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변론 열고 의견 청취, 올해 안 결정 날 듯…진보 재판관 더 많아, 정족수 6인 딱 채워 ‘위헌’ 가능성
아직 헌재는 결정 일자를 잡지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헌재가 공개변론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은 ‘머지않아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9명의 헌재 재판관 가운데 6명 이상이 진보 혹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위헌 판단 기준의 정족수인 6명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늦어도 올해 안에는 헌재가 사형제도에 대한 세 번째 판단이 나올 것이고, 이번에는 위헌 판단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년 넘게 해묵은 과제 ‘사형제’ 뜨거웠던 공개변론
7월 14일 오후 2시, 헌재 앞에는 국제엠네스티 등 시민단체와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 단체 인파가 20~30명 모여 사형제도 위헌 결정을 호소했다. 이들을 취재하기 위한 취재진 등을 감안하면 모두 100명이 넘는 인파들이 모여들어 이번 공개변론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은 2018년 부모를 살해해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기소 된 A 씨다. A 씨는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자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2019년 2월 사형제 헌법소원 제기했다. 2년 넘게 헌재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는 동안, A 씨는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형법 제41조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로 ‘사형’을 포함하고 있고, 형법 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날 변론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지 않은 A 씨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부터, 사형제도의 필요성이 쟁점이 됐다. 청구인 측은 “법정 최고형이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으로 변경된다면 청구인의 양형이 유기징역 등으로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형제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점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지만 사형제로 인한 생명권 박탈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정부도, 학계도 객관적·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 대리인으로 출석한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형제도는 사형수를 오로지 국가의 형사정책적 수단으로 전락시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폐지 필요성에 목소리를 보탰다. 반면 이에 맞서는 법무부 측은 “국민의 생명 보호 등 매우 중대한 공익을 지키기 위해 엄중한 형벌을 가하고, 응보(응징과 보복)적 정의와 범죄의 일반예방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생명권 제한도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맞섰다.
재판관들도 양측에 여러 질문을 물어보며 꼼꼼하게 결과의 후폭풍을 확인했다. 이미선 재판관은 “사형제가 위헌 판결이 날 경우 이후의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법무부와 청구인 측에 묻거나 “기존 사형수들의 재심이 이어질 텐데 이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재심 신청자들을 어떤 근거로 구금할 것이냐”라고 법무부에 물어보기도 했다. 일부 질문의 경우, 양측 모두 미리 준비하지 못해 서면으로 답변하겠다고 대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형제 ‘여론’은 원하는데, 법조계는 ‘폐지’ 가닥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된다. 김영삼 정부 말기였던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마지막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사형 집행은 중지됐다. 정부 수립 후 첫 번째 사형집행은 1949년 7월 14일으로, 모두 몇 명이 사형 집행됐는지 기록은 없다. 현재에는 법무부 교도소와 국방부 군 교도소에 59명이 사형 집행되지 않은 채 복역 중이다.
이 59명에는 희대의 연쇄살인마인 유영철, 강호순 등도 포함돼 있다. 국내 최장기 사형수는 원주 왕국회관 방화범 원언식으로 지난 1993년에 사형이 확정돼 30년째 복역 중이다. 중년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고 공범도 살해한 사건 피의자 권재찬이 최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그대로 대법원까지 확정되면 사형 미결수는 60명이 된다.
앞선 1996년과 2010년, 헌재는 이미 두 차례 사형제 합헌을 결정한 바 있다. 헌재는 지난 1996년 “우리 문화 수준이나 사회 현실에 비춰 사형제 폐지는 타당하지 않다”며 재판관 7(합헌) 대 2(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놓았다.
하지만 14년 뒤인 2010년에는 5(합헌) 대 4(위헌)로 바뀌었다. 당시 광주고등법원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이강국 소장과 이공현, 민형기, 이동흡, 송두환 등 5명의 재판관은 “사형제도는 우리 헌법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의 한 종류”라며 “국민의 생명권 보호와 정의실현 등 사회를 보호한다는 공익이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익보다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보충 의견이나 위헌 의견에서 ‘대안’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민형기 등 2명의 재판관은 “사형 대상 범죄를 축소하는 한편 사형제 존폐 여부는 (헌재의) 위헌법률심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수렴해 국회가 나서야 할 문제”라며 ‘국회의 역할’을 촉구했고, 목영준 재판관 등 3명은 “사형제가 생명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헌법에 위반된다”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을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사형제는 폐지돼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헌재 재판관 성향을 고려할 때 ‘이번엔 사형제도가 폐지될 것’으로 내다보는 법조인들이 많다. 일단, 9명의 재판관 가운데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유남석 헌재 소장을 포함 6명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김명수 대법원장,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유남석 소장과 이석태·이은애·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문형배 재판관의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재판관 가운데 직·간접적으로 사형제 폐지의 뜻을 밝힌 재판관은 5명 정도다. 바른정당이 추천한 이영진 재판관은 중도보수 성향으로 평가되고,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이선애·이종석 재판관 정도만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6명의 위헌 결정 정족수를 채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판사로 근무하며 헌재 파견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의견은 다 다르겠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정(사형)을 한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잘못된 판단을 했을 경우 되돌릴 수 없다는 부분에 대해 지적하는 법관들이 많다”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같은 보완법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사형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 재판관 구성도 이처럼 바라볼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 소식에 정통한 법조인 역시 “공개변론을 한다는 것은 재판관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각자 정리된 상태에서 이해관계인이나 참고인들에게 더 많은 의견을 듣고자 하는 것이고 공개변론 후에는 전체 재판관의 판단을 공유하는 자리가 열린다”며 “늦어도 올해 안에 결과를 내놓지 않겠느냐”고 예측했다.
다만 변수는 여론이다. 실제 2021년 9월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3%가 사형제 유지에 찬성하는 등 사형제 찬성 및 현행 유지 여론이 압도적이다. 14일 열린 공개변론에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형제도가) 응징과 보복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한국 국민의 법 감정은 여전히 응징과 보복적 정의를 요청하고 있는 점을 무시할 수도 없다”고 여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헌재는 국민 여론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사법기관인 점을 감안한 발언이기도 하다.
헌법에 사형이 언급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변수다. 헌법 제110조 제4항에는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에 명시된 ‘사형’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도 해석해야 한다. 이를 “군사재판이라 해도 재판에서의 3심제를 보장하려는 인권 옹호 측면에서 신설된 조항”이라는 해석과 함께 합헌의 근거로 보기도 하지만, 헌법에 명시된 사형을 이유로 ‘판단불가’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추론도 나온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위헌 결정이 나오거나, 합헌 결정이 나더라도 4(합헌) 대 5(위헌)처럼 2010년보다 더 많은 재판관들이 위헌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앞선 법조인은 “일반 여론과 다르게 법조계에서는 사형제에 대해 위험한 지점이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며 “정족수 6명을 딱 채워서 위헌 판단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예측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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