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 불출마 압박 동시에 집단지도체제 꺼내…이재명, 출마 늦추며 ‘형님 리더십’으로 대응
“이중삼중의 벽을 치고 있다.”
여의도 한 전략통이 내린 친문(친문재인)계 차기 당권 플랜에 대한 총평이다. 당장 ‘이재명 대항마’로 꼽힌 친문 핵심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 22일 “저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전당대회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이재명 의원의 ‘동반 불출마’를 압박하겠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당권 주자인 NY(이낙연)계 설훈 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 이재명 의원에게 불출마를 권유했다. 야권 안팎에선 “전 의원을 시작으로, 홍영표·설훈 의원 등이 릴레이 불출마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재명 출마를 막기 위한 ‘반명(반이재명)계의 인해전술’이다.
그다음 방어막은 ‘룰 싸움’이다. ‘당원 우선’을 외친 친명(친이재명)계에 맞서 친문계가 맞불을 놓은 집단지도체제가 대표적이다. 전해철 불출마에도 불구하고 친문계가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이재명 불출마)’가 현실화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로, 겹겹의 방어막을 구축한 셈이다. 친문계의 플랜 A가 ‘이재명 불출마’라면, 플랜B는 ‘집단지도체제’를 통한 힘의 집중 막기다.
몸풀기에 들어간 이재명 의원이 차기 당권을 접수하더라도, 친명계의 힘을 빼놓을 수만 있다면 친문계로선 최악의 상황만은 피할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집단지도체제가 도입된다면, 친명계가 당권을 접수하더라도 오는 2024년 총선 공천권 장악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친문계가 들고 나온 집단지도체제는 현재의 단일성 지도체제와는 선출 방식부터 권력 분점까지 모든 게 다르다. 단일성 지도체제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선출한다. 당 대표 경선은 ‘메이저리그’, 최고위원은 ‘마이너리그’로 통한다. 메이저리그에선 오직 1위만 지도부에 입성한다. 경쟁자의 지도부 입성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일성 지도체제 땐 1위를 제외한 모든 후보는 짐을 싼다. 이해찬호가 출범한 2018년 8·25 전당대회 당시 당 대표 경선에 나섰던 송영길·김진표 후보는 지도부에 입성하지 못했다. 송영길호 출범을 알린 2021년 5·2 전당대회에선 홍영표·우원식 후보가 탈락했다.
집단지도체제 땐 2위 이하 후보도 자동으로 최고위원 자격을 부여받는다. 민주당의 마지막 집단지도체제였던 2010년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삼두마차 때가 그랬다. 10·3 전당대회 최종 승자는 손학규 전 대표. 2·3위를 차지한 정동영·정세균 전 의원은 나란히 최고위원으로 손학규호에 합류했다. 하지만 민주당 인사들은 집단지도체제 당시를 ‘여의도판 봉숭아학당’으로 기억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비공개회의에 들어가면 손 전 대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동영 전 의원 등이 얼굴을 붉히며 반발하는 게 다반사였다”고 했다.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 생) 한 관계자도 “집단지도체제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며 “그 이후 9년째 단일성 지도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그때 잔혹사가 한몫했다”고 했다.
집단지도체제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1·2위 간 격차다. 1위 후보가 과반 득표율로 당선된다면 권력 독점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겠지만, 그 반대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2010년 민주당 10·3 전당대회도 정당성 약한 체제의 대표격으로 꼽힌다. 손학규 전 대표 득표율(21.37%)과 정동영(19.35%)·정세균(18.41%) 전 의원의 격차는 불과 2~3%포인트에 불과했다. 민주당발 집단지도체제가 봉숭아학당으로 전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표 주자가 없는 친문계로선 집단지도체제만 관철한다면, 설사 1위를 내주더라도 한번 해볼 만한 승부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명계 인사들은 “계파 나눠먹기를 하자는 것이냐”라며 반발한다. 이 지점은 집단지도체제의 약한 고리다. 대통합민주신당은 2007년 대선 패배 직후 옛 민주당과 손을 잡았다. 2008년 총선을 앞둔 터라, 민주당은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였던 손학규 전 대표와 옛 민주당의 박상천 전 대표를 투톱으로 내세웠다. 통합에 따른 내부 정비를 총선 이후로 미루고 ‘한 지붕 두 가족’의 임시체제를 가동한 것이다.
결과는 실패. 지역위원장을 비롯한 공천 과정에서 계파 나눠먹기 후폭풍에 시달렸다. 18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고작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1위는 153석을 차지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의 몫이었다. 민주당은 서울 48석 중 7석, 경기 51석 중 17석, 인천 12석 중 2석에 각각 그치면서 수도권 빅3에서도 참패했다. 18대 총선에서 패한 민주당은 단일성 지도체제로 전환하고 2008년 7월 ‘정세균호’를 띄웠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에서 단일성 지도체제로 바꾼 것은 과도기 리더십을 끝내고 원톱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친문계가 전당대회 현재 룰을 고수하는 것을 두고 ‘친명 일색’을 지우는 방패막이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의 당 대표·최고위원 본투표 룰은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 국민 여론조사 10%, 일반 당원 여론조사 5%다. 친명계 인사들이 원하는 개정 룰은 ‘대의원 20%, 권리당원 45%’ 안팎이다. 플러스알파로 일반 국민 여론조사 비율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친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대의원 수는 1만 6000명가량에 불과하다”며 “이들이 70만 명을 웃도는 권리당원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했다. 다만 이재명 핵심 측근 모임인 7인회 좌장 정성호 의원은 “현재 룰대로 치르자”는 의견을 당 산하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재명 출마를 위한 밑자락을 깐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 의원의 발언 자체가 ‘이재명 출마’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 의원이 친문계가 원하는 룰을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한다고 밝힌 것은 ‘이재명의 형님 리더십’ 프레임을 띄우려는 전략적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불리한 룰을 전격 수용하면, 되레 ‘이재명 대세론’에 날개를 달 수 있다는 셈법이 깔렸다. 민주당의 ‘룰 잔혹사’도 이 의원 측의 룰 수용 움직임에 한몫했다. 민주당 한 전략통은 “과거 전당대회 때마다 불리한 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쪽이 항상 패배했다”며 “2012년 대선 당시 손학규, 2015년 2·8 전당대회 당시 박지원 등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룰 전쟁이 본격화되는 사이, 이 의원의 물밑 움직임도 빨라졌다. 그는 6월 18일 인천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개딸(개혁의 딸) 등과 만나 “당직은 당원에게, 공직은 국민에게가 큰 원칙”이라고 밝혔다. 당 내부에선 “차기 당권 도전을 공식화한 것”이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최근엔 ‘원조 친노(친노무현)’ 김두관 민주당 의원을 만나 “세게 도와 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인사 정도의 만남이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당 안팎에선 “전당대회 출마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적어도 ‘이재명 출마’는 8·28 전당대회의 상수라는 얘기다. 이재명 형님 리더십 띄우기에 나선 정성호 의원도 최근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재명을 도와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8·28 전당대회가 이재명 출마 쪽으로 기울면서 다른 당권 주자들의 결단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6월 말 현재 출마 의사를 내비친 주자는 NY계인 5선의 설훈 의원을 비롯해 3선 정청래 의원 등이다. 이어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인 우원식 의원(4선)과 친문 박범계 의원(3선) 등도 출마를 놓고 고심에 들어갔다.
친문 핵심 홍영표 의원(4선)과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 이인영 의원 등도 막판 장고에 돌입했다. 친문계 일각에선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출마에 군불을 때고 있다. 다만 김 전 총리는 주변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카드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작다는 게 중론이다.
세대교체 주자인 97그룹에선 초재선인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전재수 의원 등이 후보군에 올랐다.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중반 출생자)에선 민주당 저격수로 거듭난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출마설이 나온다. 하지만 MZ세대 한 당직자는 “세대교체 바람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는 이재명 의원이 출마를 공식화한 이후에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8·28 전당대회 상수인 이재명 의원은 최대한 공식출마 시기를 늦춘 채 당분간 물밑 행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인사는 “대세론 주자의 패는 가장 늦게 보여주는 법”이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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