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론까지 등장 반명계의 고립작전에도 이재명은 출마 명분 쌓기…당권 접수 후 외연 확장 구상도
나올 건 다 나왔다. 차기 당권을 둘러싸고 극한 노선투쟁에 들어간 제1야당이 총성 없는 전쟁을 개시했다. 1차 목적지는 8·28 전당대회. 최대 관전 포인트는 3·9 대선에 이은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의 2연타 여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친문(친문재인)계의 견제에도 직진에 시동을 걸자, 당 금기어인 ‘분당론’까지 튀어나왔다. 이를 두고 친명계 인사들은 “정치적 자멸 행위”라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친문(친문재인)계가 허를 찔린 거 같다.”
정치권 한 인사는 구주류인 친문계 핵심 인사들이 빠진 민주당 8·28 전당대회 대진표를 보고 이같이 전했다. 친문계 홍영표 의원은 6월 28일 “계파 투쟁의 프레임으로 가선 안 된다”며 당권 도전의 뜻을 접었다. 앞서 전해철 의원에 이어 이재명 대항마로 거론된 친문 직계들이 본선행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그러자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인 이인영 의원과 우원식 의원도 불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반명(비이재명)계 대표 주자들이 줄줄이 당권 도전을 포기하면서 ‘어대명’의 현실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그러자 반명계는 ‘투 트랙’으로 이재명 압박 작전을 개시했다. 수면 위에선 ‘분당론’을, 아래에선 ‘당 대표 권한 쪼개기’를 각각 들고 친명계를 압박했다. 분당론의 강공을 날린 것은 당권 도전을 천명한 김민석 의원. 그는 6월 28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대로 가다가는 당이 분열하거나 쪼개질 수 있다”고 했다. 당 중진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6월 27일 사단법인 북방경제문화포럼에서 이재명 출마를 둘러싼 갈등과 관련해 “분당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친명계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이재명 최측근 모임인 ‘7인회 좌장’ 정성호 의원은 “분당 가능성은 0.01%도 없다”며 “‘이재명 출마=분당’은 치졸한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명계는 당 대표의 공천권·당직자 임명의 단독 권한을 없애고 최고위원 지명권을 절반(2명→1명)으로 줄이는 당헌·당규 개정 논의에 착수했다. 전당대회에서 ‘어대명’이 현실화되더라도 후유증이 적지 않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친명계 인사들은 분당론을 불사한 반명계의 움직임에 대해 “조급증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 같은 조급증에 대해선 “반명계의 전략적 실책”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야권 복수 인사들에 따르면 전해철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6월 22일 전후로 이들은 반명 연합군을 앞세워 ‘이재명 포위 작전’을 개시했다.
특히 부엉이모임 주축인 전해철·홍영표 의원이 전당대회 불출마를 택하면, ‘이재명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다. 친문계 한 인사는 “전해철 불출마 당시 홍영표·이인영 의원도 불출마로 기울었다”며 “친명계와 가까운 86그룹 우원식 의원까지 불출마한다면, 이재명 불출마의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하지 않겠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명계의 이재명 고립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의원은 반명계의 불출마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월 내내 전당대회 출마를 위한 명분 쌓기에 주력했다. '결단의 시간'만 기다리던 그는 7월 초 차기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민주당 의원은 6월 28일 YTN 라디오에 출연, 이재명 출마 전망에 대해 "100% 확실하다"며 "7월 4~6일 이쯤으로 보고 스텝을 밟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어대명을 둘러싼 계파 갈등 증폭에 따라 애초 플랜A였던 ‘7월 중순께 출마 선언’을 하는 안을 고수할 수도 있다. 민주당 8·28 전당대회 후보 등록일은 7월 17일이다. 친명계 한 핵심 인사는 “전당대회 룰도 정하지 못했는데, 출마 여부에 관해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이재명 출마에 군불을 때는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 의원을 링 위에 올려 때리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친명계 인사도 “이 의원의 당권 도전 의사는 룰이 정해진 이후의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 당권 도전은 시간문제이지, ‘결단의 선’은 넘었다는 얘기다.
친명 진영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인사는 “애초 불출마는 생각을 안 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 인사는 “이재명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불출마한다는 것은 ‘당도 죽고 본인(이재명)도 죽는 길’이라는 기류가 강하다”고 했다. 친명계 애초 선택지엔 ‘당권 포기가 없었다’는 얘기다.
야권의 전략가로 평가받는 한 인사도 “차기 당권은 정권교체를 위한 필수코스”라며 “초선인 이 의원도 검증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이른바 ‘문재인 모델’”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몸을 담았던 2015년, 반문(반문재인)계의 불출마 압박에도 정면 돌파를 택했다. 당시 친문계 핵심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이) 당권을 잡지 못하면, 이미 국민적 선택은 끝난 것”라고 했다. 당권이 ‘대선 검증의 1차적 성격’을 지녔다는 뜻이다.
친명계의 정면 돌파와 친문계의 전략적 미스가 맞물린 결과는 ‘기승전·어대명’이다. 특히 전해철·홍영표 의원 불출마로, 8·28 전당대회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친문 핵심 두 주자에다가 이인영·우원식 의원도 불출마로 가닥을 잡자, 친명계와 가까운 정청래 의원도 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에 들어갔다. 현재 차기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인사는 설훈 박범계 김민석 의원 정도다. 설 의원은 범친문인 NY(이낙연)계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 의원은 친문계로 분류되지만, 계파색은 옅다. 김 의원은 86그룹이나, 당내 비주류로 통한다.
남은 계파는 세대교체 깃발을 든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 생)이다. 첫 테이프는 강병원 의원이 끊었다. 그는 6월 29일 국회에서 “새로운 민주당을 만들겠다”며 당권 도전을 공식화했다. 박용진 의원도 8·28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강훈식 전재수 박주민 의원도 출마의 문을 열어뒀다.
하지만 97그룹발 세대교체론이 파괴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원내 한 당직자는 “누가 이재명의 대항마가 될 수 있겠냐”며 “특히 97그룹의 세대교체론은 ‘찻잔 속 태풍급’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는 계파 구심점이 없는 데다, 인물 소구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97그룹 중 강병원·박주민 의원은 범친문계에 속한다. 전재수 의원은 친문계, 박용진 의원은 비문계다. 97그룹 결속력이 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관전 포인트는 ‘반명 단일대오’의 실현 가능성이다. 당 안팎에선 전해철·홍영표 의원이 불출마를 택한 직후 이 의원을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한데 뭉치는 ‘반명 단일대오’ 시나리오가 떠돌았다. 총대는 당권 주자 중 가장 중진인 5선의 NY계인 설훈 의원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설 의원은 “단일대오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반명 연합군의 구심점을 자처했다. 김민석 의원도 연일 “주연급 배우가 모든 드라마마다 출연하지 않는다”라며 이재명 불가론에 가세했다. 강병원 의원도 이 의원을 향해 “연이은 패배에 책임 있는 분”이라고 직격했다. 강 의원은 지난 3·9 대선 때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수석대변인을 맡았었다.
반명 단일대오의 파괴력 변수는 역시 ‘구주류의 가세’ 여부다. 친문계가 얼마나 결속력을 갖고 세를 몰아주느냐에 따라 반명 단일대오의 운명이 갈린다는 의미다. 친문계는 당내 ‘이재명 비토’ 기류가 큰 만큼, 이들과 함께 어대명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6월 23일 충남 예산군 덕산 리솜리조트에서 열린 당 워크숍에서 친문 의원들은 이재명 의원을 향해 “이회창의 길을 따라가선 안 된다” “태극기 부대를 등에 업은 황교안의 실패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당 재선 의원 48명 중 34명도 6월 22일 입장문을 내고 이재명 불가론을 외쳤다.
친명계는 마이웨이를 택했다. 이재명 의원 한 측근은 “반명이니, 뭐니 편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친문계로 분류되는 인사 상당수가 넘어온 상황”이라며 “지난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친명이 아닌 의원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다른 측근도 “어대명의 변수는 없다”며 “얼마나 당 분열 없이 당선되느냐 문제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원내 고위 관계자도 “이 의원이 나온다면, 당연히 당선되지 않겠는가”라며 “각 계파도 이재명호 출범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친명계 일각에선 “당권은 대선을 위한 징검다리”라며 “외연 확장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자성론도 감지된다. 문재인 모델을 뛰어넘는 ‘김대중(DJ) 모델론’이 부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1995년 복귀한 DJ는 2년 후 보수 맹주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와 손을 잡았다. 중도 실용경제를 앞세운 ‘뉴DJ 플랜’으로 ‘노선 시프트(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여의도 한 전략통은 “DJ의 노선 변화가 이재명 역할론에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고 했다. 때마침 이재명 의원은 거국비상경제대책위원회 구성을 고리로 연일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 전략통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국을 ‘윤석열 대 이재명’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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