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범행의 동기도 범인의 실체도 알 수 없는 유령같은 범죄들이 시민들의 밤길을 위협하던 한 해였다. 2004년 7월 8일 비가 쏟아지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성동구 용답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박 아무개 씨(여, 가명, 당시 32)와 정 아무개 양(여, 가명, 당시 12)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살인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후에도 마치 놀이처럼 계속해서 칼을 휘두른 '오버킬' 범행이었다. 전문가조차 두렵게 만든 잔혹한 사건 현장, 그리고 두 사람뿐 아니라 작은 반려견에게까지 표출된 과한 분노. 이것이 범인의 시그니처라면 그의 범행은 단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2004년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대부분 밝혀졌다. 경찰은 용답동 살인사건의 범인 또한 사건 발생 11일 만인 7월 19일 검거했다. 당시 경찰이 지목한 살인범은 오 아무개 씨(남, 가명, 당시 33)였다.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 법원은 오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 가족은 "저는 범인이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지금까지"라고 말했다.
18년이 지난 현재 오랫동안 용답동을 떠나지 않았던 주민들은 물론 유가족조차 사건이 미궁에 빠진 채 시간이 흐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경찰이 철저하게 수사해 검거한 범인에게 재판부는 왜 무죄를 선고했을까.
당시 용의자로 검거된 오 씨는 숨진 박 씨의 전 남자친구였다. 제작진이 만난 당시 담당 형사는 오 씨가 범인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현장의 특성들을 자백했고 진술 내용이 목격자 증언과도 일치했기 때문에 진범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또 오 씨에겐 가택침입 절도 전과가 있었고 다른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정황도 있어서 여러모로 범인의 프로파일과 일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오 씨는 재판정에 나와 경찰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자백을 했으며 현장에 관한 정보는 경찰이 알아서 조서에 적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제작진은 당시 검거되었던 오 씨를 어렵게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제작진에게 자신이 범인이 아닌 여러 이유를 설명했다. 대화가 끝날 즈음 그는 제작진에게 당시 진짜 의심 가는 사람이 있었다며 다른 한 사람을 지목했다.
놀랍게도 그는 제작진이 취재 도중 만났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는데 또 다른 용의자 과연 그는 누구인가. 이번에는 사건 해결에 다가갈 수 있을까.
김원배 범죄수사연구관은 '연극유추기법'이라는 초기 프로파일링 기법을 개발해 많은 강력 사건을 해결했고 퇴직 후에도 경찰청에서 범죄 사례를 연구하고 있는 전설적인 형사다.
그는 국내에 최초로 경찰견을 도입하고 '죽음의 사진사 사건'등 다수의 강력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그가 제작진에게 이번 용답동 살인사건을 같이 해결해 보자고 제안했다. 사건 당시 김 연구관은 서울경찰청 사건분석반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해당 사건을 분석한 김원배 연구관은 제작진에게 새로운 단서를 제시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제3의 피해자, 바로 당시 현장에서 피해자와 함께 죽은 채로 발견된 반려견 '까미'다. 김 연구관은 반려견 까미를 범인의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는 결정적인 대상으로 지목했다. 까미는 진범의 단서를 알려줄 수 있을까.
여전히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2004년 용답동 살인사건. 김원배 연구관의 연극유추기법으로 사건을 분석해 보기 위해 현장을 '연극 무대'로 재현했다. 여기에 법의학, 범죄심리, 동물행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18년 전 멈춰버린 수사일지 기록, 그 다음 장을 써내려가보고자 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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