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서 공간의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풍경을 주제로 삼은 때부터다. 서양미술의 경우 500여 년 전부터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원근법이다.
원근법으로 인해 평면에다 공간을 실감나게 옮겨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전문가들은 ‘눈속임의 기술’이라고 불렀다. 착시 효과를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이다. 실제는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보이는 세계에 관심을 두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그 덕분에 서양미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서양 풍경 회화에 나타나는 공간은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다룬다. 물리적인 공간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회화에서 나타나는 공간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다. 보이는 세계보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동양인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에 빗대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두고 전문 용어로 ‘사의(寫意, 뜻을 그린다)’라고 부른다. 따라서 동양 회화의 대종을 이루는 산수 풍경화에 등장하는 공간은 심리적이거나 철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최서원 회화의 주제는 공간에 의한 실내 풍경 연출이다. 그런데 그의 회화에 등장하는 공간도 사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색채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지만 실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그가 표현한 공간에는 입체감이 없다. 공간 연출의 기본적 원근법 중 투시도법(소실점을 향해 물체가 작아지는 방법으로 앞의 것은 크게, 뒤로 갈수록 작게 그려 공간을 나타내는 원근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지만 평면적으로 보인다. 색채 때문이다. 색면 구성하듯 강한 색채로 화면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최서원은 이런 공간으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그가 연출한 공간은 흔한 실내 분위기다. 소파나 의자 혹은 탁자가 있고, 바닥에는 기하학적 문양을 담은 양탄자가 깔려 있다. 벽에는 커튼이 있는 우아한 창문, 그리고 액자가 걸려 있고 책꽂이가 있는 현대적 공간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전통 민화 주제인 호랑이, 봉황, 모란 등이 등장한다. 모두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액을 막아주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최서원 회화를 두고 ‘현대 민화’라고 부른다.
현대 실내 공간을 전통 민화의 이미지로 장식해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힘은 작가의 타고난 색채 감각이다. 최서원 회화는 민화의 주술적 요소와 색채의 힘에서 추출한 긍정적 에너지를 담는 공간인 셈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