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한미 FTA 정상적 비준과 국회폭력 추방을 촉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정태근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만났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정 의원은 온몸에 기력이 빠져 힘은 없어 보였지만 눈빛만은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다. 배고픔을 못 참는 기자의 단식 질문에 “그것은 의지의 문제다. 시간이라는 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다”며 ‘초연한’ 웃음을 보였다. 풍채가 좋은 정 의원의 끼니 걱정을 뒤로 물리고 국가의 최대 현안인 FTA 관련 주제를 묻기 위해 그에게 바짝 다가갔다.
―어떤 마음에 단식까지 결심하게 된 것인가.
▲그 당시 상황이 무언가 실천하지 않으면 (한·미 FTA 비준에 대해) 한나라당 내에서는 일방 처리로 하자, 야당 내에서는 무슨 협상이냐, 하는 분위기여서 상황이 더 악화될 거라는 절박함이 있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또 민주당을 향해서도 내 나름의 간절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단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 단식 경험이 있나.
▲옛날에 학생운동 할 때 5년 선고 받고 3년 가까이 징역을 산 적이 있다. 그때 해봤다. 열흘 넘게도 해보고 짧게는 2~3일도 해보고 여러 차례 경험이 있다(웃음).
단식 경험이 있다지만, 차가운 로비에서 잠을 청하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닐 터. 매일 아침 4~5시쯤 눈을 뜬다는 그는 일어나자마자 좌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유일한’ 식사인 물의 맛도 남다르게 느껴질 법했지만 정 의원은 “그냥 물맛”이라며 ‘허허’ 웃어 넘겼다.
―주변에 책들과 노트북이 눈에 띄는데.
▲사실 이곳에서 단식하는 게 힘이 든 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사람들이 찾아오고 중간에 회의도 해야 하고 그래서 책 보고 인터넷 할 시간이 거의 없다. 하지만 하루에 두세 차례 정도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지금 상황이나 내 다짐, 생각을 올리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여러 번 국회 내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국회가 국민들 입장이 아닌 각 정당 입장에서 ‘이것을 내가 전부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전부 아니면 전무’ 식으로 대립과 갈등을 하며 폭력이 얼룩지는 상황이 반복되어 왔다. 결국 폭력 국회가 의회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가져온 것이다. FTA도 국익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국회가 이런 형태로 간다는 것 역시 국익을 위해 엄청난 손실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18대 국회의원을 하면서 적어도 18대 국회가 끝나는 시점에 있어서는 이러한 폭력 사태를 구조적으로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지막 도리가 아닌가 싶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세종대왕을 언급했던 대목이 눈에 띄었다.
▲세종은 일 년에도 여러 차례 백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임금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분이다. 세종처럼 ‘백성’에 대한 진한 사랑을 실천한 성군이 있었을까 싶다. 한글 역시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즉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의 SNS 역시 국민들 모두가 미디어를 갖고 있어서 표현의 힘이 더 강화되는 것 아닌가. 그것을 조선 시대에 생각하신 분이었다.
정태근 의원은 3년여 전부터 동료의원들과 ‘아레떼 포럼’(‘아레떼’는 그리스어로 ‘미덕’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인문학 공부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세종실록’ 역시 서너 번 이상 읽고 공부했었다고. 정 의원은 “세종은 깊이 있게 다시 한 번 공부해야 할 매우 존경할 만한 분”이라고 강조했다. 세종대왕을 떠올리며 ‘소통’의 한계를 안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불현듯 머리에 스쳐갔다.
―이 대통령의 ‘3개월 내 ISD 재협상’ 발언에 대해 패러디가 등장하기도 했다.
▲패러디나 비난 여론이 어떤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겠지만 사실에 근거한 비판을 해야 한다. 풍자 여론을 참조는 해야겠지만 그것 때문에 FTA가 비준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결단이 의미가 없다는 건 전혀 아니라는 얘기다.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 이전과 후 분위기가 좀 달라졌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비준반대’ 의견이 8, ‘협상처리하자’ 의견이 2였는데 어제(16일) 민주당 의총에서는 거의 동수로 나왔다고 한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간의 변화가 있었고 대통령의 제안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정 의원은 내심 이 대통령의 방문을 기대하진 않았을까. 지금은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과 대선 후보 시절 최측근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국회를 방문하는 이 대통령이 단식 중인 정태근 의원을 찾을 것인지도 관심사였다”고 덧붙이자 정 의원은 “사실 나는 그런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다”며 ‘허허’ 웃어 넘겼다.
이 대통령은 찾지 않았지만, 정태근 의원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의원회관 로비에는 여러 동료 의원들이 다녀간 바 있다. 정 의원과 인터뷰를 나누는 동안에도 외교통상위원장을 맡고 있는 남경필 의원, 홍정욱·진성호 의원 등 여러 의원이 찾아와 격려를 하고 갔다. 두 차례 정 의원을 방문했다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 역시 인터뷰 도중 지나가며 정 의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정 의원은 “손만 흔들어 주시지 말고 FTA 처리나 빨리 해주시지”라고 웃으며 혼잣말로 답하기도 했다. 정 의원 옆으로는 강명순 의원도 자리를 잡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고, 지난해 12월 예산안 처리로 국회가 시끄러웠을 당시 국민에게 사과한다며 국회 본청에서 3000배를 하기도 했던 김성곤 의원은 매일 아침 9시에 들러 108배를 하고 간다고 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단식농성 중인 정태근 의원을 방문한 남경필 의원, 정 의원과 담소를 나누는 홍정욱 의원, 홍정욱 의원이 남긴 방명록, 게시판에 정태근 의원을 응원하는 격려의 글들. |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대표도 찾아왔었는데.
▲(박 전 대표는) 건강 유의하시라, 힘들지 않느냐는 얘기 외엔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손 대표는 ‘힘들지 않냐’고 해서 ‘저도 빨리 끝내고 싶은데 그러려면 대표님께서 도와주셔야 됩니다’ 했더니 ‘내가 도와줄 게 있나, 청와대가 도와줘야지’ 하시더라. 그 이후로 이 대통령이 전향적인 제안을 가져온 것인데, 이제는 손 대표께서 야권통합이라는 의제와 한·미FTA 의제를 분리하셔서 결단을 내려 주셨으면 한다.
―한나라당의 내년 총선 전망이 어둡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국민들이 와 닿을 정도의 반성을 하고 국정 기조나 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면 그래도 국민들께서 다시 한 번 기대를 갖고 다음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이 아닌 인물을 놓고 생각하는 구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본다. 이미 지방선거, 재보선을 통해 심판을 하셨기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서도 인물 경쟁력이 야당보다 낫다고 하시는 분들이 총선 과정 속에서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만약 정부나 대통령, 한나라당이 반성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국민들은 MB 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투표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더 큰 패배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10·26 재보선 이후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것은 원래 없는 것이었다. 지지율이 40%이상 유지된다고 하면 대세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거의 이회창 총재나 현재의 박근혜 전 대표 모두 그런 케이스는 아니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다른 성향의 유권자들은 계속 새로운 카드를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난 그것이 비단 안철수 원장으로 인해 깨졌다고 보진 않는다. 개인의 역량이나 대세만을 가지고 당선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개인과 그 개인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당, 이 두 가지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단식농성을 할지 기약이 없다는 정태근 의원에게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난 아직도 아빠가 단식농성을 해야 하는 게 이해가 안 되지만 주변 반응이 좋으니까 잘하시라’고 큰아들이 보냈다는 휴대폰 메시지를 떠올리며 그는 “국회의원으로서는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서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인간적인 자괴감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떠오르는 음식은 없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밥 생각은 안 나고 단식을 하며 담배를 같이 끊었더니 가끔 담배 생각이 난다”고 웃음을 보였다. 담배 대신 물 두 병을 건네고 돌아왔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반박파 ‘왕따’ 시키나
▲ 박근혜 전 대표의 ‘메신저’가 아니냐는 시선을 받고 있는 구상찬 의원. |
이미 쇄신파와 친박계 간의 연대론은 지난 7월 전당대회부터 본격적으로 흘러나온 바 있다. 당시 홍준표 대표의 당선에 친박계가 일조하고,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과 소장파 남경필 최고위원을 당선시키며 양측의 연대론이 제기되었던 것.
그런데 박 전 대표와 쇄신파 간에 구상찬 의원이 ‘소통’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쇄신파 의원들은 그동안 친이계와 친박계 양쪽과 일정부분 거리를 유지해왔던 중도파 의원들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구상찬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전 대표의 언론특보를 맡기도 했던 대표적 친박 의원 중 한 명. 이 때문에 친박계에서 소장파와의 의견 교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구상찬 의원을 일종의 ‘메신저’로 파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구상찬 의원은 “언론에서 쇄신파와 친박 의원 그리고 박 전 대표가 힘을 합쳐 (반대파들과) 대결한다는 구도로 연결 지어서, 연대라는 단어가 싫다”며 “쇄신파가 쇄신해야 한다고 움직이는 건 박 전 대표가 당을 걱정하는 일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며 친박계-쇄신파 연대론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염려하는 친박계와 소장파의 ‘공감대’는 당분간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