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비선 논란에 야심작 도어스테핑 연일 도마 위…“MB 때 박근혜 같은 당내 비토세력 있어야 약 될 것”
대통령 취임 초기 ‘허니문’은 전통이었건만 윤 대통령은 취임 두 달도 안 돼 지지율이 급락, 유례없는 초단기 허니문이 돼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지만 살랑 흔들거리는 것이 아니라 뿌리까지 요동치는 중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난히 허니문이 짧았던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환되는 이유다.
#독단 인사에 비선 논란까지
최근 부정 여론이 긍정 여론을 추월하는 이른바 ‘데드크로스’를 맞으며 허니문을 사실상 끝내버린 윤 대통령은 단발성 악재가 아닌 복합 악재에 직면했다. 우선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출신)’ ‘강부자(강남에 사는 부자)’ 논란을 낳았던 이명박 정부 초기처럼 인사에 있어서 검찰이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지인 등 특정 집단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하게 노출되면서 점수를 까먹었다. 지지율 조사를 보면 인사에 대한 독단·독선을 지적하며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 여론을 형성하는 경향이 집계된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스페인 방문 당시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배우자가 동행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신뢰감까지 흔들리고 있다. 공직자가 아닌데도 순방에 동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선 가능성’을 제기하며 대통령실을 난타했다. 여권에선 비선 논란으로 탄핵까지 당했던 ‘박근혜 트라우마’가 고개를 들었다.
이 비서관 부인이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잘 아는 사이라는 사실까지 언론에서 제기하자 국정수행에 있어서 공사 구분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시작됐다. 게다가 현행법상 저촉되는 것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 친인척인 최 아무개 씨가 대통령실 부속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한다는 사실까지 드러나자 국민 정서를 대통령실이 과연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뒤를 이었다.
윤 대통령의 야심작인 ‘도어스테핑’까지 긍정 여론의 확산 통로가 아닌 화근으로 작용하고 있다. 도어스테핑을 과감하게 시작, 소통을 위한 장을 열었지만 도어스테핑 때 쏟아내는 윤 대통령 언사는 국정에 대한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잃어버리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7월 5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박순애 신임 사회부총리, 김승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같은 경우에는 부실인사, 인사실패 지적이 있다’는 취재진 질문에 “그럼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되물었다. “전 정권보다 훨씬 인물이 나은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대답으로 읽혔다. 이 발언 역시 언론과 야당으로부터 난타를 당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초반 측근들 비리 문제가 불거진 데다 대통령 본인이 강한 어조의 발언까지 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는데 그 길을 따라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라며 “취임 초 허니문이 사라져버렸던 노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례를 잘 살피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지지율 반등을 통해 국정 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4개월 만에 끝난 노무현의 허니문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거치면서 취임 허니문은 일반화됐다. 한국 민주화의 산 증인이었던 YS와 DJ는 취임 초기 1년 안팎의 허니문을 나타내면서 좋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반칙과 특권을 없애겠다’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YS·DJ와는 달리 허니문 효과를 얻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갤럽의 취임 초 첫 분기 조사에서 60%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보이면서 새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을 한껏 드러내며 허니문을 보여줬다. 하지만 취임 4개월 만인 2003년 6월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40%대로 내려앉으면서 허니문은 끝나버렸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초기 측근인 안희정 당시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이 나라종금 로비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등 측근들의 비리 문제가 잇따라 불거졌다. 노 전 대통령의 최대 강점이었던 도덕성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노 전 대통령 특유의 직설 화법도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큰 원인이 됐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고 일갈한 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난리가 났고 허니문을 조기에 마감시키는 결정타가 됐다는 평가였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3개월 가까이 된 2003년 5월 21일 청와대에서 5·18 행사 추진위원들에게 문제의 발언을 했다. 정부 인사안과 여러 법안을 꽉 막아놓고 있는 국회는 물론 집단이익만 내세우는 각 단체를 겨냥, “전부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 이러다…”라며 대통령을 못해먹겠다는 격정을 쏟아냈다. 허니문 기간 중에 나온 이 넋두리는 앞뒤 맥락은 잘린 채 보수적인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대통령이 무책임하다” “없는 능력이 비로소 드러났다” “대통령이 너무 가볍다” 등의 집중타 소재가 됐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를 빌미로 “대통령이 비속어를 남발한다”는 프레임을 씌우면서 자격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깽판’ ‘양아치’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 ‘개판’ 등 노 전 대통령이 썼던 단어와 문장도 잇따라 호출됐다.
노 전 대통령은 야당과 비판 여론의 격렬한 비난에 직면하자 타협보다는 정면 대결로 나갔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03년 10월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을 대상으로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대립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탄핵을 당했고, 야당이 오히려 탄핵 역풍을 맞으면서 여소야대라는 정치판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여야 간 첨예한 대결은 끝이 없었고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 내부에서조차 줄줄이 탈당 행렬이 나오는 등 여권 분열까지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노 전 대통령 임기 말 지지율은 10%대 초반까지 주저앉았다. 2007년 대선에서 집권여당은 정동영 후보를 내세웠지만 제1야당 이명박 후보에게 역대 최대의 득표율 차이로 참패하면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노무현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한미FTA 체결이나 이라크 파병 등 국익을 위해 진영의 반대를 정면 돌파했던 결단의 지도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며 “그러나 임기 초부터 끊임없는 설화가 반복되면서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줬고 좋은 성과가 너무나 많았지만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명박은 반등 성공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처럼 박빙 승부가 아닌 대선 압승을 거뒀지만 노 전 대통령보다 훨씬 더 빨리 위기가 몰려왔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편중 인사 시비가 나왔고, 민생과 무관한 영어몰입교육 기획까지 나오자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이 여파로 대선 압승이 무색할 정도로 이 전 대통령의 취임 초반 지지율은 50%대에 그쳤다.
임기 두 달도 안 된 4월 한미 소고기 졸속 협상 논란이 닥치자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고, 5월 들어서는 마침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 시위가 시작됐다. 촛불 시위는 걷잡을 수 없는 여론 악화를 가져왔다. 2008년 5월 말에는 지지율이 20%대를 찍더니 이 전 대통령 취임 100일 즈음인 6월 초에는 10%대로 내려앉았다. 정권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미국산 소고기 파동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 발언도 불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 2008년 4월 21일 “도시 근로자들은 질 좋은 고기를 값싸게 먹게 된다. 싫으면 안 사 먹으면 된다”고 언급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자 “국민 건강을 담보로 좋으면 먹고,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다고?”라는 국민 무시 여론이 만들어졌고 이후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이 전 대통령은 소고기 추가 협상과 인적 쇄신 방침 등을 내놓으면서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고 가까스로 지지율은 20%대로 반등했다. 이명박 정권 존립을 뒤흔들었던 소고기 사태가 가라앉았던 것엔 운도 따랐다. 2008년 8월 초 베이징하계올림픽이 개막된 것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정권 초반 한참 힘을 내야 될 시기에 촛불시위에 갇혀버렸으니 청와대는 정말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다. 그때 열린 베이징올림픽은 가뭄에 단비였다”고 기억했다. 베이징올림픽 특수로 인해 시위도 잦아들었지만 올림픽이라는 축제 특성상 애국심 열풍까지 불면서 이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 4분기 지지율은 30%대까지 반등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후 친서민정책 등을 추진하며 30~40%의 지지율을 유지해갔다. 서민들에게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미소금융사업을 2009년 말 시작했고, 아덴만 선원 구출작전을 2011년 1월 성공시킴으로써 능력 있는 정부임도 보여주며 임기 초반 겪었던 지지율 급락은 나타나지 않았다.
집권 말기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이 구속되면서 다시 20%대로 지지율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라는 강력한 당내 비토 세력이 있었기에 홀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달리 국정 수행에 있어서 브레이크가 많았고 조심성도 나타났다. 대통령을 잡아준 강력한 제동력 덕분에 지지율 추락을 막고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는데 윤 대통령도 거슬리겠지만 주변에 브레이크를 만들어놔야 약이 될 것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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