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 룰 전쟁 봉합됐지만 불씨 여전…이재명 지지율 및 총선 살생부 여부 ‘분당 변수’
제1야당이 분당 잔혹사에 휩싸였다. 차기 당권을 둘러싼 경쟁에서 밀리는 쪽이 야권발 정계개편 발화점이 된다는 게 핵심이다. 전조 증상은 곳곳에서 포착됐다. 최악 상황은 면했지만 룰 전쟁 기간, 당의 민낯은 까발려졌다. 신구 권력은 연일 정면충돌했다. 특정 계파 간 야합설도 튀어나왔다.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 가능성’이 한층 커지면서 정치권은 야권발 분당 시계의 초침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두 달 연장한 것이 아니냐. 휴전에 불과하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회 안이 뒤집힌 7월 6일 야권 한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민주당 8·28 전당대회 룰 전쟁이 일단락됐지만 갈등의 불씨가 남은 만큼 포스트 전당대회 국면에서 신주류와 구주류가 또다시 정면충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친명(친이재명)계 ‘63명 의원의 연판장’에 놀란 우상호 비대위는 당 대표 예비경선에서 일반 여론조사 30%를 반영한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 안을 그대로 의결했다. 다만 최고위원 예비경선에선 ‘중앙위원 100%’인 비대위 안을 의결했다. 논란의 단초가 된 ‘권역별 투표 제도’도 철회했다.
한 당직자는 “민주당 8·28 전당대회 룰은 양쪽 의견을 반씩 넣은 수정안”이라고 자평했지만, 당 안팎에선 “어대명을 앞세운 친명계의 압승”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반 여론조사 30%’를 관철해냈기 때문이다. 이로써 친명계의 제1과제인 당권 탈환 작전에 청신호가 켜졌다. 최고위원 예비 경선에서 ‘중앙위원 100%’를 얻어낸 친문계는 친명 강경파인 ‘처럼회’의 지도부 입성을 저지할 방패막이를 만들었다. 앞서 우상호 비대위 결정에 반발해 7월 5일 전준위원장직을 사퇴한 안규백 의원은 하루 만에 당무에 복귀했다. 표면적으로는 야당발 룰 전쟁이 봉합 수순에 들어간 셈이다.
그러나 화약고는 여전하다. 민주당 한 의원은 “양쪽 다 불만이 없다는 것은 어느 쪽도 100% 만족하지 않는다는 말”이라며 “또 다른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 8·28 전당대회 룰이 확정된 직후 극한 반발은 없었지만, 친문계 내부에선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친문계가 밀었던 수정안을 우상호 비대위에서 다시 뒤집자 “손을 놓고 당했다”라며 허탈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앞서 친명계 40명은 우상호 비대위가 전준위안을 뒤집은 7월 5일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며 전 당원 투표 카드를 들고 나왔다. 당 안팎에선 “이러다가 분당 위기까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룰 전쟁 과정에서 신구 권력뿐 아니라, ‘세대 야합론’까지 불거진 점은 향후 위기론을 증폭할 악재로 꼽힌다. 우상호 비대위가 전준위안을 뒤집은 직후 당 안팎에선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과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 생)이 짬짜미를 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들이 세대교체론을 고리로 전당대회 판을 흔들려다가 하루 천하에 그쳤다는 얘기다.
우 비대위원장은 86그룹 핵심으로 꼽힌다. 이재명 의원 복심이자 7인회 좌장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비대위가 수정안을 내자 “실체는 모르지만, 기득권 세력이 비대위 결정을 끌어낸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86그룹이 주축인 ‘더좋은미래’는 차기 당권주자로 강훈식 의원을 콕 집고 지지세 확산을 위한 물밑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3년생인 강 의원은 97세대 선두주자로 분류된다. 친문 직계는 ‘원조 친노’인 강병원 의원을 지원하고 있다. 친명계와 친문계의 신구 권력 싸움에 86·97그룹이 가세하면서 야권발 파워게임의 판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전 포인트는 야권발 원심력의 강도다. 이는 야당 분당론의 ‘공갈포’ 여부를 판가름할 중대한 분기점이다. 판은 깔렸다. 한국 정당사에서 분당은 총선을 앞두고 일어났다.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확산되면 낙천자를 중심으로 신당 창당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한 여론조사 분석가는 “선거판에도 수요와 공급 법칙이 작용한다”고 했다. 수요자는 공천 희망자, 공급자는 정당이다. 선거판이 깔리면 공급자는 한정적인데 각 정당에서 밀려난 낙천자들은 쏟아진다. 이 분석가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이게 분당론에 깔린 기본 법칙”이라고 했다. 야권에선 이미 “이대로 가서 깨지지 않겠느냐(김민석 의원)” “분당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재명 당선 시 분당될 수 있다는 우려에 동조한다(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 등의 분당론이 터져 나왔다.
야권발 분당론을 관통하는 시나리오는 △이재명호 당권 접수 시 친문계 탈당 △친명계의 친문계 살생부 공천에 따른 분당 △이낙연(NY) 분당 트리거 역할론 등 크게 세 가지다. 민주당 복수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8·28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에 오르더라도 즉각적인 분당은 불가능하다. 범친명계 한 관계자도 “친문계는 민주당의 역사를 ‘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로 볼 텐데, 당을 뛰쳐나가겠느냐”라며 “구주류가 민주당의 주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이때 변수는 민주당 지지도다. 선거에서 연패(3·9 대선과 6·1 지방선거)를 당한 민주당이 이재명호를 내세웠음에도 낮은 지지도로 ‘총선 패배론’에 휩싸일 경우 비명계 일부가 탈당을 감행할 수도 있다. 범친명계 관계자는 “신구 세력이 8·28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역대급 네거티브 전을 전개한다면, 감정의 골을 씻을 수 있겠느냐”라며 “지지도가 높으면 어쩔 수 없이 한 지붕 두 가족을 유지하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이재명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속도를 내는 것도 야권발 분당론이 꺼지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이재명호의 지지도와 관계없이 22대 총선을 앞두고 친명계가 공천 학살을 단행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 따른 분당 가능성은 첫 번째보다 더 크다. 공천 살생부는 ‘충신을 챙기고 정적을 제거하는’ 계파 정치의 산물이다. 민주당도 공천 학살 잔혹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2008년 18대 총선 때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호남 현역 30% 물갈이’를 단행했다. 박재승 저승사자에 물린 현역 의원 24명은 낙천됐다. 물갈이 명단에 오른 11명은 공천 심사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낙천자 중 일부는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민주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2008년 박재승 ‘공천 저승사자’는 총선 때마다 회자되는 얘기”라고 했다.
친노(친노무현)인 한명숙호를 앞세운 민주통합당도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 파동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노이사(친노·이대·486) 공천 논란에 휩싸였는데, 당시 최고위원이던 박영선 전 장관은 “당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며 당직을 사퇴했다. 노이사 공천은 친노 당협위원장 꽂기를 골자로 하는 주류의 대권 전략설과 맞물려 당내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공천에 탈락한 민주당 전직 의원은 “낙천 이유는 노이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이후 민주당 공천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극에 달했던 친노·비노 갈등은 2015년 연쇄 탈당 후 국민의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이낙연 분당 트리거 역할론도 야권발 분당론의 변수다. 분당 불가론에 베팅하는 이들의 근거는 “구주류에 탈당을 주도할 인사가 있느냐”다. 앞서 2015년 말에 촉발된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 땐 ‘안철수(국민의힘 의원), 박지원(전 국가정보원장) 정동영·천정배(이상 전 의원)’ 등이 분당을 주도했다. 비문계 한 관계자는 이들을 일일이 지목하며 “대권 잠룡과 킹메이커들”이라고 했다.
현재는 당시 비문계 거물급에 견줄 말한 대권 잠룡이 없다. 당 일부 인사들이 연구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행보를 주목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전 대표의 귀국 시점과 맞물려 야권발 정계개편이 촉발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전 대표의 연구 기간은 1년이지만, 당 안팎에선 ‘이낙연 조기 귀국설’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이 전 대표는 6월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관련 질문을 받고 “누군가 조기 등판을 물어보기에 ‘조기가 도마에 올라갔느냐’고 반문했다”라고 일축했다. 야권 고위 관계자는 “지금 민주당이 분당할 힘조차 있느냐”라며 “야권발 분당론은 정당 브레이커들이 하는 말”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제1야당 우산 아래 편하게 의정 활동 한 이들이 탈당할 수 있겠냐”라며 “민주당 인사들도 웰빙 정당에 익숙하다”고 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평화민주당에 뿌리를 둔 민주당이 2003년 열린우리당을 거쳐 현재 민주당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분열과 수혈로 생명을 이어온 정당이라는 점에서 야권발 분당론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여의도 한 관계자는 “민주당 운명은 이재명호 지지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지지도가 더 떨어지면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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