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며 무대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작으로는 ‘서푼짜리 오페라’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코카서스의 백목원’ ‘사천의 선인’ 등이 손꼽힌다. 1920년대 후반 마르크스주의 성향을 띄는 작품을 쓰기 시작한 브레히트는 나치가 집권하자 1933년 독일을 떠나 여러 국가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여러 편의 시와 희곡을 집필했고, 그의 작품은 대학로에서도 종종 공연된다.

사실 ‘예외와 관습’은 브레히트의 작품 가운데 그리 많이 알려진 연극은 아니다. 대학로 극단보다는 대학생들이 자주 공연하는 작품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연극집단 반이 이미 20년 전인 2002년에 한 차례 무대에 올렸었다. 김지은 대표는 “20년 전에도 ‘예외와 관습’을 무대에 올려 관객들이 직접 유․무죄를 투표해 평결을 냈었는데, 20년이 지난 현재의 관객들은 얼마나 다른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브레히트의 희곡은 극중 인물이 관객에게 말을 걸고, 갑자기 조명이 바뀌고 노래하는 장면이 끼어들기도 하는 등 ‘낯설게 하기’ 기법이 특징이다. 이런 방식으로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해 감정이입을 막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관객이 공연 내내 객관성을 유지하도록 만들어 작가가 말하고자 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관객이 발견하도록 만든다.
김지은 대표는 노래와 움직임을 활용해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브레히트의 연극을 가급적 쉽게 풀어내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김 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연출이다.
실제로 연극 초반부에선 극 흐름과는 다소 겉도는 경쾌한 리듬의 노래와 춤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이런 노래와 움직임이 다소 무거운 주제에 더 객관적으로 다가가도록 도와준다.
연극 ‘예외와 관습’에는 고용주인 상인과 노조에 가입돼 어느 정도 신분이 보장된 고용인인 길잡이, 그리고 최하층 고용인인 쿨리가 나온다. 석유사업 계약을 따내기 위해 경쟁자들보다 빨리 우르가에 가야 하는 상인은 길은 안내하는 길잡이, 짐꾼 역할을 하는 쿨리와 함께 사막 여행에 나선다.

길잡이 없이 쿨리와 단 둘이 사막 여행을 이어가던 상인은 여행 속도를 계속 높이기 위해 쿨리에게 모진 학대를 가한다. 그렇지만 결국 이들은 길을 잃고 물까지 떨어져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다.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 쿨리는 길잡이가 해고돼 떠나며 몰래 숨겨 놓고 마시라고 준 물통을 상인에게 나눠주려 했지만 그 모습을 공격으로 착각한 상인은 쿨리를 죽이고 만다. 그렇게 상인은 재판을 받게 된다.
상인이 쿨리를 살해하기까지의 사막 여행이 끝난 뒤 극 후반부는 재판 장면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관객은 더 이상 단순한 관객이 아니다. 직접 이 재판의 배심원이 돼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투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습’에 충실했던 상인의 살인은 정당방위로 무죄일까, 아니면 ‘예외’적인 인간미를 보인 쿨리의 억울한 죽음을 이끈 유죄일까.
사실 재판에 관객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설정은 브레히트의 희곡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에선 재판 장면만 나오지만 연극집단 반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관객의 배심원 투표를 가미한 것인데, 이를 통해 결말이 더 큰 울림을 만들어 낸다.
연극집단 반의 34회 정기공연으로 마련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연극 ‘예외와 관습’은 7월 21일부터 8월 7일까지 대학로 씨어터 쿰에서 공연된다. 평일은 7시 30분, 주말에는 4시 공연으로 매주 화요일은 쉰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