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종이의 집’ JEA 배경, ‘오징어게임’ 탈북자 등장, ‘사랑의 불시착’ 남녀북남 다뤄
원작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대부분 가져온 한국판 ‘종이의 집’의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일까. 통일을 앞둔 남북한의 상황을 가정한 배경 설정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K 콘텐츠 속에는 남북한의 이야기가 담긴 경우가 많았다. 역대 넷플릭스에서 가장 성공한 콘텐츠로 등극한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사랑의 불시착’도 마찬가지다. 왜 세계인들은 남북한 관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쉽게 섞일 수 있을까?
한국판 ‘종이의 집’에서는 ‘공동경제구역(JEA)’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왠지 익숙한 표현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떠오른다. 남북한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팽팽히 대치하던 공동경비구역이, 통일의 훈풍을 타고 이제는 남북의 경제 통합을 준비하는 공동경제구역으로 바뀐다는 설정이다. 그럴 듯하다.
강도단에도 북한 출신 2명이 주요한 멤버로 등장한다. 도쿄(전종서 분)와 베를린(박해수 분)이다. 도쿄는 BTS(방탄소년단)를 좋아하는 북한 아미(BTS의 팬덤)로 묘사된다. BTS의 히트곡 ‘DNA’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한 도쿄는 “북한 아미는 실제 군대를 간다”고 말한다. 그때의 훈련을 통해 도쿄는 실제 총기를 잘 다루는 캐릭터로 구축된다. 북한 수용소에서 간수들을 해치고 빠져나온 인물로 설정된 베를린도 남다른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뽐낸다.
남과 북이라는 출신이 다른 이들의 대립은 강도단뿐만 아니라 조폐국 직원 사이에도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갈등은 작품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연출자인 김홍선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70년 넘게 따로 살다가 같이 뭔가를 하는데 쉽게 바로 합쳐져서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늘 갈등을 느끼고 있는 상황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그런 과정을 겪어내고 이겨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남북 출신의 갈등 구조는 ‘오징어 게임’에도 드러난다. 주인공 강새벽(정호연 분)은 탈북자다. 북에 있는 가족을 데려와 함께 살기 위해 거액의 상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 인물이다. 강새벽은 소매치기다. 탈북한 젊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결국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는 ‘종이의 집’의 도쿄가 ‘코리안 드림’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왔으나 결국 노래방 도우미 등을 전전하고 사기꾼을 만나 자본주의의 쓴 맛을 본 후 강도단에 합류하게 된 흐름과 유사하다.
이에 대해 한 방송 관계자는 “드라마나 영화가 탄생되기 위해서는 갈등 구조가 필요하다. 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따로 산 남북 주민들이 한데 섞이기 어렵다는 전제는 이런 갈등 구조를 구축하는 단골 소재가 된다”면서 “다만 궁핍한 북한 출신 주민이 남한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타락하게 된다는 전형성은 탈피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분단…판타지와 긴장 사이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다. 하나의 핏줄에서 시작된 한민족이 70년 넘게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북한의 핵 위협은 연일 뉴스를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된다. K팝을 비롯한 여러 콘텐츠를 통해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한국이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전쟁의 위험이 높다는 건 아이러니한 상황이고, 이는 오히려 세계인들의 관심도를 높이는 기제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을 적절히 사용한 예가 바로 ‘사랑의 불시착’이다. 배우 현빈과 손예진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남북 출신 재벌 여성이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던 도중 예기치 못한 돌풍을 만나 북한으로 넘어간 후 잘생기고 반듯한 북한 장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판타지 로맨스다.
‘사랑의 불시착’은 글로벌 팬들에게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읽혔다. 절대로 만나서는 안되는 앙숙 가문의 남녀가 사랑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애간장을 녹였다.
북한은 폐쇄적인 국가다. 그래서 종종 판타지의 장소로 그려지곤 한다. ‘사랑의 불시착’ 역시 북한 마을과 주민들의 모습을 지나치게 미화시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북한 간첩을 등장시킨 ‘설강화’의 경우, 내용이 공개되기도 전 간첩을 미화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심지어 작품이 공개되기도 전 이 같은 추측이 나오며 작품의 흥행에도 해를 끼쳤다.
향후에도 분단 상황은 여러 콘텐츠의 소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만이 가진 특수성이자 이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현존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흥미 위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우려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칸 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최고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주요 모티브는 벙커의 존재인데, 남북 분단 상황 속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에 건축가가 벙커를 만들어 놓았다는 설정이 설득력을 얻었다”면서 “결국 남북 상황을 이처럼 개연성 있게 다루려는 크리에이터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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