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그의 영상들을 찾아봤다. 준결선에서 연주한 리스트 초철기교 연습곡 12곡을 들었다. 내가 1시간이 넘는 피아노 연습곡을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차별성을 찾기 위해 끝까지 듣고 나니 임윤찬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고, 그 옛날 작곡가 ‘리스트’가 궁금해졌으며, 다른 작곡가들의 연습곡들도 들어보고 싶어졌다.
이는 임윤찬의 뛰어난 연주에 감동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1시간 동안 집중해서 연주를 들은 나의 호기심과 열정이 낳은 결과다. 만약 내가 동영상을 잠깐 틀다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건너뛰었다면 리스트도, 연습곡의 흐름도 놓쳤을 테고, 그저 콩쿠르 1등 임윤찬이라는 이름만 기억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살아 있는 음악인가
계기와 호기심, 열정과 감동, 국악에서는 이는 중요하다. 고전소설 심청전을 보자. 심청전의 내용은 많이 알고 있듯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효녀 심청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자 이에 하늘이 감동해 결국 심청도 살고 아비도 눈을 뜬다는 이야기다. 이 심청전과 판소리 ‘심청가’가 같은 이야기라는 것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고, 가끔 판소리 눈대목(하이라이트)으로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이 매체를 통해 선보이기도 한다.
짧은 심청전이 판소리 심청가로 완창 공연되면 4시간이 넘는 뮤지컬이 되는 것을 대부분 알지 못한다. 심봉사는 눈을 뜨고자 덜컥 봉은사 스님에게 없는 살림에 쌀 300석을 바치겠다고 사고를 치는 철없고 얄미운 아비다. 하지만 음악에 감정을 실어 노래하는 판소리로 들으면 심봉사는 그저 안타깝기 그지없는 부성애의 정점에서 마음을 울리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감동은 고 성창순 명창의 심청가 공연 실황 음반에서 잘 드러난다. 관객은 울다가 웃다가, 소리꾼의 기교에 감동을 받아 박수치며 환호한다. ‘아이고 목이 타니 물 한 잔 먹고 하겠소’ 하면 관객은 그것 또한 응원한다. 이 얼마나 살아 있는 음악인가. 음원이 이런데 하물며 공연장은 얼마나 후끈할까. 굳이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콩쿠르 현장에 가지 않아도 감동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에게 국악을 가깝게 할 계기는 넘친다. 국악방송 TV와 라디오는 전국에서 보고 들을 수 있게 채널을 계속 넓혀가고 있고, 지속적으로 양성되는 국악인들은 뛰어난 기량으로 전국 곳곳에서 버스킹과 저렴한 가격의 콘서트로 관객을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악을 접하는 기회가 적어 국악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 말은 핑계로 들린다.
기회, 계기는 충분하다. 어떠한 계기로 국악을 접하고 호기심이 생겼다면 집요한 열정 한 숟가락만 더해 긴 호흡으로 그 음악을 집중해서 즐겨보자. 조금 길다 싶었던 그 시간이 지나면, 멀리 있다 여겼던 국악이 어느새 곁에 있을 것이고 가깝게 두고 보니 더욱 멋스러운 음악이라는 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꿈틀거리는 무형의 문화유산
다양한 문화가 서로 섞여서 새로운 문화가 생성되는 현상은 결코 현대에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 언어가 그러하듯 문화예술은 끊임없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생성됐다. 한 예로 1930년대 유입된 한국의 재즈는 그 시대에 국악과 ‘혼종’돼 공연되기도 했고, 재즈 오케스트라 악단에 단소 연주자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무형의 문화유산은 박제돼 있지 않고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손길이 닿아 꿈틀거리며 변화한다. 우리의 유산을 올곧이 지켜내는 전통국악, 여러 실험적 음악으로 대중의 선택을 기다리는 창작국악, 대중음악과 혼합돼도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국악기와 선율, 장단 등이 그러하다. 그 변화의 산물 중 낙오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받은 유산이 아마도 다음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가 즐겨 찾고,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두고, 돌봐주고, 애정을 가져야지만 다음 시대에도 살아남을 우리나라 음악 ‘국악’은 꿈틀거리는 생동감으로 많은 사람들의 순수한 호기심과 집요한 열정을 기다리고 있다.
민소윤 ‘음악공장 노올량’ 대표는 영화 ‘워낭소리’, 연극 ‘소리극 옥이’, 무용 ‘시집가는 날’ 등 다양한 예술장르에서 작곡가 및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그의 음악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을 넘나들며 국악과 서양음악의 조화를 이뤄낸다.
민소윤 음악공장 노올량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