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코치의 소년 성폭행 파문으로 뒤숭숭한 펜스테이트 풋볼팀이 12일 이미지 회복을 위한 경기에 나섰다. 작은 사진은 성폭행 장본인 제리 샌더스키. 로이터/뉴시스 |
한때 존경받는 미식축구 코치에서 하루아침에 파렴치한 아동 성범죄자로 내몰린 한 노년 남성이 얼마 전 방송에 출연해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의 이름은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펜스테이트) 미식축구팀의 전 수비 코치였던 제리 샌더스키(67). 그는 자신이 운동선수가 하는 행동을 취했을 뿐 성적인 접촉은 하지 않았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결과는 달랐다. 검찰에 따르면 샌더스키는 지난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총 40차례에 걸쳐 8명의 10대 소년들을 성폭행 및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지난 15년간 학교는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는 그야말로 ‘완전 범죄’를 저지른 셈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의문은 남는다. 사건의 전말이 속속 드러나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과연 학교 측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라며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혹시 알고도 모른 척 덮어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저런 의혹이 더해지면서 점차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이번 사건이 사람들을 더욱 경악케 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2002년 3월, 늦은 시간까지 라커룸에 남아 있던 마크 맥퀴어리 조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수상한 소리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샤워실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리드미컬하게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로, 마치 성행위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샤워실 안을 들여다본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할 만큼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벌거벗은 소년이 양팔을 벽에 대고 서있었고, 그 뒤에서 역시 알몸 상태인 샌더스키가 항문 성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끔찍한 모습을 목격한 후 충격에 빠졌던 그는 망설임 끝에 다음 날 조 패터노 감독(84)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패터노 감독은 즉시 팀 컬리 체육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컬리를 비롯한 학교 당국은 징계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하필이면 당사자가 교내의 명망 있는 지도자였던 샌더스키였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학교 측이 내린 결정은 ‘그냥 덮어두자’는 것이었다. 게리 슐츠 재무담당 부총장과 컬리는 이 사건을 경찰은커녕 아동보호단체에도 신고하지 않았고, 샌더스키에게 ‘아이들을 학교 건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샤워장 열쇠를 압수하는 것으로 모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피해 학생을 찾아내 안전을 확인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더 이상의 목격자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최근 대배심 증언을 통해 속속 밝혀지자 격분하고 있는 미국 사회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학교 관계자들 모두가 사퇴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역 사회가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수수방관한 데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대학 측은 곧 패터노 감독을 해임했고, 그레이엄 스패니어 총장과 컬리, 슐츠 등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하지만 대학 미식축구팀의 전설이자 명장으로 꼽히는 패터노 감독의 해임은 곧 또 다른 파장을 몰고 왔다. 46년간 펜스테이트의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409승이라는 대학 미식축구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운 그가 허망하게 물러나는 데 대한 반대 시위가 연일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 코치의 아동 성폭행 묵인 책임으로 해임된 풋볼 전설 조 패터노 감독. |
학교 측이 이처럼 사건을 쉬쉬했던 이유는 샌더스키라는 인물의 상징성 때문이기도 했다. 1999년 돌연 은퇴하기 전까지 32년 동안 코치로 일했던 그는 한때 패터노 감독의 후계자로 지목될 만큼 학생들과 지역민들 사이에서 존경 받는 지도자였다. 또한 1977년 불우 청소년 자선재단인 ‘세컨드 마일’을 설립한 후 수많은 아이들을 돕는 등 지역 사회에 적지 않은 기여도 했다. 이런 활동 덕분에 1990년에는 조지 H.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훌륭한 자원봉사기관에게 수여되는 ‘포인트 오브 라이트’ 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자상한 아버지 같은 이미지’는 2000년 출간된 자서전 <터치드:제리 샌더스키 스토리>에서도 수차례 부각됐다. 그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세컨드 마일’을 통해 만난 청소년들에 대해 언급했으며, 자신이 얼마나 아이들을 친근하게 대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가령 소년들을 자주 껴안는 행동이 반복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한 예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의 이런 자상한 행동 뒤에 또 다른 흑심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한때 이상한 소문이 나돌긴 했었지만 그의 선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행동이 처음 의심을 받았던 것은 지난 1998년이었다. 당시 ‘세컨드 마일’을 통해 샌더스키의 도움을 받고 있던 한 11~12세 소년의 어머니가 머리가 젖은 채 집에 돌아온 아들을 수상히 여기고 다그친 결과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소년은 자신이 샌더스키와 함께 샤워장에서 벌거벗고 목욕을 했으며, 샌더스키가 자신을 뒤에서 껴안았다고 말했다.
이에 놀란 어머니는 곧 경찰에 샌더스키를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수사는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우선 당사자인 소년이 경찰 조사에서 “그저 샌더스키가 내 몸을 씻겨준 것뿐”이라고 주장한 데다, 샌더스키 역시 “나는 다른 소년들과도 종종 같이 샤워를 한다. 잘못한 것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됐고, 샌더스키는 기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듬해 샌더스키가 돌연 코치직을 내놓고 은퇴를 발표한 것이다. 그 후 체육교육과 명예교수로 보직이 변경된 그는 계속 대학 캠퍼스 내 사무실을 갖고 있었으며, 여전히 학교 내 시설물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등 실력을 행사했다.
이런 까닭일까.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샌더스키의 범죄 행위가 주로 이루어졌던 장소는 교내 미식축구팀 건물이었다. 그밖에도 샌더스키 집 지하실과 자동차 안, 호텔 등이 범행 장소로 이용됐다. 범죄 대상은 ‘세컨드 마일’에서 만난 어려운 형편의 소년들이었고, 이 가운데서도 특히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렵거나 심약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질렀다. ‘펜스테이트 미식축구 대회 관람하기’ ‘샌더스키 자택 방문 및 1박하기’ 등의 ‘세컨드 마일’ 프로그램 등을 이용했으며, 소년들에게는 용돈이나 미식축구 유니폼, 경기 관람권 등으로 입막음을 했다.
이런 그의 파렴치한 행각이 본격적으로 수사망에 오른 것은 지난 2009년이었다. 당시 샌더스키가 미식축구팀 보조 코치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고등학교의 한 학부모가 “내 아들이 샌더스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교장과 미식축구 감독에게 폭로한 것이다. 피해 학생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2005년부터 4년간 샌더스키로부터 ‘부적절한 신체적 접촉’을 포함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첫 신체적 접촉은 소년이 샌더스키의 집 지하실에서 묵던 날 벌어졌다. 지하실로 내려온 샌더스키가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년의 등과 배를 쓰다듬고는 강제로 키스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성추행은 곧 성폭행으로 이어졌으며, 샌더스키는 소년에게 20여 차례에 걸쳐 강제적으로 오럴 섹스를 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궁지에 몰린 샌더스키는 급기야 지난해 가을 ‘세컨드 마일’의 운영에서 손을 떼고 은퇴를 선언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보다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그 후 그를 둘러싼 스캔들은 일파만파 번져 나갔다.
조사 과정에서 속속 드러난 증언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1996년 혹은 1997년 무렵 ‘세컨드 마일’을 통해 샌더스키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진 한 남성은 성폭행을 당했을 당시 나이가 12~13세에 불과했다. 성폭행은 주로 함께 목욕을 하다가 벌어졌으며, 주로 샌더스키가 소년에게 오럴 섹스를 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소년은 성관계 대가로 의류, 신발, 스노보드, 골프 클럽, 하키 장비, 유니폼 등을 선물로 받았으며, 심지어 샌더스키로부터 미식축구팀 선수로 뽑아주겠노라는 약속까지 받았다.
또한 1995~1996년 무렵 샌더스키를 처음 만났던 한 남성은 7~8세 때 샤워실 안에서 샌더스키의 발기된 성기를 만지도록 강요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는가 하면, 1994년 당시 10세였던 한 남성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샌더스키의 배려로 미식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돌아오던 날 자동차 안에서 샌더스키가 자신의 허벅지를 만졌고, 자신의 손을 그의 아랫도리에 강제로 가져다 댔다는 것이었다.
샌더스키가 소년에게 오럴 섹스를 하는 모습을 직접 본 목격자도 있었다. 2000년 학교 청소부였던 제임스 캘훈은 “청소를 하려고 남아 있다가 샤워장에서 11~13세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에게 한 중년의 남성이 오럴섹스를 하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샌더스키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고 있는 상태. 그는 최근 NBC와의 인터뷰에서 소년들과 함께 샤워를 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는 게 아니었다”며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또한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냐는 질문에도 “그렇게 비치는 행동을 했을 수는 있다. 그저 운동을 마친 후 아이들과 어울려 샤워를 하면서 장난을 쳤을 뿐이다. 아이들을 껴안거나 만지긴 했지만 성적인 접촉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주장과 달리 파문은 쉽게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4일 톰 코벳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앞으로 피해자가 8명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과연 얼마나 더 많은 소년들이 샌더스키의 성적 노리개로 희생됐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