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에도 위스키가 있을까. 윈저, 임페리얼 등은 한국 위스키라고 말하기 어렵다. 원액을 100% 스코틀랜드에서 수입, 한국에서 브랜딩 및 병입만 하기 때문이다. 무늬만 국산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순국산 위스키를 만들었다. 1982년 두산그룹(당시 OB씨그램)이 위스키 원액을 만들기 시작했다. 진로는 다음해 3월 이천에 위스키 공장을 세우고, 롯데주류 백화수복의 전신인 백화양조는 군산의 소주 공장을 개조해 위스키 원액 제조에 참여했다. 1987년부터 국산 위스키 원액과 스카치위스키 원액을 같이 넣은 국산 위스키가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OB씨그램의 디플로맷과 진로의 다크호스라는 제품이다. 하지만 당시 수입 원액 100%로 만든 스카치위스키인 패스포트, 섬씽 스페셜 등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해외여행도 가기 힘든 시절, 유럽 문화를 동경하던 사람이 많던 그 시절에는 결과적으로 경쟁에서 뒤처졌고, 당시 국산 보리 가격도 술로 만들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위스키 본고장 스코틀랜드에 비해 숙성시 위스키 증발량이 훨씬 많았다. 국산 위스키 제조의 선구자인 오미나라의 이종기 박사에 따르면 스코틀랜드는 1년에 증발하는 위스키 양이 1~2%였지만 한국은 5~10%나 됐다. 10년이 지나면 스카치위스키는 총 알코올 생산량의 10% 전후로 사라지는 데 비해, 국산은 20~30%가 증발돼 타산이 맞지 않았다.
이유는 기후 문제였다. 스코틀랜드 날씨는 늘 춥고 안개와 비가 많지만,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덥고 추운 날의 차이가 많다. 우리나라 기후에서 오크통에 숙성하면, 나무 자체가 온도차에 영향을 받아 수축과 팽창을 하면서 그 틈으로 알코올이 지속적으로 증발한다. 결국 국산 위스키 제조사는 몰트의 훈연처리설비 및 오크통 등 수백억 원의 설비를 포기했다. 1994년부터는 임페리얼 등 당시로는 수입 원액으로 제조한 특급 스카치위스키인 12년산 위스키 등을 출시한다.
한국 위스키 산업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실은 이미 다시 시작하고 있다. 김포의 김창수 위스키와 남양주의 쓰리소사이어티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롯데그룹, 신세계그룹도 위스키 산업에 진출한다고 한다.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까? 힌트는 대만 위스키에 있다. 바로 기후의 영향으로 알코올이 빨리 증발되는 현상을 마케팅으로 기가 막히게 풀어낸 게 대만의 카발란이라는 위스키였다.
기후로 이야기하자면 대만은 위스키 생산에 더 치명적이다. 아열대 기후로 인해 우리보다 2배 가까이 원액이 증발된다. 스코틀랜드에 비유하면 무려 8배 이상이다. 이것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했다. 증발이 빨리 되는 게 아닌 숙성이 빨리 되는 것이라고 마케팅했다. 그래서 해당 제품에는 숙성연도를 표기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위스키가 2017년 아시아 대표 위스키가 됐다. 즉, 스카치위스키처럼 숙성연도에 집착을 하며 술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위스키가 가진 고정관념을 탈피한 사례다.
이제 다시 시작한 한국 위스키는 성공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아무리 위스키에 숙성이란 개념이 약해졌다고 해도 한국의 주세법상 1년 이상 오크통에 숙성을 해야 위스키가 된다. 스코틀랜드 기준은 3년이다.
한 번 만들려면 자금 회전에 최소 1~3년,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려면 10~2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 투자자들이 기다릴 수 있을까? 그때까지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결국 위스키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소비자 모두 관심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압축성장을 통해 쉼없이 달려온 한국의 산업. 이제는 숨을 골라가며 천천히 뒤도 돌아보는, 그런 산업의 가능성도 보이길 기대해 본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다.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이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