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들 가득한 영화 속 ‘보통사람’ 연기…어느새 26년차 배우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 제안 들어와”
“박훈정 감독님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웃음). 제가 작품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도 감독님으로부터 설득당했는데 능력자들 사이에서 평범해 보이는 역할이기에 더욱 특별한 역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인 캐릭터가 꼭 필수 요소인데, 그 무게를 잡아주는 데 저 같은 배우가 필요하다고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뭐(웃음)!”
박은빈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 경희를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하늘을 날듯이 뛰어다니고, 음속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팔다리가 잘려도 금세 재생해 버리는 이들 사이에 남동생 대길(성유빈 분)과 함께 유이하게 ‘보통의 사람’을 보여주고 있다. 비밀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초인 집단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땅을 노리는 조폭들의 협박과 납치까지 겪는 경희는 이 작품 안에서 가장 고생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소시민이나 다름없는 경희는 연구소에서 탈주한 ‘소녀’(신시아 분)가 가진 강력한 능력을 직접 경험했으면서도 오히려 소녀를 지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소녀를 노리는 초인, 땅을 노리는 조폭 등 악인만 가득한 ‘마녀2’ 속 경희 남매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인으로 남아 보편적인 인간의 양심을 대변한다.
“경희는 정말로 착한 캐릭터죠(웃음). 악의 본능이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착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디선가 ‘상상 속의 악은 매혹적일 수 있지만 실제 악은 단조롭고 우울하다. 그러나 상상 속의 선은 때론 지루하고 재미없을지라도 실제 선은 굉장히 고귀하다’라는 글귀를 봤어요. 아무래도 관객들이 ‘마녀2’에서 기대하시는 방향과 경희라는 캐릭터는 상반되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경희와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역을 제가 잘 할 수 있다면 감독님이 원하시는 시나리오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싶었어요.”
강력하고 절도 있는 액션과 화려한 연출로 많은 팬들을 낳았던 ‘마녀’ 시리즈지만, ‘마녀2’에서 관객들은 소녀와 그를 제거하고자 하는 초인 집단 ‘토우’들이 보여준 집단 액션신과 더불어 경희의 ‘총기 액션’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한 번도 쏴 본 적이 없다는 걸 눈치 채게 만드는 어설픈 자세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소녀와 동생 대길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경희의 모습이 강렬하다. 여기서 박은빈의 열연은 보이는 것 이상의 더 짙은 서사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사실 그 신을 총기 액션이라고 말씀 드리기엔 민망하고 그냥 ‘총 좀 들어봤다, 실탄 한 번 쏴 봤다’ 정도죠(웃음). 역할을 위해 준비한 게 너무 없어서 죄송할 정도예요. 아무래도 경희는 총질에 익숙한 캐릭터가 아니고 사실상 불완전한 사람 중 하나거든요. 아직 어른도 되지 못했고 힘도 없는 일반인이죠. 그래서 총을 쥔 자세가 어색한 것도 캐릭터성이라고 생각했어요.”
경희가 소녀를 지키려 한 것처럼 현장에서 박은빈도 신시아에게 힘이 돼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마녀2’가 스크린 데뷔작이자, 정식 연기자로서도 첫 발걸음을 뗀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신시아에게 아역부터 시작해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우로 살았던 박은빈은 ‘산신령’ 같은 선배다. 배우 12년 차 성유빈도 본인의 앞에선 까마득한 후배였으니 박은빈은 늘 이들을 챙겨주고 싶어 안절부절 못했다고 한다.
“저는 주변에 어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을 보면 제가 더 강인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우월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남의 어려움을 돌봐주고 싶은 이타심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시아도 자체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부담감, 모르는 것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어 제가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는데 실제 도움이 됐던 건 없었던 것 같아서 미안해요(웃음). 제주도 올 로케이션이었는데 차기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문에 제가 계속 서울을 왔다 갔다 해야 했거든요. 언니로서, 누나로서 시아랑 유빈이를 잘 챙겨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고 아쉬워요. 꼭 언젠가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웃음).”
촬영 기간 동안에도 다른 촬영을 함께 소화해 내야 했던 박은빈은 정말 쉴 새 없이 달리고 있다. 현재진행형이다. 1997년 첫 드라마 출연 후 2022년 현재까지 박은빈이 작품을 내놓지 않은 해는 없었다. 최근 3년 동안은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KBS2 드라마 ‘연모’ 등 3연타를 해내며 “믿고 보는 박은빈” 신화를 새로 썼다. 오는 6월 29일에는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또 다시 대중들을 찾는다. 빈틈없이 꽉꽉 들어찬 스케줄은, 바꿔 말하면 어떤 장르의 어떤 작품이든 박은빈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요즘 제안이 들어오는 작품들을 보면 저라는 배우의 스펙트럼을 넓게 생각해주시는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아요. 정말 다양한 장르,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를 제안해주시더라고요. 왜 이런 캐릭터를 제게 제안해주셨을까 하는 작품도 있었는데, 제게 ‘박은빈이니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저도 궁금해요, 제가 그런 걸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정말로 생각해주시는지(웃음). 아무래도 제가 이래저래 도전을 많이 하는데 다 해내는 모습들을 보여드렸더니 더 폭넓게 제 캐릭터를 생각해주시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자평을 해봅니다(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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