 회사 공장으로 쳐들어 가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을 모방하겠다’며 5명을 차로 친 후 칼로 1명을 죽이고 11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올 2월에는 ‘도쿄 도심 신주쿠에서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처럼 무차별 살인을 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중학생이 체포됐다.
아키하바라 살인범도 과거 사건을 베꼈다.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이 모방한 것은 2001년 오사카에서 일어난 초등학교 난입 대량 살인 사건이다. 37세 남성이 칼을 들고 한 초등학교에 들어가 어린이 8명을 죽이고 15명의 아이와 교사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발생 날짜가 6월 8일로 똑같고 칼 길이나 모양까지 비슷하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렌트한 트럭으로 사람을 친 후 칼을 휘둘렀단 점은 1999년 시모노세키에서 있었던 묻지마 살인 사건과 같은 방식이다. 시모노세키에서는 40대 트럭 운전수가 역에 돌진해 7명을 친 후, 차에서 내린 다음 역에 들어가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 5명을 식칼로 찔러 살해한 바 있다. 이 사건의 범인은 자신의 범행 방식에 대해 “3주 전에 일어난 도쿄 이케부쿠로의 묻지마 살인 사건을 모방해 식칼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다. 이케부쿠로 사건은 도박중독을 앓고 있는 부모를 둬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에 있던 23세 청년이 한 쇼핑몰 앞에서 식칼과 망치로 지나가던 60대와 30대 여성 2명을 죽이고, 6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다.
한편 전철 역 플랫폼에서 선로나 달려오는 열차로 등을 떠미는 식의 묻지마 범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오사카의 한 역에서 43세 무직 남성이 40대 여성 회사원을 플랫폼에서 밀어서 선로로 떨어뜨려 골절상을 입힌 사건이 처음 발생한 후, 21세 남자 대학생이 술 취한 40대 남성을 선로로 미는 등 비슷한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2008년에는 오카야마 역에서 18세 소년이 플랫폼에 서 있던 38세 남성을 밀었는데, 결국 이 남성은 열차에 치어 5시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범행을 한 소년은 고교를 졸업하고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학 진학이 어려워지자 사회에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그 후 무작정 전철을 탄 뒤 아무 역이나 내려 플랫폼에서 사람을 민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몇 차례 발생하자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된 괴소문이 떠돌고 있다. 플랫폼에서 사람을 무작정 미는 이들이 있으니 비가 와 바닥이 미끄러운 날에는 특히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묻지마 범죄는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2010년 12월 말 이바라기 현에서는 27세 남성이 아침 일찍 통학 버스에 타 여고생 14명을 차례로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범죄심리학자 우스이 마후미 씨는 묻지마 범죄 가해자들의 심리 기제가 마치 자살하는 이들과 비슷하다고 짚었다. 단 자살이 자기 내부로 공격방향타가 정해진 것이라면, 외부로 향하는 경우가 묻지마 범죄다. 가해자들은 자신은 비참한데 세상 사람들은 마치 즐거운 양 거리를 활보하며 다니는 것처럼 보일 때 슬픔과 분노를 강하게 느낀다. 마음이 건강할 때 활기찬 이들을 보면 쾌활해지기 마련이나 장기간 자존심이 심하게 다쳐있을 때는 자기를 도저히 억제하지 못한다. 사회나 타인에 대한 질투심이 심해져 이를 타인을 여럿 죽이는 방식으로 푸는 것이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