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직 사퇴라는 강수를 던지며 여권 쇄신을 주도하고 있는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런 김 의원이 이번엔 ‘쇄신’에 총대를 멨다. 그것도 현직 대통령을 향해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만큼 역풍도 셌다. 주로 ‘칭찬’만 들어오던 김 의원으로선 버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뷰 내내 김 의원은 ‘진정성’을 호소했다. “정치적 계산이라고만 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당 일각에서 김 의원 등을 포함한 쇄신파를 향해 ‘총선용’으로 깎아내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출이었다.
― 한나라당 의원 25명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이른바 ‘쇄신 서한’ 작성을 주도했다. 이 대통령이 무엇을 사과해야 하고, 또 어떤 식으로 국정기조를 변화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 내곡동 사저문제, 회전문 인사, 측근비리 등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가 국민들과의 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아무리 쇄신을 외쳐도 국민들 마음을 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여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통령이 그동안 잘못된 부분에 대해 고해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 당직(정책위 부의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자기비판이 부족하다”는 당 안팎의 지적을 수용한 것인지.
▲ 그런 차원이 아니다. 당직을 가지고 있으면 쇄신 운동을 치열하게 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직을 버리고) 민심과 동떨어진 얘기들을 하고 있는 당내 세력들과 부딪쳐 싸울 것이다.
― ‘내년 총선에서 위기감을 느껴 행동에 나선 것 아니냐’며 진정성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임기 말에 접어든 이 대통령에게 이제 와서 목소리를 높이는 게 기회주의적인 것은 아닌지.
▲ 당락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에서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두 번이나 낙선해봤기 때문에 민심이 돌아서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식으로 왜곡하는 것 자체가 민심을 정확히 읽지 못하는 것이다. 당 내에서 아옹다옹할 때가 아니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
― 어찌됐건 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겠다는 것 아니겠느냐. 이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선 ‘임기 말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국면을 전환하려 했던 과거 집권 여당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폄하하기도 한다.
▲ 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의 공과 과를 우리가 다 짊어지고 가겠다. 책임공방으로 몰아가는 쪽은 뭔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는 안 한다. 우리의 주장은 간단하다. 우선 이 대통령이 솔직담백하게 사과하고, 그것을 시작으로 어려운 민생을 해결해주는 구체적인 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여권이 어떤 말을 해도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 지난해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김성식 후보가 정견발표를 하는 모습. 유장훈 기자 |
― 이 대통령이 지난 9일 “답변 안하는 것이 답변”이라며 사실상 쇄신파가 보낸 서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일단은 좀 더 시간을 갖고 숙고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가 보냈던 서한을 버리시라. 쇄신파와 당은 신경쓰지 마시고 국민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소통을 잘할 수 있을지를 우선 고민하시길 바란다. 역사를 보면 성군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부덕의 소치’라고 했고, 신하들에게 직언을 하라고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한을 버리시라.
― 그동안 여러 차례 쇄신에 나섰지만 성과는 딱히 찾아보기 힘들다. 당 일각에선 쇄신파를 놓고 ‘양치기 소년들’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 국민들 눈높이에 모자랐던 것에 대해선 반성한다. 하지만 조금은 쉽게 말하는 부분도 있다. 우리가 추가 감세를 철회하자고 했을 때 그 시선은 차가웠지만 결국 지금 당론이 됐다. 대학교 등록금, 비정규직, 청년 실업 문제 등 정책적인 분야에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또 당 대표가 ‘청와대 똘마니’ 노릇은 안하고 있지 않느냐. 여기에도 쇄신파의 역할이 작용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에게) 직언 못했던 사람들 한 번 보여 달라.
― 하지만 국민들은 쇄신파의 그러한 노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 솔직히 6~7월만 하더라도 한나라당이 이번엔 제대로 바뀔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언론들도 그렇게 보도를 했고. 그런데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모든 것이 떠내려갔다. 어떻게 해서든 막았어야 했다.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이 내용을 담았다. 잘못된 정치행위 하나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결국 정치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번에도 친이계인 장제원 의원 등이 쇄신파의 절차적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장 의원은 “외형적으론 자기반성을 전제로 대통령에게 고언을 하는 형식이지만 실제론 언론에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윽박지르듯 사과를 요구했다”며 쇄신파를 비난한 바 있다).
▲ 보안을 지키려 했지만 의원들에게 돌리는 과정에서 언론에 새 나갔다. 그 점에 있어선 좀 더 사려 깊었어야 한다는 지적은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게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니지 않느냐. 소소한 문제다. 기존의 계파의식을 뛰어넘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느냐가 핵심 포인트다.
― 그렇다면 여권이 어떤 식으로 쇄신을 해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 거대한 쓰나미가 오고 있다. 기성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태고, 이는 급진적 요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엔 전적으로 집권 여당에 책임이 있다. 양극화 시대와 1인 미디어 시대를 맞아 건강한 보수 정치가 해야 할 일을 고심해야 한다. 낡은 좌우 이념을 버리고 상식에 입각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서민들에게 기회도 많이 주고 안전망도 확충해야 한다. 이를 ‘포퓰리즘’으로 몰아선 안 된다.
― 무엇보다 SNS를 통한 젊은 층과의 소통 강화가 시급할 것 같은데.
▲ 기술적 접근은 소용없다. SNS 등장은 민주주의 소통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민주주의가 과거엔 시장경제의 보완재였다면 SNS로 인해 이제는 대등한 관계로 왔다. 또한 SNS 네트워크는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정, 소통 등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그만큼 더 파워풀하다. 이런 걸 보지 못하고 억제하려고만 하면 젊은 층이 동의를 하겠느냐. 국민들은 정치 자세를 보는 것이다. 그 이후에 구체적인 것들을 챙겨가야 할 것이다.
― 얼마 전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에서 ‘총선 물갈이’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유출됐다.
▲ 순서가 틀린 것으로 본다. 어느 정도 쇄신을 이룬 뒤에 당 안팎 인사가 모두 참여하는 총선대책기구를 만들어 공천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 김문수 경기지사가 박근혜 전 대표를 염두에 두고 대권 단수 후보의 위험성을 지적했는데.
▲ 박 전 대표 스스로 대세론은 없다면서 정당정치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 본 것이다. 김 지사도 대충 분칠만 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말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정치행태가 민심과 동떨어졌다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국민들이 눈여겨 볼 것이다. 그 이후 주자들이 서로 다이내믹한 경쟁을 해야 한다. 특히 대권주자들 모두 이명박 대통령을 넘어서야 한다. 정치적 차별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MB 노믹스’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중도실용 경제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하고 표를 줬지만 지금 실망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 차기 대통령의 덕목을 세 가지만 꼽아 달라.
▲ 남북문제, 양극화, 저출산, 교육 등에 있어서 여야 대립을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폐쇄적으로 하지 말고 인재를 두루 기용해야 한다. 반대 정치세력들도 긍정적인 정치에너지로 흡수할 수 있는 통합능력이 필요하다.
― 마지막 질문이다. 초선 후보로서 의정활동에 대한 소회를 말해 달라.
▲ 좋은 정책과 입법을 하는 데 작은 힘을 보탰다. 각종 의정평가에서 1위를 한 것은 큰 보람이다. 다만 뭐 좀 하려고 하면 너무 힘이 들더라. 한국은행법 통과시키는 데 3년이 걸렸다. 재선에 성공하면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김 의원 방을 나서는데 구석에 세워진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메모가 돼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대부분 ‘일자리’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집권여당이 국민들에겐 다소 ‘먼 나라’ 얘기로도 들리는 쇄신 논의를 빨리 끝내고 ‘생활 속으로’ 들어와 민심을 다독여주길 기대해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변화가 필요해…’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정치권에선 박근혜 전 대표와 쇄신파가 어느 정도 물밑 교감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홍 대표가 사과를 한 것 역시 쇄신파보다는 그 뒤에 있는 박 전 대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박 전 대표는 쇄신파의 주장이 나온 이후 “공천 물갈이보다 국민의 삶에 다가가는 것이 먼저다. 쇄신파의 요구는 귀담아들을 만하다”고 밝힌 바 있다.
친박 의원들 역시 공개적으로 쇄신파를 지원하고 있는 형국이다. 친이 직계 의원들이 쇄신파를 비난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비교된다.
이처럼 박 전 대표가 쇄신파에 힘을 실어준 것은 우선 인적개편보다 현 체제 하에서 변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표는 홍준표 대표가 총선까지 당을 이끄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했던 친박 의원은 “인적 개편을 핑계로 친이계가 외부인사 영입 등을 내세우며 박근혜 대세론을 흔들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박 전 대표가 쇄신파를 기점으로 삼아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박 전 대표로서는 쇄신파가 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사과를 요구한 것이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직접 선거 지원 유세를 다니면서 반 MB 민심을 확인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