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야마가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일본 후지TV가 야마가미의 동창들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중학교 동창들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던 인물”로 그를 기억했다. 덧붙여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도 잘해서 농구부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함께 농구부 활동을 한 남성은 “얌전한 우등생이었다”며 “말수는 적었지만 친구들도 있었고 고립된 듯한 분위기는 없었다”고 전했다.
성적이 좋았던 야마가미는 나라현 내에서도 유수의 학교에 진학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남성 또한 “얌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우등생이었다”고 회상했다. “사건을 일으킬 만한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매우 놀랐다”는 설명이다. 다만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가정환경은 어땠을까. 야마가미 일가를 잘 아는 지인은 “야마가미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건설업을 했기 때문에 집안이 상당히 부유한 편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뜻밖의 사태가 일어난다.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종교단체에 빠져 전 재산을 헌납한 것.
이즈음 야마가미는 명문대에 합격했으나 금전 문제로 중퇴, 전문대학으로 진로를 변경한다. 야마가미는 당시 지인에게 “종교 때문에 집이 이상해졌다. 돈이 없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후지TV 취재에 따르면, 실제로 “2002년 8월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파산한 사실”이 확인됐다. “가지고 있던 현금을 몽땅 헌납한 것도 모자라 물려받은 집까지 팔아버렸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주간겐다이는 “야마가미 모친이 입회한 종교단체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이라고 처음 보도하기도 했다.
야마가미의 불우한 가정사도 눈길을 끈다. 주간신초에 의하면 “야마가미에게는 형과 여동생이 있다”고 한다. 매체는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통일교를 믿기 전에도 ‘실천윤리굉정회(実践倫理宏正会)’라는 단체에 깊이 빠졌고, 그로 인한 신경증으로 야마가미의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사정을 알렸다.
“야마가미의 형은 소아암을 앓았고 수술까지 했어요. 한쪽 눈을 실명했고 평소 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꺼낸 것은 야마가미의 백부, 큰아버지다.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병에 걸린 현실이 버거웠던 걸까. 이후 야마가미의 어머니는 통일교의 열성적인 신자가 된다. 종종 아이들을 남겨두고 장기간 한국으로 건너갔을 정도였다.
백부는 “야마가미의 형이 아파서 스스로는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집에 먹을 것이 없다’며 전화를 걸어왔다”고 전했다. “그때마다 돈을 건네주러 집에 가곤 했는데, 냉장고를 열어보면 먹을 게 전혀 없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방치’였다.
그러면서 백부는 “야마가미 어머니가 통일교에 바친 돈만 1억 수천만 엔(약 10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2009년 조카들(야마가미 등)이 의뢰해 통일교로부터 5000만 엔(약 4억 8000만 원)을 되찾았어요. 그때 작성한 화해서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되찾은 돈을 또 다시 야마가미의 어머니가 교회에 헌납해버렸죠.” 불우한 환경을 견디다 못한 야마가미의 형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야마가미도 이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백부는 씁쓸해했다.
경찰 조사에서 야마가미 용의자는 종교단체에 대한 원망을 고스란히 드러낸 바 있다. 범행 동기를 묻자 야마가미는 “어머니가 통일교의 신자로 거액을 기부하고 파산했기 때문에 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통일교의 수장을 노렸으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접근이 어려워 그만뒀다”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원망의 화살은 아베 전 총리로 향했다. 야마가미 용의자는 “집안을 망친 단체를 일본에 불러들인 것이 아베 전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이고, 아베가 (종교단체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보고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살해 대상을 아베로 바꿨다”고 말했다.
언급된 아베 전 총리의 영상 메시지는 2021년 9월 통일교 관련 단체인 천주가정연합(UPF)이 공동 개최한 ‘싱크탱크(THINK TANK) 2022 희망전진대회’에서 상영된 특별연설 영상이다. 당시 행사에는 아베 전 총리 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호세 마누 바호주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이 사전 녹화나 온라인 방식으로 참여했다.
용의자와 연루된 종교단체가 통일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나카 도미히로 일본 통일교 회장은 7월 11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나카 회장에 따르면 “야마가미 용의자의 어머니는 1998년경 통일교에 입회해 2009년까지 열심히 활동했다”고 한다. 그 사이 2002년 어머니가 파산했지만, 교회 측에서 고액 헌금을 요구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일절 남아있지 않아 조사 중이다. 또한 “용의자의 어머니는 한동안 뜸했다가 2~3년 전부터 다시 교회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으며, 최근 6개월간 매달 한 번 정도 통일교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나카 회장은 “교회에 대한 원망이나 그로 인해 아베 전 총리 살해까지 이른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절차에 따라 사법기관에 의해서 용의자의 범행동기가 명확히 조사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압력솥 폭탄에서 수제 총으로’ 주도면밀한 범행 준비
경찰 조사에 의하면, 야마가미 용의자가 최초로 만든 흉기는 ‘압력솥 폭탄’이었다. 이와 관련, 야마가미는 “시험 삼아 폭발시키려 했지만 특정 누군가를 노리기엔 적합하지 않아 그만뒀다”고 말했다. “한 사람만을 노리기엔 총이 알맞고 수제 총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총을 만든 뒤엔 산을 오가며 시험 발사를 해보는 등 범행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접근하기 쉬운 선거 유세 현장을 노렸다.
또한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하려고 실제 움직인 것은 사건 전날인 7월 7일 오카야마현 지원 연설 때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용의자는 “3발 발사할 수 있는 총을 가져갔다”며 “아베 전 총리가 행사장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를 노렸지만 뒷문으로 입·퇴장한 데다 주위 경호가 삼엄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오카야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상황이 완전히 달려졌다. 용의자는 이렇게 진술했다. “신칸센에서 자민당 홈페이지를 살펴본 결과 아베 전 총리가 다음 날 나라현에 온다는 것 알게 됐다. 오카야마에서 실행할 수 없어서 포기하려던 차에 나라현 쪽으로 온다는 걸 알고, 다시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당초 아베 전 총리는 나가노에서 지원 연설이 예정됐지만, 전날 밤 급히 나라현으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나라현은 용의자의 거주 지역이었다.
권총보다 살상력 높은 총기 “자위대에선 가르치지 않는데…”
야마가미는 어머니가 파산한 해인 2002년 8월 ‘임기제 자위관’으로 해상자위대에 입대했다. 임기제 자위관이란 자위관 후보생으로, 3개월 교육을 받은 후 2년 내지 3년을 임기로 하는 자위관이다. 방위성에 의하면 “야마가미 용의자는 2002년 8월 사세보 교육대에 입대한 후 히로시마현 구레항을 모항으로 하는 호위함 마쓰유키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당시 야마가미는 포뢰과에 소속돼 기초적인 훈련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의 총격에 사용된 총은 1개의 원통에 6발의 총알이 들어가 있고, 총 1정에는 3개의 원통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총기 저널리스트 쓰다 데쓰야는 “권총보다 명중률, 살상 능력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총 제조법은 해상자위대에 입대하면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일까. 해상자위대 해장(중장) 출신인 이토 도시유키는 “해상자위대에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는 “원래 가지고 있는 소총을 분해하거나 조립하는 정도다. 총기를 만드는 기술 따윈 가르치지 않으며 소총류의 실탄도 1년에 1번 취급할까 말까”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2~3년 정도의 근무만으로 총기 제작 기술을 얻을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