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들 노동자 지지, 졸업생 법조인 무료변론…정작 학교는 소송뿐 아니라 처우개선 요구에도 침묵
연세대학교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은 학교 측에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4월부터 매일 1시간씩 집회를 해왔다. 이들은 지난 4개월 동안 임금인상, 샤워실 설치, 인력 충원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아직 없다.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5개월 동안 처우개선 관련 학교와 교섭에 나섰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집회를 통해 목소리를 냈다.
이들의 집회가 계속되던 지난 5월 연세대 재학생 3명은 집회 소음으로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김현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 분회장 등을 업무방해와 집시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어 6월에는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금 등을 명목으로 638만 원가량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5년 동안 집회를 해오면서 재학생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이에 연세대 재학생들은 대자보를 붙이고, 기자회견을 열어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지지했다.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하는 재학생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학생에게 정의를 가르치지 않는 연세대학교를 규탄한다”며 “최저임금 인상분인 440원, 정년퇴직자 수만큼의 인원 충원, 위생과 건강권을 위한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과도한 요구일 수 있나”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에 지지를 표한 재학생들은 30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학교 동아시아국제학부에 재학 중인 최지혜 씨(23)는 “시위로 인해 학생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시위는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라며 “교내 노동자 분들 덕분에 학교에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데, 이런 점들은 생각하지 않고 학습권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서는 무관심하게 이 사태를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합의점을 찾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는 9월 연세대학교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 강한솔 씨(25)는 “집회를 하신 노동자들에 대해 소송을 건 학생들의 의견이 학생 전체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처럼 비칠 가능성이 있어 걱정됐다”며 “학교 측에서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 고용보다 직접 고용을 통해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연세대 졸업생 법조인들도 재학생 3명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변호에 나서기로 했다.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를 포함한 ‘연세대 청소노동자 대리인단’은 “청소노동자들의 행동을 봉쇄하기 위해 형사고소를 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한다”며 “학교는 이 사태를 방관하지 말고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경비 노동자들, 재학생들, 졸업생들까지도 학교 측의 적극적인 해결과 책임을 바라고 있지만 정작 연세대학교는 그저 방관할 뿐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고 있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얽혀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답변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만 했다. 연세대학교 홍보팀 관계자는 “용역업체와 협상 중인 민감한 사항이라 현재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학교에서 용역업체와 협의하고 있는데, 언제 결정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학생 3명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학교에서 대응이나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냐는 물음에는 “질문을 계속해도 답변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올해 연세대 청소·경비 등 노동자들은 청소노동자 시급 400원, 경비노동자 시급 440원 인상을 요구했지만 원청인 연세대와 용역업체는 200원 인상안을 내놓은 상태다. 청소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임금은 지난해와 올해 최저시급 차액인 440원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이마저도 400원으로 낮춰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세대학교 측은 13년간 동결된 대학등록금과 코로나19로 재정이 어렵다며 인건비 상승이 대학 재정에 부담을 준다고 밝힌 바 있다.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신촌·국제 캠퍼스 노동자 수 500명의 1년 노동 시간을 계산해 연 단위로 들어가는 인건비를 계산했을 때 학교에서 부담하는 비용은 5억 5000만 원 정도다. 대학알리미의 2021년 적립금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연세대는 5800억 원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임금인상액에 드는 비용(5억 5000만 원)은 전체 적립금의 0.09% 남짓이다. 학생들의 등록금 동결 여부와 관계없이 대학 재정 안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다. 앞의 연세대 홍보팀 관계자는 “적립금은 목적이 다 정해져 있어서 마음대로 인건비에 쓸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노조 측은 정년퇴직을 한 인원만큼 새로운 인원 충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남은 인원이 더 많은 업무를 감당하고 있다. 샤워실도 청소·경비 노동자 약 500명이 사용할 수 있는 곳이 3곳 정도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열악해 이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학교에서 청소를 해온 김현옥 민주노총 연세대 분회장은 “인력이 아직 부족한 구역도 있고, 샤워실도 열악하다”며 “학교에서 알려준 샤워실을 열고 들어갔는데 너무 더러워서 조합원들이 청소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 분회장은 “당장 모든 건물에 샤워실을 설치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개선해야 할 문제에 대해 학교가 나서서 우리랑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에 대해서 “학생들이 밉지는 않다. 일이 이렇게 돼 안타깝긴 하지만 갈등이 원만하게 잘 풀리도록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변호를 맡은 김남주 변호사는 “학교 측에서 양보하지 않아 쟁의 행위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임금교섭이나 단체교섭 등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연세대학교에서 갖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책임이 있는 학교는 빠진 채 노동자와 학생들이 갈등을 빚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청소노동자들의 집회를 봉쇄하는 것이 연세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지, 공동체에서 서로 잘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사건의 단초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해슬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외부에는 고소나 소송처럼 자극적인 이야기가 먼저 알려졌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노동의 가치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며 “우리가 편안하게 생활하기 위해 그 기반에 있었던 노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뤄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손승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은 “2008년 연세대 청소노동자 노동조합 처음 만들어졌을 때 학생들이 많이 도와주고 함께해줬기 때문에 이번 일이 더 안타깝다”면서도 “학생들 수업 때문에 그러는 거라 마음은 이해하고,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현재 5월에 제기된 학생들의 형사고소는 취하된 상태지만 손해배상 관련 민사소송은 진행 중이다. 매주 화요일·목요일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처우개선을 위한 집회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집회가 계속되면서 수수방관하는 학교를 향한 재학생들의 날선 비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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