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8월 23일 새벽. 서울 용산 소방서에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불이 난 곳은 다세대주택 3층으로 구조대가 불길을 뚫고 집 안에 진입해서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조그마한 고사리손이 구조 대원의 다리를 꽉 붙잡았다.
화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이가 울면서 가리킨 집 안에는 이미 숨을 거둔 엄마가 있었다. 그런데 불타버린 방 안에 시신은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누군가 엄마와 딸을 살해하려 한 후 집에 불을 질렀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과연 범인은 누굴까.
곧바로 범인의 흔적을 쫓기 시작한 용산 경찰서 강력반 조형근 형사. 하지만 사건 현장은 불에 타고 물바다가 돼버려 막막하기만 하다.
사건 해결의 한 가닥 희망은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네 살배기 아이'의 기억이었다.
"애기 아저씨가 그랬어요."
조그만 입에서 터져 나온 뜻밖의 단어가 있었다. 아이는 그날 밤 '애기 아저씨'가 찾아와 자신과 엄마를 때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남자는 억울하다며 범행 사실을 극구 부인하는 상황이다. 과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진실의 증거는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
4살 아이의 진술 녹화 영상과 '애기 아저씨'에 대한 아이의 숨길 수 없는 기억까지 희망과 절망을 넘나들길 2년여, 마침내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이 공개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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