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해충 아닌 벌레 방역·소독 지침 없어…시민 “창문도 못 열 지경, 대략적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야”
러브버그의 정식 명칭은 ‘플리시아 니악티카’다. 파리과 곤충으로 주로 중앙아메리카와 미국 남동부 해안 지역에서 발견된다. 크기는 1cm가 조금 안 된다. 짝짓기할 때뿐 아니라 이동 중에도 암수가 쌍으로 다녀 러브버그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러브버그는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 은평구 일대에서 출몰하기 시작해 현재는 마포구, 서대문구, 종로구, 성북구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갑작스럽게 개체 수가 늘어난 것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알려진 바 없으나 러브버그의 주 서식 환경이 고온다습하다 보니 최근 장마로 수도권 내 습하고 더운 날씨가 이어진 것이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
현재 각 자치구청은 러브버그가 주로 출몰하는 구역을 대상으로 방제작업에 한창이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구청의 대응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A 씨는 “러브버그가 습하고 더운 날씨에 주로 서식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장마철은 러브버그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 아닌가. 번식력도 빨라 개체 수가 금방 증가한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지자체에서는 왜 개체 수가 폭증한 후에야 방역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각 관할구청 주도하에 해마다 위생해충에 대한 방역·소독 계획을 세우고 방제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위생해충 이외의 곤충이나 벌레는 특별히 방제작업을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러브버그는 독성이 없고 인간을 물지도 않으며 질병을 옮기지도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보니 러브버그 개체 수가 폭증한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구청들이 민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해마다 갑작스럽게 개체 수가 증가한 곤충이나 벌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상부의 지침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민원이 들어오면 처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민원이 얼마나 들어와야 방제 작업을 진행하는지, 자치구별로 다르다는 점이다. 서울시 다른 구청 관계자는 “민원이 한 동에만 50건에 달했다. 다른 동도 17건 정도 들어왔고, 총 3개 동 정도에서 7월 3일부터 5일까지 집중적으로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 민원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방역을 하는 상황”이라며 “갑작스럽게 벌레들이 많이 생기는 경우는 민원에 따른 방역밖에 답이 없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보건소에 약품들은 모두 비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평구 주민 B 씨는 “위생해충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의 불편함을 야기할 정도로 개체 수가 증가한다면 방역·소독을 진행해야 한다는 매뉴얼 정도는 마련했으면 좋겠다. 가령 하루에 민원 몇 건 이상 동시에 접수됐을 때 방제 작업을 진행한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매뉴얼을 마련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러브버그는 깨물면 피부가 붓거나 독성이 있어 통증이나 질병을 유발하는 해충이 아니다. 파리, 모기나 바퀴벌레처럼 질병을 옮기는 것도 밝혀진 게 없다. 그게 아니라면 무분별하게 방역해서는 안 된다”며 “단지 보기 싫다는 이유로 구청에 방제작업을 요구하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맞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이번 사례는 구청별로 러브버그에 대한 민원 요청이 많아서 시민 불편 해소 차원에서 방역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B 씨는 “러브버그로 불편함을 호소하며 민원을 제기한 시민들을 지자체가 나무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1~2마리 때문에 혹은 단지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민원을 제기한 게 아니다. 러브버그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다. 환기는커녕 찌는 날씨에 에어컨에만 의존하고 있다. 전기 요금도 올라서 갈수록 재정 부담도 높아진다. 게다가 바깥 이동 중에는 웬만하면 러브버그와 함께 생활해야 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B 씨는 “성충 생존 기간이 3~4일이어서 이제 곧 개체 수가 감소한다느니, 익충이라면서 불편하더라도 시민들이 며칠만 버티라는 식으로 얘기하기보다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자체는 지역 주민의 복리를 위한 사무를 처리할 의무가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열흘 정도 더 이어질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5일 YTN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에서 “지난주 많은 비로 적정한 습도가 유지되고 온도가 높은 상태에서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많이 보일 것 같다. 열흘 정도 지나면 좀 더 잦아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현재 러브버그가 활동 중 산란한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에서 40일 정도 후에는 또 다시 러브버그가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치구별로 방제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개체 수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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