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기는 대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엄마를 따릅니다. 그리고 엄마 얼굴만 봐도 좋아합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아빠 얼굴만 봐도 울어대는 아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어느 때인가부터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엄마보다 퇴근 후 잠시 자기와 즐겁게 놀아주는 아빠를 더 좋아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엄마 품에 안겨 있다가도 아빠 오는 소리만 나면 뛰쳐나가는 아기도 있습니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매일 이런 일이 벌어지면 혹시 내가 아이에게 뭘 잘못했나 자책감 들기도 하고, 애착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고민이 생기기도 합니다. 남들 보기도 좀 그렇습니다. 아빠 없는 동안 아이를 구박한 것처럼 의심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가 죽기도 하고, 시댁 식구라도 같이 있으면 아이 잘못 키우는 엄마라도 된 것처럼 민망해지기도 합니다.
엄마와 둘이 있을 때는 오히려 껌딱지처럼 떨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 만날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아빠만 오면 엄마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아빠하고만 놀려고 하니 고민이죠.
아이와 이 같은 관계를 걱정하는 엄마가 제법 있습니다. 애착 형성에 대한 공부도 하고 아이와 상호작용을 더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더 해줘 환심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엄마도 있고, 심지어 아이 관심을 더 얻기 위해 아빠에 대한 경쟁심이 생긴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도 있습니다.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특별히 아이에게 잘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걸 분석해서 해법을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이 키우려고 결혼한 거 아니죠.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한 거 맞죠. 그럼 아이의 마음을 얻고 아이가 아빠보다 나를 더 좋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 엄마 아빠가 서로 좋아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아이도 부모의 팀에 끼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럼 가족에 대한 소속감과 유대감이 생겨나 애착을 품습니다. 누구 한 사람에 대한 애착보다 더 중요한 점이 가족에 대한 애착입니다. 이렇게 되면 누굴 더 좋아하는지는 정말 사소한 문제가 될 겁니다.
아빠만 찾는다고 엄마와 애착이 부족할까봐 더 잘하기 경쟁을 하면 엄마 아빠 한 팀이 깨질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아이의 마음을 더 얻기 위해서 아빠와 경쟁하는 그 순간 아이가 갑이 되고 부모가 을이 돼 아이 중심의 가정이 됩니다. 이건 정말 피해야 합니다. 아빠 들어오면 아빠랑만 논다고요? 누굴 더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다 같은 가족인데. 오히려 하루 종일 아이 보느라 힘들었으니까 아빠에게 맡기고 해방된다고 생각하세요.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실 겁니다.
하정훈은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교육이사,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모유수유위원회 위원장,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하정훈소아과의원 원장이다. 베스트셀러 육아지침서이자 육아교과서라 불리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이기도 하다.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